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흥신소 조사원
나이 48세
성별 남자
특징 눈물에 속지 않는다
1
이 일을 오래 하면 사람 말을 반만 믿게 된다.
정확히는 반도 안 믿는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연을 들고 온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동업자가 돈을 떼먹고 잠적했다. 연락 끊긴 첫사랑을 딱 한 번만 보고 싶다. 다들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나는 그 눈물을 본다. 그리고 속으로 계산한다. 이 사람이 지금 나한테 감추는 게 뭘까. 의뢰인은 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이십 년 넘게 이 바닥에서 얻은 단 하나의 진리다. 사람들은 남을 찾아달라고 나를 찾아오지만 정작 자기 속은 절대 다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눈물에 안 속는다. 우는 의뢰인일수록 더 의심한다. 진짜 급한 사람은 울 시간에 정보를 준다. 우는 사람은 대개 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사람이다. 동정을 사서 내 판단을 흐리려는 거다. 나는 그 수법을 안다. 눈물은 연기다. 이십 년 동안 나는 그 연기에 단 한 번도 넘어간 적이 없다. 그게 내 자부심이었다.
이 일에서 제일 위험한 건 마음이 움직이는 거다. 조사원이 대상에게 마음이 가면 그날로 끝이다. 미행하다 정이 들고 사연에 흔들리면 사진을 못 찍는다. 그래서 나는 아예 마음을 잠가버렸다.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좌표다. 의뢰인은 사람이 아니라 착수금이다. 그렇게 두 개의 숫자만 보면 이 일은 깔끔하다. 나는 그 깔끔함으로 이십 년을 버텼다. 후배들한테도 늘 그렇게 가르쳤다. 눈물 흘리는 대상 앞에서 흔들리면 넌 이 일 못 한다. 다 연기라고 생각해라. 실제로 대부분 연기니까. 그 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남들은 우리를 심부름센터라 부르고 흥신소라 부르고 뒤에서는 사생활 파는 놈들이라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사람을 찾고 뒤를 캐고 몰래 사진을 찍는다. 남이 숨기고 싶어 하는 걸 파내는 게 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진실을 찾을 뿐이다. 그 진실을 의뢰인이 어디에 쓰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칼을 파는 사람이 그 칼로 뭘 썰지까지 바카라임지지는 않으니까. 세상에 남의 사정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한둘인가. 변호사도 기자도 보험사도 다 그렇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조용히 하는 사람일 뿐이다.
2
그 의뢰인은 봄에 왔다.
깔끔한 정장에 비싼 시계를 찼다. 말투가 정중했고 명함에는 무슨 무슨 대표라고 찍혀 있었다. 그는 아내를 찾고 있다고 했다. 두 달 전 어린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는 거였다. 부부싸움 끝에 홧김에 나간 건데 연락이 끊겨 걱정된다고 했다. 애가 잘 있는지만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말끝에 눈시울을 붉혔다. 딸아이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는데 손이 살짝 떨렸다.
나는 그 떨리는 손을 봤다. 그리고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이 사람이 나한테 감추는 게 뭘까. 몇 마디 나눠보니 금방 나왔다. 명함의 회사는 이미 일 년 전에 문을 닫았고 그는 대표가 아니었다. 시계는 진짜였지만 정장 소매는 낡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역시 의뢰인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잘나가는 사업가가 아니다. 허세를 부리는 실직자다. 아내가 나간 것도 아마 돈 문제겠지. 나는 그의 거짓말을 다 꿰뚫어 봤다는 사실에 흡족했다.
하지만 나는 그 거짓말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 건 이 바닥에서 흔하다. 다들 실제보다 자기를 부풀린다. 중요한 건 착수금이었고 그는 시세의 두 배를 불렀다. 딸을 찾는 아버지의 절박함이라 여겼다. 나는 그 돈에서 절박함을 봤다. 지금 와서 보면 그건 절박함이 아니라 집착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했다. 그는 아내가 애를 데리고 나갔다면서 정작 아이 이름을 한 번 부를 때 잠깐 더듬었다. 아빠가 제 자식 이름을 더듬는 건 드문 일이다. 나는 그 순간 아주 짧게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착수금 봉투 위에 덮어버렸다. 두 배짜리 봉투는 어지간한 위화감을 다 덮는다. 나는 사람의 작은 거짓말은 귀신같이 잡아내면서 그 거짓말 뒤에 있는 진짜를 보는 데는 서툴렀다. 그가 사업가인지 실직자인지는 알아냈지만 그가 어떤 인간인지는 묻지 않았다. 돈만 맞으면 그건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의 정체를 절반만 캐고 나머지 절반은 일부러 덮었다. 그 덮어둔 절반에 진짜 위험이 들어 있었다.
3
사람을 찾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다.
