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몸에 있는지 세상에 있는지에 대하여
바카라은 종이로 오지 않았다.
화요일 저녁 도서관 계정에 데이지자료 하나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파일을 열자 보이스오버가 가장 먼저 읽어 준 것은 본문이 아니라 저작권 고지였다.
이 자료는 시각장애인 등의 이용을 위해 데이지자료로 제작한 것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들었다.
장애가 무엇인지를 묻는 바카라이 내 손에 닿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가 한 번 작동해야 했다.
인쇄된 『장애란 무엇인가』는 내게 오지 않는다.
시각장애인복지관이 그것을 음성으로 풀어내고 국립장애인도서관이 검수를 마친 다음에야 이 바카라은 비로소 내가 읽을 수 있는 바카라이 되었다.
1장을 펴기도 전에 나는 이미 1장의 논지 안에 들어와 있었던 셈이다.
버거는 1장에서 손상과 장애를 갈라놓는다.
손상은 몸의 사실이고 장애는 그 몸을 맞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의 사실이다.
그가 든 예시 하나가 오래 귓가에 남았다.
안경을 쓴 사람은 자신을 손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정 렌즈가 너무 흔해져서 그것이 손상을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안경이라는 기술이 세상에 아예 없었다면 그 시력은 곧장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 화면 낭독기를 떠올렸다.
내 보이스오버는 아직 안경만큼 흔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 시각 손상은 종이 앞에서 매번 장애로 다시 태어난다.
같은 바카라이 인쇄본일 때는 장벽이고 데이지일 때는 그냥 바카라이다.
손상은 그대로인데 장애만 켜졌다 꺼졌다 한다.
버거의 문장은 추상이었지만 내게는 화요일 저녁의 알림음만큼 구체적이었다.
1장에는 장애학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비유가 나온다.
장애인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을 그 뒤에서 마주 쳐다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응시를 되돌려준다는 그 말이 멋졌지만 동시에 나는 잠깐 멈췄다.
나는 응시를 시선으로 되돌려주지는 못한다.
대신 나는 듣는다.
버스 옆자리 사람이 탱고를 알아보고 숨을 살짝 들이켜는 소리를.
식당에서 종업원이 보보에게 먼저 내 주문을 묻는 그 짧은 침묵을.
나를 향한 시선을 나는 보지 못하지만 그 시선이 만드는 공기의 온도 변화는 안다.
응시를 되돌려주는 방식이 꼭 눈일 필요는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시각장애인 독자가 이 바카라의 여백에 적어 넣을 수 있는 한 줄의 각주인지도 모른다.
버거는 우리가 장애를 말하는 언어도 들여다본다.
눈을 감아 버린다는 말이 무관심을 뜻하고 귀를 닫는다는 말이 외면을 뜻한다.
보지 않음과 듣지 않음이 도덕적 결함의 은유로 쓰인다.
내 몸의 조건이 다른 사람의 게으름을 가리키는 비유로 굴러다니는 셈이다.
나는 이 비유들에 오래 화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것들이 얼마나 무심하게 입에서 흘러나오는지를 기록해 둘 뿐이다.
비장애중심주의가 무서운 까닭은 그것이 악의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해져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장의 끝에서 버거는 조앤 톨리프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쪽 팔이 짧은 그녀가 오랫동안 자신을 혼자라고 느꼈다는 것.
그러다 비슷한 몸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앉고 나서야 자신의 사적인 고통이 실은 훨씬 넓은 집단의 무늬였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
밀즈는 이것을 슬롯학적 상상력이라고 불렀다.
한 개인의 곤란이 사실은 공적인 쟁점이라는 자각이다.
나는 이 문장 앞에서 그동안 내가 더듬더듬 써 온 글들을 떠올렸다.
화면 낭독기가 멈춰 버린 화요일도 비대면 진료 앱 앞에 나란히 멈춰 선 두 사람도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한 사람의 멈춤은 한 사람의 불운이 아니라 설계의 무늬다.
버거의 1장은 내가 이름 없이 품고 있던 그 직관에 이름을 붙여 주었다.
바카라을 다 듣고 나서도 정의는 깔끔하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장애가 무엇인지 1장은 끝내 한 문장으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누가 그것을 정의하며 무슨 목적으로 정의하는가를 되묻는다.
나는 그 미결의 상태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정의가 확정되는 순간 누군가는 또 그 정의 바깥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파일을 닫으니 보이스오버가 마지막으로 저작권 고지를 한 번 더 읽었다.
시각장애인 등의 이용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장애가 무엇인지 묻는 바카라이 장애 덕분에 내게 도착했고 장애 때문에 내게 읽혔다.
1장의 가장 좋은 예시는 어쩌면 이 바카라 자체였다.
그나저나 다 듣고 나서 보보에게 무슨 바카라이냐고 물었더니 제목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철학과에서 평생 존재란 무엇인가를 붙잡고 사는 사람이 장애란 무엇인가를 듣는 사람과 한집에 살고 있으니 이 집은 온통 무엇인가로 가득하다고.
탱고는 그사이 내 발치에서 코를 골았다.
무엇인가에 가장 초연한 건 역시 서당개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