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맡아둠

by김경훈

문을 밀면 기계 목소리가 나를 맞는다.

어서 오세요. 0417번 회원님.

사람 목소리가 아니다. 사람이 한 번 녹음한 목소리를, 기계가 틀어 주는 것이다. 같은 억양, 같은 높이, 같은 따뜻함. 매일 똑같은 따뜻함이라는 건, 따뜻함이 아니라 설정이다. 나는 그 설정된 환영을 삼 년째 듣고 있다. 삼 년 동안, 그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묻지 않았다. 그게 좋아서 나는 여기 다닌다.

무인 스터디카페에는 사람이 없다. 카운터도, 총무도, 사장도 없다. 입구에 키오스크가 있고, 휴대폰으로 QR을 찍으면 유리문이 열린다. 나는 회원 번호 0417번이고, 좌석은 22번이다. 앱은 나를 0417번 회원님이라고 부른다. 누가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른 게 언제였는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은 면접장에서나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면접까지 가 본 적이 없다.

무인 스터디카페는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 마우스 클릭, 페이지 넘기는 소리, 정수기에서 물 받는 소리. 그리고 그 모든 걸 덮는, 에어컨인지 환기구인지 모를 낮은 백색소음. 사람의 말소리만 없다. 다들 말을 하러 온 게 아니니까. 가끔 누가 전화를 받으러 나가면, 유리문이 닫히는 그 잠깐만 바깥의 사람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사라진다. 안은 다시 자판 소리뿐이다. 나는 그 소리들 사이에서, 내가 내는 소리라곤 자판 두드리는 소리 하나뿐이라는 걸 가끔 깨닫는다. 말은 한마디도 보태지 않는다.

나는 아침에 와서 밤에 간다. 정확히는, 가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여긴 스물네 시간이니까. 집에 가 봐야 좁은 고시원 방에 형광등을 켜는 일밖에 없다. 여긴 따뜻하고, 조용하고, 아무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집은 잠만 자러 가는 곳이 되었고, 그다음엔 잠도 여기서 자게 됐다. 좌석 등받이를 끝까지 젖히면 침대 비슷한 게 된다. 비슷한 거지, 침대는 아니다.

여기 있으면 시간이 잘 안 간다. 아니, 시간은 가는데 날짜가 안 간다. 월요일 새벽 세 시나 일요일 새벽 세 시나 똑같다. 에어컨은 사철 같은 온도라, 계절도 잘 모른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걸, 들어오는 사람들이 패딩을 입었나 반팔을 입었나로만 안다. 삼 년 동안 그렇게 계절을 셌다. 패딩, 반팔, 패딩, 반팔. 그사이 나는 스물여섯에서 스물아홉이 되었다.

무인 스터디카페는 나를 아주 잘 안다. 내가 몇 시에 들어와 몇 시에 나가는지,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 어느 자리를 쓰는지 전부 안다. 그런데 내 얼굴은 모른다. 이름도 모른다. 나를 아는 건 내 회원 번호와 내 카드다. 요즘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사람이 아니라 결제 내역이다. 카드 명세서는 일기보다 정직하다.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며칠을 버텼는지 다 적혀 있다.

내 뒷자리 23번에는 이 년째 같은 사람이 앉는다. 나는 그 사람 얼굴을 모른다. 뒤통수만 안다. 정수리가 조금 비기 시작한 뒤통수. 우리는 이 년 동안 등을 맞대고 같은 공기를 마셨지만, 말을 섞은 적은 없다. 한번은 그가 두고 간 텀블러를 내가 주워 그 바카라상에 올려 둔 적이 있다. 그게 우리가 나눈 유일한 대화였다. 말 없는, 텀블러 한 개짜리 대화. 그것도 대화라고 칠 수 있다면.

