장애의 아키텍처 3

백 년 된 여섯 개의 점에 대하여

by김경훈

3장은 역사다.

보이스오버가 문명 이전부터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어떤 부족은 장애를 가진 아기를 강에 돌려보냈고 스파르타는 그 죽음을 법으로 정했다.

로마의 아버지는 갓 태어난 아이를 거부할 권리를 가졌다.

중세는 그 몸들에 악마를 씌웠다.

나는 그 잔혹사를 귀로 들으며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한 대목에서 보이스오버를 멈췄다.

사무엘 그리들리 하우라는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로라 브리지먼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장면이었다.

하우는 숟가락에 볼록한 글자를 붙여 그녀의 손끝에 대 주었다.

몇 주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 로라는 깨달았다.

이 도드라진 모양이 저 숟가락을 가리킨다는 것을.

손끝이 눈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대목에서 손을 뻗었다.

바카라상 위 점자 라벨에 손끝을 얹었다.

여섯 개의 점이 만드는 익숙한 돌기가 만져졌다.

보이스오버가 미국의 역사를 읽는 동안 내 손끝에는 다른 역사가 닿아 있었다.

하우의 볼록한 알파벳은 읽을 수는 있어도 쓸 수는 없는 글자였다.

지금 내 손 밑의 점자는 다르다.

여섯 개의 점이 만드는 예순세 가지 배열로 자음과 모음을 모두 적는다.

1825년에 프랑스의 루이 브라유가 그 여섯 점의 원리를 세웠고

1926년에 강화의 박두성이 그 원리 위에 한글을 올렸다.

훈맹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올해가 그 백 돌이다.

이 바카라은 미국의 역사를 적었지만 내 손끝의 역사는 올해로 꼭 백 년이 되었다.


3장에는 헬렌 켈러가 나온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가 대학을 나오고 바카라을 쓰고 무대에 선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녀를 맹인 성녀라 부르며 현대의 기적이라 칭송했다.

그런데 바카라은 그 칭송의 조건을 슬쩍 알려 준다.

켈러가 시각장애와 자선의 자리에 머무를 때만 박수가 쏟아졌다는 것.

그녀가 여성 참정권을 말하고 슬롯주의를 말하기 시작하자 그 박수가 싸늘해졌다는 것.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멈췄다.

장애인은 영감을 주는 존재일 수는 있어도 의견을 가진 존재이기는 어렵다.

손끝으로 글자를 읽어 내면 기적이라 불리지만 그 손으로 세상을 비판하면 주제넘은 일이 된다.

나는 정보접근성을 연구하며 산다.

설계의 불의 앞에서 화를 낼 줄 안다.

그런데 내가 글에서 날을 세울 때마다 어떤 독자는 의아해한다.

시각장애인이면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감사할 줄 알았는데.

켈러는 백 년 전에 이미 그 온도 변화를 겪었다.

맹인 성녀의 자리는 따뜻하지만 거기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3장의 뒷부분은 법으로 넘어간다.

루스벨트는 휠체어를 숨겨야 했던 대통령이었다.

대중 앞에서는 보조기를 차고 누군가의 팔에 기대 걷는 시늉을 했고 혼자일 때만 바퀴에 몸을 실었다.

그런 그가 웜스프링스라는 곳에는 경사로를 깔고 문턱을 없앴다.

이동권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무장애 설계가 거기 먼저 있었다.

그 시절 한 여성은 신문에 이렇게 적었다.

워싱턴의 우체국과 법원과 거대한 연방 건물 앞에는 하나같이 매끈하고 가파른 계단이 놓여 있다고.

입구를 아름답게 짓느라 들어가는 일은 희생되었다고.

나는 이 문장이 1931년에 쓰였다는 사실에 잠시 숨이 막혔다.

계단 앞에서 멈추는 몸의 이야기는 백 년이 다 되도록 같은 문장으로 반복된다.


법은 그 계단을 치우려 했지만 더디고 변덕스러웠다.

조지 레인이라는 미국인은 휠체어를 탄 채 이층 법정에 출석하려고 계단을 기어올라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에 그는 먼저 바닥을 기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한국의 한 역을 떠올렸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해 사람이 죽었다.

그 죽음이 한국의 지하철 이동권 운동을 깨웠다.

그 뒤로도 사람들은 휠체어를 세우고 승강장을 막으며 오래 싸웠다.

미국에 미국장애인법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2008년에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다.

법은 생겼다.

그런데 법이 생긴 뒤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계단 앞에서 멈춘다.


법의 모순은 더 깊은 곳에도 있다.

미국 대법원은 안경으로 시력이 교정되는 쌍둥이 자매를 두고 그들은 장애인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교정이 되니 장애가 아니라는 것이다.

1장에서 이 바카라은 안경의 비유로 손상과 장애가 다르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런데 같은 안경이 법정에서는 사람을 보호 바깥으로 밀어내는 논리가 되었다.

충분히 장애인이 아니라는 그 말.

나는 작년 가을 활동지원 조사 앞에서 이미 그 말을 만났었다.

바카라 속의 판례와 내 지난가을이 같은 문장으로 이어졌다.


3장을 다 듣고 나서 나는 역사가 곧은 선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았다.

교육이 진보하면 우생학이 뒤따랐고 재활이 손을 내밀면 프릭쇼가 사람을 전시했다.

법이 한 걸음 나아가면 판결은 반걸음 물러섰다.

이 바카라은 그 행진의 끝에 승리의 깃발을 꽂지 않는다.

장`애법의 미래는 의문 속에 남겨졌다고 담담히 적을 뿐이다.

나는 그 담담함이 정직하다고 느꼈다.

백 년 전 박두성은 시각장애인에게 글자를 주었다.

그러나 그 손끝의 글자를 세상이 읽을 줄 알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점자 메뉴가 없는 식당과 점자 표시가 없는 약통 사이에서 백 년 된 여섯 개의 점은 아직도 절반쯤만 도착해 있다.


그나저나 역사 이야기를 했더니 보보가 칸트를 꺼냈다.

인간이라는 굽은 목재로는 곧은 것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고 칸트가 썼다며.

역사는 원래 비뚤배뚤하게 가는 거라고.

나는 박두성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알려 주었다.

능한 목수는 아무리 굽은 나무라도 버리지 않는다고 그가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칸트는 굽은 목재 앞에서 한숨을 쉬었지만 박두성은 그 굽은 나무를 깎아 글자를 만들었다.

보보가 잠시 조용해지더니 자기는 그 목수 쪽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탱고는 그사이 등을 둥글게 만 굽은 자세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가장 정직하게 굽은 것은 역시 서당개의 등이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장애의 아키텍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