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번 건조기

by김경훈

내가 무인 빨래방에 매일 가는 걸 두고, 딸은 청승이라고 한다. 빨랫감이 그렇게 많을 리가 있냐고. 맞는 말이다. 늙은이 혼자 사는 집에서 하루에 무슨 빨래가 그리 나오겠나. 양말 한 짝, 속옷 한 장, 손수건 한 장. 그런 걸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나는 매일 밤 빨래방으로 간다. 빨래가 목적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딸은 한 달에 한 번 전화해서 똑같은 잔소리를 한다. 아버지, 밤에 그만 좀 돌아다니세요. 빨래는 낮에 집에서 하시고요. 나는 그래그래, 한다. 집에 세탁기가 멀쩡히 있는 걸 딸도 알고 나도 안다. 그래도 나는 안 쓴다. 집 세탁기는 혼자 돌면 더 외롭다. 한 사람 빨래가 도는 소리는, 두 사람 몫이던 시절을 자꾸 끄집어낸다. 그건 딸한테 말 안 했다. 말하면 또 울 테니까. 늙은 애비 청승에 자식 울리는 것만큼 못난 짓도 없다.

우리 집은 너무 조용하다. 늙으면 귀가 어두워진다는데, 이상하게 조용한 것만은 또렷이 들린다. 시계 초침이 밤마다 망치질을 한다. 냉장고가 돌다 멈출 때 그 적막이, 꼭 누가 옆에서 한숨을 쉬는 것 같다. 그런 밤이면 나는 양말 한 짝을 핑계 삼아 집을 나선다.

집에서 빨래방까지는 걸어서 십 분이다. 그 사이 가게들이 죄다 죽어 있다. 불 꺼진 미용실, 셔터 내린 떡집, 문 닫은 부동산. 그런데 딱 두 군데가 깨어 있다. 무인 편의점하고, 무인 빨래방. 사람 없는 가게 둘만 밤새 눈을 뜨고 있는 거다. 나는 그 사이를 걸으면서 가끔 생각한다. 이 동네에서 밤새 안 자는 건 기계들하고 나뿐이구나, 하고. 그나마 나는 아침이면 졸기라도 하지, 저것들은 그러지도 못한다.

빨래방은 따뜻하다. 그게 제일이다. 건조기 여섯 대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소리는, 누가 깊이 잠들어 내쉬는 숨소리 같다. 둥, 둥, 둥. 데운 공기에 섬유유연제 냄새가 실려 천장까지 차오른다. 그 온기 속에 플라스틱 의자를 깔고 앉아 있으면, 세상이 아직 다 식지는 않았구나 싶다. 사람은 없는데, 이상하게 사람 냄새가 난다. 무인 빨래방은 그런 데다.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사람이 그리운 줄을 알게 되는 곳.

주인은 없지만 단골은 있다. 새벽의 단골들. 우리는 통성명을 한 적이 없다. 그래도 얼굴은 안다. 매일 밤 같은 온기 속에서 마주치니까.

의자 세 개를 붙여 놓고 자는 청년이 있다. 대리운전을 한다던가, 새벽 배송을 한다던가. 콜과 콜 사이, 한두 시간씩 거기서 눈을 붙인다. 건조기 도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자장가라고 했다. 집에 가 봐야 또 나와야 하니, 차라리 여기서 잔단다. 가끔은 무인 스터디카페 구석 자리에서도 잔다고 했다. 거긴 더 조용해서 더 깊이 잔다고. 젊은 사람이 안됐다 싶다가도,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또 웃음이 난다. 세상모르고 잔다.

캐리어를 안고 자는 영감도 있다. 나보다 열 살은 위로 보인다. 바퀴 달린 여행 가방 하나가 그 양반 살림 전부인 듯했다. 그걸 베개 삼고, 끌어안고, 모로 눕는다. 말이 없다. 누가 말을 걸어도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갈 곳 없는 사람은 무인을 안다. 무인은 신분증을 보자고도, 왜 여기 있느냐고도 묻지 않으니까. 그게 무인의 가장 큰 미덕이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

그 외에도 몇이 더 있다. 빨래를 개면서 동네 소문을 죄다 풀어놓는 아주머니. 새벽 세 시쯤 와서 동전통을 비우고 바닥을 닦고 가는, 무인 점포 돌보는 양반.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사정도 모르면서, 매일 밤 같은 자리에서 잠깐씩 한 식구처럼 된다. 빨래가 마르는 동안만.

