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무인 편의점은 내 거다. 물론 진짜 내 건 아니다. 근데 밤에는 내 거다. 밤에는 아무도 안 오니까.
나는 열한 살이고, 엄마는 밤에 일한다. 식당에서 설거지를 한다. 밤 열 시에 나가서 아침에 온다. 그래서 밤에 집에는 나 혼자다. 혼자 있는 건 안 무섭다. 나는 겁이 없다. 다만 집이 너무 조용하면 배가 더 고픈 것 같다. 이상하게 그렇다. 조용하면 배가 고프다.
집에 혼자 있으면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 놓는다. 사람 소리가 나야 덜 조용하니까. 근데 텔레비전 속 사람들은 나한테 말을 안 건다. 그냥 자기들끼리 떠든다. 배가 고프면 텔레비전 소리도 잘 안 들린다. 배에서 나는 소리가 더 크다. 그러면 나는 신발을 신는다.
그럴 때 나는 무인 편의점에 간다. 우리 빌라에서 오십 걸음. 밤에도 환하고 따뜻하고, 삼각김밥이 있고, 아무도 나한테 몇 학년이냐고, 엄마는 어디 갔냐고 안 묻는다. 무인 편의점은 그런 걸 안 묻는다. 나는 그게 좋다.
엄마는 밤에 한 번씩 전화한다. 밥 먹었어? 응, 먹었어. 뭐 먹었어? 삼각김밥. 또 삼각김밥이야, 다른 것도 좀 먹어. 응. 엄마 이제 일해야 해, 사랑해. 나도. 통화는 늘 삼십 초쯤이다. 엄마 뒤로 그릇 부딪는 소리, 물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그 소리 속에서 나한테 사랑한다고 한다. 나는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배가 안 고프다.
무인 편의점에도 규칙이 있다. 내가 정한 거다. 첫째, 삼각김밥은 전주비빔이 제일 맛있다. 둘째, 참치마요는 밥이 눌려서 별로다. 셋째, 우유는 1+1 할 때만 산다. 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데 안 사면 손해다. 손해 보는 건 바보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넷째, 계산은 꼭 한다. 이게 제일 중요한 규칙이다.
이건 아무도 안 가르쳐 줬는데 내가 혼자 알아낸 거다. 삼각김밥은 전자레인지에 삼십 초만 돌리면 딱 좋다. 오십 초 돌리면 김이 눅눅해진다. 그리고 밤 열한 시쯤 되면 아저씨가 와서 유통기한 지날 거에 노란 스티커를 붙인다. 반값. 나는 그 시간을 노린다. 노란 스티커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거다. 부자들은 노란 스티커 안 붙은 걸 산다. 나는 노란 스티커 전문가다.
겨울에는 온장고가 최고다. 호빵이랑 따뜻한 캔커피가 들어 있다. 캔커피는 어른 거지만 나는 호빵을 좋아한다. 손이 시릴 때 온장고 문을 열면 뜨듯한 김이 확 나온다. 나는 그 앞에 한참 서 있는다. 히터 대신이다. 우리 집은 밤에 보일러를 아껴야 해서 좀 춥다. 근데 편의점은 안 춥다. 그래서 겨울엔 더 자주 간다.
계산대 앞에 서서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대면 삑 소리가 난다. 나는 그 삑 소리가 좋다. 삑, 하면 이제 이건 내 거다, 하는 소리 같다. 돈 내고 산 거니까 진짜 내 거다. 훔친 게 아니니까.
천장에는 카메라가 있다. 빨간 불이 깜박인다. 나는 저 카메라 안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멀리서 이 편의점을 보는 사람. 처음엔 그게 무서웠는데 지금은 안 무섭다. 오히려 좋다. 나 혼자 있는데 누가 보고 있다는 거니까. 집엔 아무도 없는데, 여긴 누가 나를 본다.
그래서 나는 편의점에 들어갈 때마다 카메라한테 인사한다. 손을 흔든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카메라는 대답을 안 한다. 근데 빨간 불이 깜박이는 게 꼭 대답 같다. 어, 왔어. 밥 먹으러 왔어? 그런 거 같다. 바보 같은 거 안다. 근데 밤에 혼자 있으면 카메라한테라도 인사하고 싶다.
