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도 속은 적이 없다

by김경훈

직업 보험조사관

나이 51세

성별 남자

특징 거짓말을 냄새로 안다



1


보험금을 노린 거짓말에는 냄새가 있다.

진짜로 다친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 설명하느라 바쁘다. 어디가 어떻게 결리고, 어느 자세에서 통증이 도지고, 밤에 몇 번이나 깨는지. 통증은 지긋지긋할 만큼 구체적이다. 반대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억울한지 설명하느라 바쁘다. 회사가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자기 인생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억울함은 늘 추상적이다. 통증은 손가락으로 한 점을 가리키는데, 억울함은 두 손으로 허공을 휘젓는다. 그 차이를 못 읽으면 이 바닥에서는 한 달도 못 버틴다.

나는 손해보험사 특수조사팀에서 십구 년을 굴렀다. 별명이 '저승사자'다. 내가 파일을 받으면 그 보험금은 안 나간다는 뜻이다. 회사는 나를 좋아한다. 작년에 내가 막아낸 보험금이 사십억이 넘는다. 사십억이면, 회사 입장에서 나는 그 자체로 효자 상품이다. 연말 시상식 때마다 단상에 올라 상패를 받는 사람이 나다. 부사장이 내 손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들면서, 우리 회사 곳간을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추켜세운다. 그 순간만큼은, 십구 년 동안 남의 거짓말이나 들여다보며 산 인생이 그럭저럭 괜찮게 느껴진다.

남들은 내가 매정하다고 한다. 다리 부러진 사람, 허리 나간 사람 붙잡고 사기꾼 취급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진짜 다친 사람 뒤에 숨어서, 멀쩡한 몸으로 거짓 진단서를 떼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벼운 접촉사고에 목 디스크가 터졌다며 드러눕고, 멀쩡한 손목에 깁스를 하고 산재를 노리고, 다 죽어가는 노모 이름으로 입원 보험을 타먹는다. 그 도둑들이 빼먹는 돈은 결국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가. 정직하게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는 평범한 가입자들 주머니다. 나는 그 도둑을 잡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나는 그걸 이 나라에서 제일 잘한다. 십구 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속은 적이 없다.



2


작년 봄, 회사가 신입 조사관 하나를 내 밑에 붙였다.

경영학과를 나온 서른둘짜리였다. 눈빛이 맑아서, 나는 처음에 영 미덥지 않았다. 이 일은 눈빛이 맑으면 못 한다. 사람을 의심하는 게 직업인데, 자꾸 사람을 믿으려 들면 곤란하다. 첫 출장 때 그 친구가 클레임 신청자 앞에서 "많이 힘드셨겠어요" 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걸 보고, 나는 차 안에서 한참을 잔소리했다. 우리가 동정할 사람은 가입자 전체지, 눈앞의 한 사람이 아니라고. 한 사람한테 마음이 기울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십만 명이 낸 보험료가 새는 거라고. 그 친구는 묵묵히 듣고는, 수첩에 뭐라고 적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배우려는 자세는 있구나.

그즈음 내 바카라상에 한 파일이 올라왔다. 겉보기엔 평범했다.

쉰넷, 인쇄소에서 이십 년을 일한 기장(機長). 새벽에 종이 더미를 옮기다 적재대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진단명은 추간판 탈출증. 영구장해 등급을 받으면 보험금이 일억 이천이었다. 인쇄소는 영세했고, 사장은 산재 처리를 차일피일 미뤘다. 결국 남자는 우리 회사 상해보험에 기댔다. 가족관계증명서에 딸이 둘 있었고, 둘 다 아직 학생이었다. 한 푼이 아쉬운 처지라는 게 서류 곳곳에서 묻어났다.