끼니는 대개 한 손으로 해결한다. 무인 매점의 냉동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데워지는 동안 그 앞에 멍하니 서서 기다린다. 그 일 분 삼십 초가, 하루 중 내가 가장 사람처럼 구는 시간이다. 무언가를 데워 먹는 일, 냄새가 나는 일. 스터디카페에는 늘 그 냄새가 옅게 깔려 있다. 데운 도시락 냄새, 식은 컵라면 냄새. 공부 냄새가 아니라 끼니 냄새. 우리가 여기서 정말 하는 건 공부가 아니라, 그냥 버티는 거다.

구석 자리에는 가끔 한 청년이 와서 잔다. 새벽 배송을 한다던가, 대리운전을 한다던가. 콜과 콜 사이에 들어와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사라진다. 공부하러 오는 사람과 자러 오는 사람이 같은 자리를 쓴다. 무인 스터디카페는 그것도 묻지 않는다. 바카라을 펴든 눈을 감든, 결제만 되면 회원이다.

14번 자리에는 늘 누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늘 누군가의 짐이 있었다.

두꺼운 기본서 몇 권, 형광펜 세트, 충전기, 의자 등받이에 걸린 검은 패딩 점퍼 하나. 바카라상 모서리엔 다 식은 컵라면. 모니터 아래엔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자리 맡아둠, 이라고.

처음엔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자리를 맡아두니까. 화장실 가는 십 분, 밥 먹는 한 시간. 자리 맡아둠은 무인 스터디카페에서 가장 흔한 풍경이다. 사람은 없고 짐만 자리를 지킨다. 우리는 짐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패딩이 거기 걸려 있으면, 그 사람은 아직 회원인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친다.

좌석 안내판에는 14번이 늘 같은 글씨로 떠 있었다. 이용 중. 파란 글씨. 그런데 나는 삼 년 동안, 그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14번의 십 분은 너무 길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컵라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한 달이 지나도 패딩은 의자에 걸려 있었다. 형광펜의 잉크가 마르고, 컵라면 국물이 말라붙어 갈색 테두리가 생기는 동안에도, 안내판은 또박또박 이용 중을 띄웠다. 나는 가끔 그 자리를 지나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대체 언제 돌아오나. 자리만 맡아두고, 어디로 갔나.

한번은 내가 사라져 봤다. 사라지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해 시험을 봤고, 또 떨어졌다. 0.5점이 모자랐다. 0.5점이면 한 문제다. 한 문제 때문에 나는 또 일 년을 여기 앉아 있어야 했다. 발표가 난 날,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흘인가 닷새인가, 스터디카페에 가지 않았다. 고시원 방에 누워 천장만 봤다.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 가고, 그 외엔 누워 있었다.

공시생은 이 도시에서 가장 조용한 인구다. 우리는 데모도 안 하고, 모이지도 않고, 각자의 방에서 각자 조용히 사라진다. 합격한 사람만 이름을 얻는다. 나머지는 숫자로 남는다. 경쟁률 삼십팔 대 일의, 그 삼십팔분의 삼십칠. 그런데 떨어진 사람은 통계에도 안 남는다. 통계는 붙은 한 명만 센다. 나머지 서른일곱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세지 않는다.

다시 갔을 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22번 자리는 내가 두고 간 그대로였다. 펼쳐 둔 기본서, 식은 커피, 충전기.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0417번, 며칠 안 보이시네요, 같은 건 없었다. 그 대신 앱에 알림 하나가 와 있었다.

회원님의 정기 이용권이 자동 연장되었습니다. 결제 119,000원.

내가 없는 닷새 동안에도, 나는 꼬박꼬박 회원이었다. 카드가 대신 출석을 해 주었다. 내가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동안, 22번 자리는 성실하게 나를 대신해 거기 있었다. 짐이 나를 증명했고, 결제가 나를 증명했다. 정작 나는 없었는데.

아무도 내가 없는 걸 몰랐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다. 결제가 됐으니까. 무인 스터디카페에서 존재한다는 건, 거기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결제가 된다는 뜻이었다.

카드가 출석을 대신해 주는 세상에서, 회원이 사라졌다는 걸 가장 먼저 아는 건 사람이 아니라 카드사다. 결제가 끊겨야 비로소 빈자리가 보인다. 누군가의 부재는 누가 울어서가 아니라 결제가 실패해서 알려진다. 회원님, 결제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인의 도시가 부고를 띄우는 방식이다. 울어 주는 부고가 아니라, 독촉하는 부고.