여자는 이름을 바꿨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도망친 사람들은 늘 실수를 한다. 옛 습관은 못 버린다. 나는 그 여자가 예전에 다니던 미용실 예약 기록을 뒤졌고 자주 쓰던 배달앱 계정을 추적했고 딸아이가 다니던 학원 선생의 SNS를 팠다. 사흘 만에 도시 하나를 좁혔고 닷새 만에 동네를 좁혔다. 여자는 지방 소도시의 작은 반찬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딸아이는 근처 초등학교에 다녔다.
나는 며칠간 그 가게를 지켜봤다. 여자는 아침 일찍 나와 반찬을 만들었고 저녁이면 딸 손을 잡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웃음 아래 뭔가가 있었다. 여자는 가게에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흠칫 문 쪽을 봤다. 누가 뒤에 서 있는 것처럼 자꾸 어깨 너머를 돌아봤다. 밤에는 골목 끝에서 한참을 서서 주위를 살핀 뒤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작은 것들이 눈에 밟혔다. 여자의 가게 문에는 안에서만 여닫는 잠금장치가 두 개나 더 달려 있었다. 창문에는 안이 안 보이게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딸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가게로 왔다. 다른 데서 노는 법이 없었다. 아이도 늘 문 쪽을 살폈다. 저 나이 아이가 저렇게 사방을 경계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모녀는 세상에서 숨는 법을 훈련한 사람들 같았다.
이십 년 이 일을 한 눈에 그건 익숙한 그림이었다. 저건 홧김에 집을 나온 사람의 행동이 아니다. 저건 쫓기는 사람의 행동이다. 무언가로부터 필사적으로 숨은 사람. 나는 잠깐 그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접었다. 내 일은 여자가 왜 저러는지 알아내는 게 아니라 여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거였다. 이미 찾았으니 일은 끝난 셈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주소를 적었다. 그 잠금장치 두 개도 시트지도 아이의 겁먹은 눈도 전부 좌표를 확인하는 정보로만 썼다. 그것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4
문제는 마지막 날 생겼다.
내가 가게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자가 나를 봤다. 도망친 사람은 감이 예민하다. 여자는 반찬통을 내려놓고 곧장 길을 건너왔다. 나는 자리를 뜨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일은 끝났으니 굳이 도망칠 것도 없었다. 여자가 내 앞에 섰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누가 보냈어요. 그 사람이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게 이 바닥의 규칙이다.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요. 저 여기 있는 거 그 사람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 사람 위험한 사람이에요.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어요. 저 죽을 뻔해서 도망친 거예요. 애 데리고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못 찾았다고 해주세요. 돈은 제가 드릴게요. 얼마든지요."
여자는 울고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나를 올려다보며 울었다.
나는 그 눈물을 봤다. 그리고 속으로 계산했다. 이십 년 동안 해온 그 계산. 저 여자가 지금 나한테 감추는 게 뭘까. 미행당하는 사람이 미행하는 사람한테 사정하는 건 흔한 수법이다. 동정을 사서 조사원을 자기편으로 돌리려는 거다. 위험한 사람이라는 말도 접근금지 명령이라는 말도 다 부풀린 거겠지. 이혼하는 부부는 서로를 괴물이라 부른다. 나는 그런 걸 수백 번 봤다. 눈물은 연기다. 나는 눈물에 안 속는다. 그게 내 자부심이었으니까.
여자는 내 팔을 붙잡았다. 손이 얼음장 같았다. "저 사람한테 잡히면 저 진짜 죽어요. 애는요. 애는 어떡해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그 손을 가만히 떼어냈다. 이런 순간에 흔들리면 이 일 못 한다. 다 연기라고 생각해라. 내가 후배들한테 늘 하던 말이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울렸다. 나는 그 말에 충실했다. 여자의 공포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내 이십 년 경력을 썼고 그 경력은 연기라고 판정했다. 판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흔들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나는 여자에게 짧게 말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등 뒤에서 여자가 다시 뭐라고 외쳤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오히려 조금 우쭐했다. 저렇게 매달리는 걸 보니 내가 제대로 찾은 게 맞구나. 초보 조사원이었으면 저 눈물에 넘어가 일을 그르쳤겠지. 나는 그날 밤 의뢰인에게 주소와 사진을 넘겼다. 잔금을 받았다. 그는 봉투를 건네며 또 눈시울을 붉혔다. "고맙습니다. 딸아이만 보면 됩니다." 나는 그 눈물도 연기라는 걸 알았다. 다만 어떤 연기인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 나는 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까지만 알았고 그 거짓말이 무엇을 하려는 거짓말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5
닷새 뒤 나는 그 도시 이름을 뉴스에서 봤다.
