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홍보관 영업사원
나이 46세
성별 남자
특징 누가 외로운지 한눈에 안다
1
세상에서 제일 슬픈 박수 소리를 아십니까.
외로운 노인의 박수 소리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 몇 달째 누구와도 마주 앉아 밥을 먹어본 적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모처럼 무대 앞에 앉아 누군가의 시시한 농담에 웃을 때, 그 박수는 너무 크고 너무 길다.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친다. 박수를 멈추면 다시 혼자가 되니까. 나는 그 소리로 사람을 안다. 강의장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그 길고 외로운 박수 한 번이면, 저 사람이 오늘 내 손님이 될지 안 될지 거의 다 보인다.
나는 건강용품 홍보관에서 일한다. 사람들은 우리를 '떴다방'이라 부르고, 사기꾼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번 우리 강의장에 와보시라. 아침 아홉 시면 동네 어르신 백 명이 줄을 선다. 공짜 달걀 한 판, 휴지 한 묶음, 박카스 한 박스. 그걸 받으러 온다고들 하지만, 천만에. 그 달걀은 핑계다. 그분들은 갈 데가 없어서 온다. 자식들은 명절에나 얼굴 비치고, 경로당은 텃세가 심하고, 집에 있으면 천장만 보인다. 그런데 우리 강의장에 오면, 내가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손을 잡아드리고, 노래를 불러드리고, 박수를 쳐드린다. 두 시간 동안 그분들은 외롭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가 파는 게 원적외선 온열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외로움에 약을 판다. 자식이 안 주는 관심을 대신 준다. 그 대가로 매트 한 장에 삼백팔십만 원을 받을 뿐이다. 비싸다고? 요양원 한 달이 얼만지 아시나. 자식들이 명절에 들고 오는 영양제 세트는 또 얼마나 쓸모가 없나. 나는 적어도 매일 아침 그분들을 웃게 만든다. 세상에 남의 처지로 먹고사는 직업이 한둘인가. 의사도, 요양원도, 상조회사도 다 그렇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따뜻하게, 웃으면서 한다.
사장은 늘 말한다. 외로운 사람을 찾아라, 돈 있고 외로운 사람을. 외로움과 통장이 만나는 그 자리에 우리 매출이 있다고. 십이 년을 이 바닥에서 굴렀으니, 나는 그 자리를 한눈에 짚는다. 어떤 어르신이 진짜 외로운지, 어떤 분이 통장을 쥐고 있는지, 어떤 분이 자식한테 서운한 게 많아서 '내 돈 내가 쓰겠다'며 지갑을 열지. 십이 년 동안, 나는 그 눈썰미가 빗나간 적이 없다.
2
그 어머니가 처음 강의장에 들어선 날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박순임, 일흔여덟. 곱게 쪽 찐 머리에 옥색 한복 저고리를 받쳐 입고, 손에는 낡았지만 값나가 보이는 가죽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 손가방을 보는 순간 사장 말이 떠올랐다. 돈 있고 외로운 사람. 옷매무새는 정갈한데 눈빛이 허전했다. 영감님 얘기를 물으니 삼 년 전에 먼저 보냈다고 했다. 자식 얘기를 물으니 서울 사는 아들이 일 년에 두어 번 전화한다며, 그 말끝에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완벽한 손님이다.
그날 강의가 끝나고, 그 어머니는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다른 분들은 달걀 받아 들고 우르르 나가는데, 그분은 앞자리에 앉아 내가 정리하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삶은 달걀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총각, 이거 먹어. 아침도 안 먹고 떠드느라 힘들지." 나는 잠깐 멈칫했다. 내가 공짜 달걀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사람인데, 손님이 나한테 삶은 달걀을 쥐여준다. 묘한 기분이었지만, 이내 웃었다. 정 많은 어머니구나. 이런 분이 제일 잘 산다. 정이 많은 사람은 거절을 못 하니까.