나는 그 '한 푼이 아쉬운 처지'를 특히 눈여겨봤다. 절실한 사람일수록 거짓말의 동기가 강하니까. 진단서를 떼어준 병원도 동네의 작은 정형외과였다. 큰 병원이 아니라 동네 의원의 진단서. 이런 조합은 십중팔구 냄새가 난다. 나는 신입을 데리고 그 병원부터 찾아갔다. MRI 원본을 받아다 우리 쪽 자문의에게 다시 판독시켰다. 자문의의 소견은 모호했다. 디스크가 살짝 밀려 있긴 한데, 그 나이 인쇄소 노동자라면 사고가 없어도 그 정도는 흔하다는 거였다. '사고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를 못 박을 수가 없다고 했다. 모호하다는 건,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뜻이다. 인과를 입증할 바카라임은 우리가 아니라 신청자한테 있으니까.

남자도 한번 만나봤다. 인쇄소 골목 끝, 잉크 냄새가 코를 찌르는 작업장에서였다. 그는 허리에 보호대를 차고, 한쪽 다리를 살짝 끌며 나왔다. 나를 보자마자 자기가 얼마나 억울한지부터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통증 얘기만 했다. 아침에 양말 신을 때가 제일 힘들다, 기침을 하면 허리까지 울린다, 큰딸 결혼식 때 끝까지 서 있을 수 있을지 그게 제일 걱정이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머리 좀 썼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신청자들은, 조사관 앞에서는 일부러 통증을 구체적으로 늘어놓는다는 걸 안다. 그래야 진짜처럼 보이니까. 나는 그가 통증을 구체적으로 말할수록, 오히려 더 의심했다. 똑똑한 거짓말일수록 진짜를 흉내 내는 법이니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흉내가 아니라 그냥 진짜였다. 아침마다 양말 한 짝을 신느라 끙끙대는, 그냥 아픈 사람의 진짜 말이었다.



3


결정적인 건 따로 있었다.

영구장해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가 멀쩡히 움직이는 모습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나는 그 빈틈을 노린다. 십구 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봉고차 안에서 며칠씩 신청자를 지켜보는 거였다. 믹스커피를 보온병에 가득 채우고, 김밥 두 줄을 사서, 운전석에 앉아 하루 종일 한 사람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멀쩡히 장을 보고, 멀쩡히 계단을 오르고, 멀쩡히 아이를 안아 올리는 그 한 장면이면, 일억짜리 클레임도 한 방에 무너진다.

그 기장도 마찬가지였다. 사흘째 되던 날, 그가 동네 시장에 나타났다. 쌀집 앞에서 이십 킬로그램짜리 쌀 포대를 어깨에 척 메고, 골목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갔다. 허리 영구장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이십 킬로 쌀가마를 메고 계단을 올랐다. 나는 셔터를 연달아 눌렀다. 신입이 옆에서 "어… 저거 진짜 메신 거 맞아요?" 하고 물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봐라, 이게 현장이다. 서류로는 다 죽어간다는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는 장정처럼 쌀을 멘다.

회사로 돌아와 영상을 캡처해서 보고서 맨 앞에 박았다. 보험금 지급 거절. 사유는 '신청 장해와 배치되는 일상 활동 정황 및 과장 의심'. 회사는 일억 이천을 막았고, 나는 그달 우수 조사관으로 또 한 번 표창을 받았다. 회식 자리에서 팀장이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역시 저승사자, 이번에도 깔끔하게 끝냈네. 다들 잔을 부딪쳤다. 신입만 잔을 든 채 잠깐 머뭇거렸지만, 이내 같이 마셨다.

그 남자는 이의신청을 했다. 자기는 그날 쌀을 멘 게 아니라, 다 쓴 빈 쌀 포대를 접어서 들고 간 거라고 했다. 허리 보호대를 차고 있어서 자세가 뻣뻣해 보였을 뿐이라고. 그런 변명은 차고 넘친다. 걸린 사람은 다 사정이 있고, 다 오해라고 한다. 나는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의견서를 썼다. 두 페이지를 채우는 데 십 분도 안 걸렸다. 그게 내 일이니까. 그 뒤 그가 어떻게 됐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었다. 한 해에 그런 파일이 수백 개씩 내 바카라상을 지나간다. 한 건 한 건의 뒷이야기까지 기억하면, 이 일은 못 한다.