작은 반찬가게.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찾아온 남자. 그 남자가 벌인 일. 여자는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갔고 딸아이는 이웃집으로 피했다. 남자는 현장에서 달아났다. 기사에는 남자가 두 달 넘게 여자의 행방을 찾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주소를 알아냈다고 적혀 있었다. 최근에야. 그 최근이 언제인지 나는 안다. 내가 주소를 넘긴 그날이다. 나는 그 기사를 세 번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여자가 내 팔을 붙잡던 얼음장 같은 손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저 사람한테 잡히면 저 진짜 죽어요. 여자의 그 말이 기사 한 줄 한 줄 위로 겹쳤다.
경찰이 나를 찾아온 건 그다음 주였다.
남자는 잡히지 않았다. 명함도 이름도 다 가짜였다. 내가 받은 착수금과 잔금은 대포통장에서 나왔다. 그 남자는 처음부터 흔적을 지운 채 나를 찾아온 거였다. 유일하게 흔적이 남은 사람은 나였다. 여자의 새 주소를 알아내 그 남자 손에 쥐여준 사람. 접근금지 대상에게 피해자의 위치를 팔아넘긴 사람. 경찰은 그걸 스토킹 방조라 불렀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 불렀다. 남자는 사라졌고 나는 남았다. 그 남자가 벌인 일의 유일한 통로가 나였다.
형사는 내게 물었다. 대상 여성을 조사 과정에서 직접 대면한 적이 있느냐고. 나는 잠깐 망설였다. 거짓말을 할까도 생각했다. 이십 년 동안 남의 거짓말만 잡던 내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궁리했다. 하지만 여자의 가게 앞 골목에는 CCTV가 있었다. 나와 여자가 마주 선 그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나는 만난 적 있다고 답했다. 형사가 다시 물었다. 그 자리에서 여성이 무슨 말을 했느냐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조사를 받으며 나는 여자의 진술서 일부를 들었다. 여자는 사건 며칠 전 자기를 미행하던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그 남자에게 제발 위치를 알리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고 했다. 위험한 사람이라고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은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했다. 진술서에는 그 뒤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람 잘못 봤다면서 그냥 가버렸어요."
나는 그 문장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여자는 나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내 앞에서 진실을 말한 사람이었다.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도 접근금지 명령도 죽을 뻔해서 도망쳤다는 것도 전부 사실이었다. 나는 평생 의뢰인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데 능했다. 그런데 정작 눈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했다. 눈물에 안 속는다는 그 자부심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진짜 눈물을 연기로 읽는 것. 그게 내 이십 년이 도달한 곳이었다.
나는 그 문장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여자는 나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내 앞에서 진실을 말한 사람이었다.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도 접근금지 명령도 죽을 뻔해서 도망쳤다는 것도 전부 사실이었다. 나는 평생 의뢰인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데 능했다. 그런데 정작 눈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했다. 눈물에 안 속는다는 그 자부심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진짜 눈물을 연기로 읽는 것. 그게 내 이십 년이 도달한 곳이었다.
6
이제 사람을 찾는 건 내가 아니다.
경찰이 그 남자를 찾고 있다. 그리고 나를 찾고 있다. 정확히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를 찾고 있다. 여자가 나한테 위험하다고 말한 걸 내가 들었는지. 들었다면 왜 그 주소를 넘겼는지.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할 말이 없다. 들었다. 분명히 들었다. 두 손을 모으고 우는 여자의 목소리로 똑똑히 들었다. 다만 그걸 연기로 판정한 게 나였을 뿐이다.
의뢰인은 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십 년 동안 나는 그 문장을 방패처럼 들고 다녔다. 그 방패 덕에 나는 누구한테도 안 속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그 방패가 결국 나를 찔렀다.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고 믿으면 진실을 말하는 단 한 사람을 놓친다. 그 한 사람이 살려달라고 한 사람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늘 내가 세상을 읽는 쪽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의 표정 뒤를 읽고 말 뒤를 읽고 눈물 뒤를 읽는 사람. 읽히는 쪽은 언제나 남이었다. 그런데 그 골목에서 진짜로 뭔가를 읽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여자였다. 여자는 나를 한눈에 읽었다. 이 남자는 사정해도 소용없는 사람이구나. 눈물 따위 통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그걸 알고도 여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매달려 본 거였다. 나는 그 여자의 마지막 판단마저 연기로 읽었다. 읽는 자가 읽혔고 그것도 정확하게 읽혔다.
나는 지금도 그 골목에 서 있던 여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두 손을 모으던 사람. 나는 그 얼굴을 보고도 그 뒤에 감춘 게 뭘까만 계산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감춰져 있지 않았다. 감출 게 없어서 그렇게 솔직하게 무서워한 거였다. 나는 사람의 거짓을 읽는 데 평생을 썼다. 그러느라 사람이 진실을 말할 수도 있다는 걸 잊었다. 눈물에 안 속는다던 나는 결국 딱 한 번의 진짜 눈물에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그 한 번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