나는 카메라한테 이름도 지어 줬다. 그냥 카메라라고 부르기가 좀 그래서. 이름은 비밀이다.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 줄 거다. 근데 카메라도 자기 이름 있는 걸 좋아할 거다. 이름이 있으면 그냥 기계가 아니라 누가 되니까.
그런데 지난달에, 나쁜 짓을 했다.
그날 엄마 월급이 밀렸다. 사장님이 며칠만 기다리라고 했다고, 엄마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근데 그날 밤 진짜 배가 고팠다. 냉장고에 김치밖에 없었다. 김치만 먹으니까 더 배고팠다. 나는 무인 편의점에 갔다. 삼각김밥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전주비빔. 팔백 원. 그날 나한테는 팔백 원이 없었다.
나는 카메라를 봤다. 카메라는 깜박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삼각김밥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뛰었다. 삑 소리는 안 났다. 훔친 거니까. 삑 소리가 안 나는 건, 내 게 아니라는 뜻이다.
집에 와서 삼각김밥을 먹었다. 맛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삼각김밥이었다. 전주비빔인데 맛이 없었다. 먹는 내내 카메라가 생각났다. 빨간 불. 그 안의 사람. 그 사람이 다 봤을 거다.
그날부터 잠이 안 왔다. 경찰이 올 것 같았다. 아니면 사장님이 엄마한테 전화할 것 같았다. 댁의 아들이 삼각김밥을 훔쳤어요, 하고. 엄마가 알면 울 거다. 엄마는 화내는 것보다 우는 게 더 무섭다. 나는 며칠 동안 편의점 앞을 일부러 돌아서 다녔다. 카메라를 볼 자신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그 생각만 났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뭘 물어봐도 삼각김밥 생각만 났다. 만약에 경찰이 오면 뭐라고 하지. 배고파서 그랬어요, 하면 봐줄까. 텔레비전에서는 배고파서 훔친 사람은 봐주던데. 근데 그건 옛날 얘기고 빵이었다. 삼각김밥은 어떨까. 나는 밤마다 변명을 연습했다. 근데 연습할수록 더 나쁜 짓 같았다.
그런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갔다. 경찰도 안 오고, 엄마 전화도 안 오고, 아무것도 안 왔다. 처음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안 왔다는 건, 아무도 안 봤다는 거 아닌가. 카메라 안에 사람이 없는 거 아닌가.
그게 더 무서웠다. 혼날 줄 알았는데 혼날 사람조차 없어서. 내가 나쁜 짓을 했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게, 나쁜 짓을 한 것보다 더 쓸쓸했다. 카메라는 그냥 기계였나 보다. 나를 보던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나 보다. 나는 그동안 기계한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던 거다. 그게 좀 창피했다.
그래도 나는 결심했다. 돈이 생기면 갚기로. 설날에 큰아빠가 만 원을 줬다. 나는 그걸 들고 편의점에 갔다. 삼각김밥 전주비빔을 두 개 계산했다. 하나는 그때 훔친 거, 하나는 미안해서. 삑, 삑. 두 번 소리가 났다. 그리고 종이에 편지를 썼다.
사장님께. 지난달에 삼각김밥 하나 훔쳐서 죄송합니다. 오늘 두 개 값 냈어요. 카메라로 보셨죠? 다신 안 그럴게요. 진짜로요.
나는 그 편지를 계산대 옆, 카메라가 제일 잘 보이는 데 붙여 놨다. 그리고 카메라한테 꾸벅 절을 했다. 진짜 죄송하다고. 그리고 집에 왔다.
며칠 동안 나는 매일 편의점에 갔다. 답장이 있을까 봐. 근데 없었다. 내 편지는 그대로 붙어 있었다. 아무도 안 뗐다. 아무도 안 읽은 것 같았다. 역시 카메라 안엔 사람이 없구나. 나는 좀 슬펐다. 사과를 했는데 받아 줄 사람이 없는 건, 사과를 못 한 거랑 똑같으니까.