나는 그날 저녁, 사장에게 자신 있게 보고했다. "사장님, 이번 달 대어 하나 들어왔습니다. 일흔여덟, 혼자 살고, 가방이 명품이고, 영감 보내고 자식한테 서운한 게 많은 분이에요. 딱입니다." 사장이 흡족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십이 년 동안 내 보고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그 자리에서 나는 박순임 어머니를 '이번 달 작업 일 순위'로 점찍었다. 돈 있고 외로운 노인. 교과서에 나올 법한 완벽한 손님. 나는 그 완벽함을 한 점도 의심하지 않았다. 너무 완벽한 손님은 누군가 일부러 완벽하게 만들어 보낸 손님일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날부터 박순임 어머니는 매일 강의장에 나왔다. 늘 같은 자리, 맨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았다. 강사인 내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자리가 가방 속 녹음기에 내 목소리가 가장 또렷하게 담기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건, 한 달 뒤에야 알았다. 그분은 내 농담에 제일 크게 웃었고, 박수도 제일 길게 쳤다. 그 길고 외로운 박수 소리. 나는 매일 아침 그 소리를 들으며 확신했다. 다 익었다. 이제 흔들기만 하면 떨어진다.
3
이 일에는 순서가 있다.
첫 주는 절대 물건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저 웃겨드리고, 손잡아드리고, 이름을 외워서 불러드린다. "순임 어머니, 오늘 저고리 색이 참 곱네요." 그 한마디에 일흔여덟 어머니의 얼굴이 소녀처럼 환해진다. 둘째 주가 되면 슬슬 건강 얘기를 깐다. 어머니 그 무릎, 그거 그냥 두면 큰일 나요. 우리 어머니도 그러다 못 걸으셨어요. 공포를 한 숟갈 넣는다. 외로움에 공포를 섞으면,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그 지푸라기가 바로 삼백팔십만 원짜리 매트다.
박순임 어머니한테도 나는 그 순서를 밟았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좀 달랐다. 무릎이 아프다는 말에 내가 "원적외선이 관절에 침투해서 염증을 싹 빼준다"고 하자, 그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게 의료기로 허가가 난 거야? 진짜로 병이 낫는 거야?" 나는 잠깐 말이 막혔다. 사실 그건 공산품이지 의료기가 아니고, 병을 고친다고 말하면 법에 걸린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그런 걸 따지지 않는다. 그냥 낫는다니까 좋아한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또박또박 되물었다. "허가증 있어? 그 종이 한번 보여줘봐."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어머니, 그런 어려운 건 신경 쓰지 마시고, 효과만 보시면 되죠. 그러자 그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총각 말이 맞지. 늙은이가 뭘 알겠어." 나는 안심했다. 깐깐한 줄 알았는데, 결국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그 미소가 좀 이상했다. 따지다 말고 너무 쉽게 물러나는 사람은 따질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다 받아 적은 사람이라는 걸, 나는 십이 년이나 하고도 몰랐다.
한번은 그분이 지나가듯 물었다. "총각, 이런 거 사면 혹시 나중에 무르고 싶을 때 무를 수 있어? 우리 같은 늙은이는 자식들이 자꾸 뭐라 그러니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어머니, 무르긴 뭘 물러요. 한번 효도하시는 거지. 그리고 우리는 한번 계약하면 못 무르는 거예요. 그게 규정이에요." 사실 방문판매로 산 물건은 십사 일 안에는 무조건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그게 법이다. 못 무른다고 겁주는 것 자체가 위법이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법을 모르니까, 못 무른다고 하면 더 신중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내 페이스에 말려든다. 그분은 "아, 그렇구나" 하고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게 포기인 줄 알았다. 그분은 그 대답을, 빨간 불이 켜진 가방 속에다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또 한번은 영감님 얘기를 꺼냈다. "우리 영감도 살아생전에 이런 거 하나 사고 싶어 했는데." 나는 반색했다. "어머, 그럼 어머니가 영감님 몫까지 효도하시면 되겠네요." 그분은 잠깐 나를 빤히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감 몫까지 해야지." 나는 그 말을 매출로 들었다. 그분은 다른 뜻으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영감 몫까지 받아내겠다는 뜻이었다는 걸, 그날의 나는 알 리가 없었다.