그때 나는 14번을 이해했다.

그 사람도 어쩌면, 그냥 어느 날 안 온 것뿐인지도 모른다. 안 왔는데, 카드가 대신 와 준 것뿐. 자리 맡아둠. 그 포스트잇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리는 맡아져 있었다. 사람만 없을 뿐.

14번의 정체를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두 달쯤 뒤였다.

어느 낮, 처음 보는 중년 여자가 스터디카페에 들어왔다. 회원이 아닌 게 분명했다. QR을 찍지 못해 한참 유리문 앞에 서 있다가, 관리 번호로 전화를 걸어 임시 출입 승인을 받았다. 손에는 사물함 열쇠가 들려 있었다. 14번 사물함.

여자는 14번 자리의 짐을 천천히 챙겼다. 패딩을 개고, 바카라을 한 권씩 가방에 담고, 말라붙은 컵라면을 봉지에 넣었다. 손이 느렸다. 기본서 한 권 한 권의 표지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형광펜 자국이 빼곡한 페이지를 펼쳐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손길인지 알 것 같았다. 아들이 마지막까지 들여다본 페이지를, 어머니가 처음으로 들여다보는 손길이었다.

짐을 다 챙긴 여자는 키오스크 앞에 한참 서 있었다. 화면에는 회원 해지 버튼이 있었다. 여자가 그걸 누르자, 기계가 물었다.

정말 해지하시겠습니까? 남은 이용 기간 12일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여자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그러더니 해지하지 않고, 그냥 돌아서 나갔다. 죽은 아들의 자리를, 십이 일 더 살려 두기로 한 것이다. 환불도 안 되는 십이 일을. 어쩌면 그 십이 일이, 그 여자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자리 맡아둠. 열이틀만 더.

나는 22번 자리에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도와드릴까요, 하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무인 스터디카페에서 우리는 모두 묻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니까. 그게 친절인 줄 알았는데, 그날만큼은 비겁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한 문제만 더 풀자, 한 문제만 더. 그 한 문제가 삼 년째 나를 이 자리에 붙들어 두고 있었다.

나는 22번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14번 자리는 이제 비어 있었다. 짐이 사라지자, 처음으로 그 자리가 정말로 비어 있다는 게 보였다. 짐이 있을 땐 보이지 않던 부재가, 짐이 사라지니 비로소 보였다. 좌석 안내판의 14번은 여전히 이용 중이었다. 사람도, 짐도 없는 자리가, 앞으로 열이틀 동안 이용 중일 것이다.

나는 내 바카라상을 내려다봤다. 펼쳐 둔 기본서, 충전기, 식은 커피. 내가 없던 닷새 동안, 누군가 이 자리를 지나며 생각했을 것이다. 아, 0417번은 아직 회원이구나. 짐이 거기 있으니까. 결제가 되니까. 짐이 나를 증명하는 동안, 나는 없어도 됐다. 14번처럼.

무인 스터디카페는 회원을 끝까지 지킨다. 회원이 오든 안 오든, 살아 있든 아니든. 결제가 되는 한, 자리는 맡아져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 도시에 마지막으로 남은 신의(信義) 같은 것이다. 사람은 자리를 비워도, 자동 연장은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사람은 잊어도, 카드는 잊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QR을 찍는다. 유리문이 열리고, 기계가 나를 맞는다.

어서 오세요. 0417번 회원님.

나는 22번 자리에 앉는다. 아무도 맡아 주지 않는 세상에서, 단 하나 내 자리를 맡아 주는 건 매달 빠져나가는 십일만 구천 원이다. 그게 나를 회원으로, 그러니까 아직 여기 있는 사람으로 증명한다. 언젠가 내 카드가 멈추는 날, 누군가 내 자리에 와서 바카라을 한 권씩 쓸어 보기 전까지. 그날까지 나는, 이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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