그러다 일주일쯤 뒤였다. 그날도 편의점에 갔는데, 내 편지가 없어져 있었다. 누가 뗀 거다. 그리고 그 자리, 전자레인지 옆에, 처음 보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인쇄한 게 아니라 손으로 쓴 거였다.
잘 봤다. 다 용서했으니까 걱정 마. 배고프면 다음부턴 훔치지 말고, 여기서 하나 꺼내 먹어. ─ 사장
종이 밑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있었다. 삼각김밥이 몇 개 들어 있었다. 상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배고픈 사람 그냥 드세요.
나는 상자에서 삼각김밥을 꺼내도 되나 한참 고민했다. 이게 진짜 나 먹으라는 건지, 아니면 시험인지. 꺼내면 또 훔치는 건가. 근데 종이에 그냥 드세요, 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하나 꺼냈다. 전주비빔이었다. 사장님은 내가 전주비빔 좋아하는 것까지 아는 것 같았다. 그날 삼각김밥은 안 맛없었다. 오히려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훔친 게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그 앞에서 좀 울었다. 열한 살이나 됐는데 울었다. 근데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우는 걸 카메라만 봤을 거다. 카메라는 괜찮다. 카메라한테 우는 건 안 창피하다.
그러니까 카메라 안엔 사람이 있었던 거다. 나를 보던 사람. 내가 나쁜 짓 하는 것도 봤고, 사과하는 것도 봤고, 배고픈 것도 봤던 사람. 그 사람은 경찰을 부르지도, 엄마한테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냥 삼각김밥 상자를 놔뒀다. 나는 그 사람 얼굴을 모른다. 목소리도 모른다. 근데 그 사람은 나를 안다. 밤마다 삼각김밥을 먹는 열한 살을.
나는 사장님이 쓴 종이를 떼어서 집에 가져왔다. 바카라상 앞에 붙여 놨다. 잘 봤다, 다 용서했으니까 걱정 마. 나는 그걸 자기 전에 한 번씩 읽는다. 누가 나를 보고 있다는 말은, 낮에 들으면 좀 무서운데 밤에 자기 전에 읽으면 안 무섭다. 오히려 따뜻하다. 이불 같다.
한번은 밤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채우는 아저씨를 봤다. 트럭을 몰고 와서 냉장고를 채우고, 바닥을 닦고 갔다. 나는 저 아저씨가 사장님인가 했다. 물어보려다 말았다. 아저씨는 나를 안 봤다. 카메라만 봤다. 어쩌면 저 아저씨도 그냥 채우러 온 사람이고, 사장님은 또 다른 먼 데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무인 편의점에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람이 안 보이는 데 있는 거다. 나는 그걸 알게 됐다.
나는 가끔 사장님을 만나 보고 싶다. 근데 또 안 만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만나면 그냥 평범한 아저씨나 아줌마일 거다. 근데 안 만나면, 사장님은 카메라 안에서 나를 계속 봐 주는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 얼굴이 없으면 어디에나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사장님이 얼굴 없이, 그냥 나를 봐 주는 사람으로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나는 가끔 그 상자에 내 것도 넣는다. 큰돈은 아니고 백 원짜리 몇 개. 나 같은 애가 또 올지도 모르니까. 밤에 혼자 배고픈 애. 그 애도 카메라한테 인사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처럼 덜 무서울 거다. 사장님이 나한테 한 걸, 나는 백 원어치밖에 못 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받은 건 어디로든 돌려보내야 한다고.
요즘도 나는 밤에 편의점에 간다. 이제 삼각김밥은 꼭 계산한다. 삑. 내 거다. 그리고 나갈 때 카메라한테 손을 흔든다. 안녕히 계세요. 저 갈게요. 카메라는 여전히 대답을 안 한다. 근데 빨간 불이 깜박이는 게, 나는 여전히 대답 같다. 어, 가. 조심히 가. 밥 잘 먹고.
엄마는 아직도 밤에 일한다. 집은 아직도 조용하다. 근데 이제 나는 안다. 세상 어딘가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아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걸.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으면, 밤이 그렇게까지 안 무섭다. 나는 원래도 겁이 없는 애지만, 그건 좀 다른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