매일 그분은 내게 삶은 달걀을 주었다. 어떤 날은 박카스를, 어떤 날은 손수 부친 부침개를 신문지에 싸 왔다. "아들 같아서 그래." 그 말이 좋았다. 나는 그 말을 영업의 신호로 읽었다. 나를 아들처럼 여기는 사람은 아들한테 못 한 걸 나한테 한다. 통장을 연다. 나는 마음 놓고 마지막 단계를 준비했다.
4
'효도 매트의 날'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큰 행사다.
그날은 사장이 직접 와서 강의장을 꽃으로 꾸미고, 트로트 가수를 부르고, 점심으로 갈비탕을 돌린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그 순간, 내가 마이크를 잡는다. "어머니, 아버님. 오늘 딱 하루만, 정말 오늘만 드리는 혜택이에요." 평소 삼백팔십만 원 하던 매트를, 오늘만 특별히, 효도 가격으로. 사실 그 '오늘만'은 매달 돌아온다. 하지만 외로운 사람에게 '오늘만'이라는 말은 마법이다. 지금 안 잡으면 영영 못 잡을 것 같은 그 조급함. 그게 지갑을 연다.
나는 박순임 어머니를 따로 상담실로 모셨다. 한 달을 공들인 손님이다. 오늘이 수확하는 날이었다. 상담실은 일부러 좁고 따뜻하게 꾸며둔다. 단둘이 마주 앉으면, 노인들은 거절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문 앞에는 다른 직원이 지키고 서서 자리를 뜨고 싶어도 못 뜨게 한다. 나는 그분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가장 정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제가 친아들이라면 이걸 안 권하겠어요? 어머니 그 무릎으로 앞으로 십 년을 더 사셔야 하는데. 오늘만 드리는 혜택이에요. 두 장 하시면 한 장 값에 드릴게요. 한 장은 어머니 쓰시고, 한 장은 나중에 며느리 주세요."
내 목소리는 떨림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십이 년 동안 갈고닦은 목소리다. 이 목소리 앞에서 안 넘어간 노인이 없었다.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내고 있었다. 두 장이면 칠백육십, 어머니 형편에 세 장까지도 가능하겠다, 이번 달 일 등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그 계산을 하는 내 얼굴에 떠올랐을 미소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어머니는 한참을 가만히 내 손을 보더니, 천천히 가방을 열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저 낡은 가죽 가방 안에서 통장이 나올 차례였다. 그런데 그분이 꺼낸 건 통장이 아니었다. 빳빳한 서류 봉투 하나였다. 그리고 작은 녹음기 하나. 구식 카세트 녹음기였다.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총각, 이거 한 달 내내 돌아갔어. 첫날 자네가 한 말부터 오늘 이 말까지 다 들어 있어."
5
나는 그 빨간 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는 서류 봉투를 열어 사진 한 장을 테이블에 올렸다. 칠순 잔치 사진이었다. 곱게 쪽 찐 머리의 박순임 어머니 옆에, 인자하게 웃는 영감님이 앉아 있었다. "우리 영감이야. 삼 년 전에 갔지. 자네 말처럼, 외롭고 돈 있는 노인이었어."
봉투에서 두 번째 종이가 나왔다. 빛바랜 계약서였다. 원적외선 온열매트, 삼백팔십만 원. 거기에 또 한 장, 같은 매트의 두 번째 계약서. 또 한 장, 세 번째. 날짜가 한 달 간격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매트가 다섯 장이었다. 일천구백만 원. 계약서 맨 아래 판매사원 이름은 회사는 달랐지만 글씨체가 어딘가 낯익었다. 그건 삼 년 전의 나였다. 내가 그때 다른 홍보관에서 쓰던 가명이었다.