4


삼 년이 지났다.

그사이 신입은 어엿한 조사관이 되었다. 내 방식을 가장 충실히 배운 친구였다. 봉고차에서 며칠을 버티는 끈기도, 신청자의 말을 한 줄 한 줄 받아 적어 모순을 찾는 집요함도, 통증과 억울함의 냄새를 구별하는 후각도, 전부 내게서 배웠다. 회사에서는 그를 '리틀 저승사자'라고 불렀다.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내 손으로 후계자를 키웠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옛 종결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내 자리로 와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손에 익숙한 파일 하나가 들려 있었다. 삼 년 전, 그 인쇄소 기장 파일이었다.

"선배님, 이거… 유족이 민사를 걸었어요."

유족이라는 말에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소송 과정에서 우리가 제출한 그 쌀가마 영상의 원본 파일을 상대 변호사가 요청했고, 그 메타데이터를 뜯어봤다는 거다. 촬영 일자가 찍혀 있었다. 내가 '사고 후'라며 보고서에 박았던 그 결정적 영상의 촬영 날짜가, 사고가 나기 열흘 전이었다. 나는 미행을 시작하면서, 예전에 같은 시장에서 다른 건으로 찍어둔 영상과 날짜를 헷갈렸던 거다. 같은 시장,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골목. 폴더가 뒤섞였고,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십구 년 동안 단 한 번도 속은 적 없다던 내가, 그 한 번을 날짜 한 줄에서 틀렸다.

사고 전의 그는, 멀쩡히 쌀을 멜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고 후의 그는 아니었다. 그의 허리는 진짜로 망가져 있었다. 영구장해 등급도 처음부터 맞았다. 그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진짜로 다친 거였다. 빈 쌀 포대를 들고 갔다던 이의신청서의 그 변명조차, 알고 보니 사실이었다. 그날 그는 정말로 빈 포대를 들고 갔던 거고, 나는 십 년도 더 전에 찍은 다른 날의 그를 보며 그를 사기꾼으로 단정했던 거다.

보험금이 막히자, 그는 무너졌다. 인쇄소에서는 일을 못 한다는 이유로 잘렸고, 망가진 허리로는 다른 일도 구하지 못했다. 빚이 쌓였고, 두 딸은 학교를 그만뒀고, 가정이 흩어졌다. 그리고 작년 겨울, 그는 세상을 떠났다. 정확한 사정까지는 후배도 말을 흐렸다. 다만 마지막까지 그가 자신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물을 자격이 없었다.

후배는 파일을 내 바카라상에 내려놓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 그때 영상 날짜… 정말 확인 안 하셨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확인했어야 했다. 폴더를 한 번만 열어 촬영 일자를 봤어도 됐을 일이다. 그런데 나는 보지 않았다. 십구 년 동안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자부심이, 가장 기본적인 확인을 건너뛰게 만들었다. 내 감이 곧 증거라고 믿었으니까. 그 오만이 한 사람을 사기꾼으로 만들었고, 그 낙인이 한 가정을 통째로 삼켰다. 후배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선배님이 저한테 늘 그러셨잖아요. 우리가 막는 건 돈이 아니라 도둑이라고. 근데 이번엔… 도둑이 아니었네요." 그 말이 며칠을 따라다녔다.

그날 보고서를 쓰던 십 분이 자꾸 떠올랐다. 이의신청을 기각하던 그 십 분. 나는 빈 쌀 포대라는 그의 말을 한 번도 진지하게 곱씹지 않았다. 다들 사정이 있다는 말, 다 오해라는 말, 그 수백 번 들어본 변명의 틀에 그를 끼워 맞췄을 뿐이다. 그 틀이 너무 익숙해서, 나는 진실마저 변명으로 분류해버렸다.

회사는 조용히 합의로 막았다. 내 이름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신경 써줬다. 효자 상품을 보호하는 거다. 표창은 회수되지 않았고, 단상에서 받은 상패는 여전히 내 바카라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여전히 저승사자였다. 달라진 건 없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줄 알았다.