"우리 영감이 그때 혼자 다녔어.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외로우니까 매일 그 강의장에 갔겠지. 자네 같은 사람이 어머니 아버님 하면서 손잡아주니까 좋았겠지. 다섯 장을 샀더라고. 우리 전세 보증금까지 빼서. 그러고는 나한테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다가 그게 들통난 날 밤에 심장을 잡고 쓰러졌어. 부끄러워서 죽은 거야. 자식들한테 사기당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영감 보내고 그 계약서를 찾았어. 소비자원에도 가봤고, 경찰서에도 가봤지. 그런데 다들 그러더라고. 어르신이 제 발로 와서 제 손으로 도장 찍은 거라, 사기로 잡기가 어렵다고. 증거가 없다고. 그래서 내가 만들기로 했어. 증거를. 일 년을 준비했어. 자네가 어느 홍보관으로 옮겼는지 찾는 데 반년, 자네 강의장에 자연스럽게 섞여 드는 데 또 몇 달. 돈 있고 외로운 노인인 척하는 건 어렵지 않더라고. 자네가 그렇게 봐주길 바라면서 딱 그렇게 굴면 됐으니까."
그 길고 외로운 박수도, 매일 건네던 삶은 달걀도, 허가증을 묻다 말고 물러나던 그 미소도, 전부 연기였다. 아니, 연기가 아니었다. 그분은 진짜 외로웠고, 진짜 남편을 잃었고, 그 진짜를 미끼로 나를 한 달 동안 키운 거였다. 내가 어머니들한테 하던 그대로. 첫 주엔 웃겨주고, 둘째 주엔 마음을 열게 하고, 마지막에 거두는. 나는 한 달 내내 이 어머니를 작업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작업당한 건 나였다.
6
강의장이 텅 비었다.
트로트 가수도, 갈비탕 냄새도, 백 명의 박수 소리도 다 빠져나간 자리에,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무대 옆에는 내일 또 나눠줄 공짜 달걀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손님을 끌어모으는 미끼. 그 달걀을 보고 있자니, 한 달 동안 내 손에 삶은 달걀을 쥐여주던 어머니의 손이 자꾸 겹쳐졌다. 누가 누구를 미끼로 끌어모은 걸까.
어머니는 봉투와 녹음기를 도로 챙겨 넣으며, 마지막으로 내게 한마디를 남기고 일어섰다. "총각, 이건 오늘만 주는 혜택이 아니야. 이제 시작이거든." 그러고는 강의장 문을 나섰다. 발걸음이 처음 들어오던 날처럼 또박또박 정확했다. 허전한 눈빛으로 들어와 일 년을 벼린 칼을 품고 나가는 그 뒷모습을, 나는 잡을 수 없었다.
저 녹음기가 어디로 갈지는 뻔하다. 소비자원으로, 경찰서로, 방송국 제보 게시판으로. 의료기로 허가도 안 난 매트를 병이 낫는다고 판 것, 오늘만이라며 거짓 한정으로 노인을 압박한 것, 한 달을 공들여 외로움을 작업한 것. 그게 다 그 카세트테이프 안에서 빨갛게 돌아갔다.
그런데 정작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건 그게 아니다. 매일 아침 그 길고 외로운 박수를 치던 백 명의 어머니, 아버님. 나는 그분들을 한눈에 읽는다고 믿었다. 누가 외롭고, 누가 돈이 있고, 누가 곧 지갑을 열지. 그런데 이제는 모르겠다. 저 박수 소리 중에 또 누가 외로운 척하며 나를 읽고 있었을까. 정갈한 옷매무새에 허전한 눈빛으로 앉아, 일 년을 벼리며 내 농담에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치고 있던 사람이 박순임 어머니 하나뿐이었을까.
나는 산처럼 쌓인 달걀을 한참 바라보다가 내일 아침 저 자리에 또 누가 앉을지 가늠해보려 했다. 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그게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