5


그해 가을, 나는 새벽에 욕실에서 미끄러졌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타일 위에서 발이 휙 돌아갔고, 허리부터 모서리에 부딪혔다. 그 길로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다섯 글자였다. 추간판 탈출증. 나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삼 년 전 그 파일의 표지를 떠올렸다.

나도 보험을 들어뒀으니, 당연히 청구를 했다. 십구 년을 보험회사에서 일한 사람이다. 어떤 서류를 어떻게 갖춰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진단서를 떼고, 영상을 챙기고, 빠짐없이 서류를 제출했다. 그런데 며칠 뒤, 회사 특수조사팀에서 내 클레임을 배정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절차상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직원 본인 건이라도 예외는 없다고. 그 원칙을, 사실은 내가 십구 년 동안 가장 앞장서서 지켜온 사람이었다.

담당 조사관은, 내가 키운 그 후배였다. 리틀 저승사자.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정중했다. 너무 정중해서, 나는 그 말투를 한순간에 알아들었다. 내가 십구 년 동안 수백 명에게 써먹은, 바로 그 말투였다. 상대를 안심시키면서 동시에 빈틈을 더듬는, 부드럽게 칼을 가는 목소리.

"선배님, 절차상 여쭙는 거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요. 사고 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한 번만, 천천히 다시 설명해주시겠어요? 어느 자세에서 미끄러지셨고, 어디가 어떻게 결리시는지."

나는 입을 떼려다 멈췄다.

진짜 아픈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추상적으로 말한다. 통증은 한 점을 가리키고, 억울함은 허공을 휘젓는다. 내가 십구 년 동안 신입들에게 가르친 그 첫 번째 원칙이, 지금 내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었다. 막상 내 입에서 먼저 튀어나오려는 말이, 통증이 아니었다. 어떻게 회사가 직원한테 이럴 수가 있냐는, 어떻게 내가 키운 후배가 나를 의심할 수가 있냐는, 순도 백 퍼센트의 억울함이었다.

나는 그 말을 삼켰다. 삼키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카메라에 찍혔던 그 수백 명도, 수화기를 들고 똑같이 이 말을 삼키고 있었겠구나.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정말로 억울했겠구나.



6


수화기 너머에서 후배가 내 침묵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내가 십구 년 동안 한 일이 바로 그거였으니까. 상대가 대답을 고르느라 머뭇거리는 그 몇 초를, '진술 지연'이라고 보고서에 옮겨 적는 일. 잠깐의 침묵을 의심의 증거로 둔갑시키는 일. 지금 저 친구의 노트에, 내 침묵이 한 줄 적히고 있을 것이다. 신청자, 사고 경위 설명 요청에 즉답하지 못하고 약 칠 초간 침묵함.

나는 한 번도 속은 적이 없다고 믿었다. 정확히 말하면, 십구 년에 단 한 번 속았고, 그 한 번 때문에 한 사람과 그 가족이 무너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속은 게 아니라 보지 않은 거였다. 날짜 한 줄을 확인하지 않은 게으름을, 나는 십구 년 치 자부심으로 덮어두고 있었다. 한 번도 속지 않았다는 그 자부심이야말로, 가장 오래 나를 속인 거짓말이었다.

이제 나는, 내가 평생 의자 맞은편에 앉혀두고 의심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멀쩡해 보이는데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 카메라 한 컷에 인생이 무너질 수 있는 사람.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까 봐, 진실조차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게 되는 사람.

후배가 다시 물었다. 선배님, 듣고 계세요?

듣고 있다. 너무 잘 듣고 있어서 탈이다. 나는 저 목소리가 어느 길을 따라 어디에 도착할지, 그 끝에 누가 서 있을지 정확히 안다. 내가 닦아놓은 길이니까. 그 길 끝에 어떤 얼굴이 서 있었는지, 삼 년 전에 진작 돌아봤어야 했다.

남의 거짓말을 잡아 먹고살았는데, 정작 진실을 말하는 법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십구 년 만에 처음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내 통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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