아주머니는 빨래 개는 솜씨가 기가 막히다. 수건을 어찌나 각을 잡아 개는지, 군대 관물대가 따로 없다. 그러면서 입은 한시도 쉬지 않는다. 몇 동 누구네 아들이 이번에 어디 붙었고, 누구네는 갈라섰고. 나는 그 집들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다 듣는다. 새벽 빨래방에서 듣는 남의 집 이야기는 라디오 드라마보다 낫다. 광고가 없으니까.

그런데 보름쯤 전부터, 삼 번 건조기가 이상했다.

멈추질 않는 것이다. 같은 이불 한 채가, 밤이고 새벽이고 그 안에서 돌고 또 돌았다. 둥, 둥, 둥. 누가 꺼내 가지도, 새로 넣지도 않는데, 그놈만은 늘 돌고 있었다. 건조기는 동전을 넣어야 돈다. 십 분에 오백 원. 그러니 누군가 쉬지 않고 동전을 먹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보름 동안. 그 이불 한 채를 말리겠다고.

삼 번 건조기는 곧 우리 새벽 단골들의 연속극이 되었다.

아주머니가 먼저 운을 뗐다.

저거 분명 사연 있는 이불이야. 누가 죽었구먼.

청년이 잠결에 끼어들었다.

죽긴 누가 죽어요. 그냥 까먹고 간 거겠죠.

까먹은 사람이 보름을 동전을 넣어? 자네 같으면 까먹은 빨래에 보름 동안 오백 원씩 넣겠나?

이야기는 밤마다 불어났다. 누가 야반도주를 했는데 이불만 두고 갔다더라. 바람난 남편 이불을 부인이 평생 안 마르게 돌려놓고 떠났다더라. 보험금이 어쩌고, 누가 사라졌고. 무인 빨래방의 괴담은 동전만큼이나 값쌌고, 또 동전만큼이나 자주 들어왔다. 다들 심심했던 것이다. 잠 안 오는 새벽에는, 남의 이불 한 채도 훌륭한 구경거리가 된다.

나중에는 내기까지 붙었다. 청년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누가 맞히나 보자며 판을 깔았다. 아주머니는 버림받은 이불에 천 원, 청년은 까먹은 이불에 천 원을 걸었다. 바닥 닦는 양반은 지나가다 한마디 보탰다. 셋 다 틀렸을 거라고. 그러고는 동전통을 비워 가지고 휙 나가 버렸다. 그 양반은 늘 그런 식이다. 정답을 아는 사람처럼 말하고, 정작 정답은 안 알려준다. 하긴, 그게 무인 점포 돌보는 사람의 일인지도 모른다.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

누가 그랬는지 삼 번 건조기에는 별명까지 붙었다. 청년이 영구 기관이라고 불렀다. 영원히 도는 기계라는 뜻이라나. 아주머니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맞장구를 쳤다. 영구 기관, 영구 기관. 나는 속으로 웃었다. 영원히 돌긴 뭘 돌아, 동전 떨어지면 서지. 세상에 영원한 기계는 없다. 영원한 건 동전을 넣는 손이지, 기계가 아니다. 그 손이 누구 손인지는, 그때까지 나만 알았다.

급기야 청년이 잠복을 하겠다고 나섰다. 콜을 한 탕 포기하고, 누가 동전을 넣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늘 그렇듯 십 분 만에 잠들었다. 코를 골면서. 잠복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다음 날 새벽, 삼 번 건조기는 또 따뜻하게 돌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건조기 문을 열어 보려다 그만뒀다. 남의 빨래에 손대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갑자기 도리를 찾았다. 사실은 손잡이가 뜨거워서 못 만진 거였다.

의심은 돌고 돌았다. 청년이냐, 아주머니냐, 바닥 닦는 양반이냐. 다들 서로를 흘끔거렸다. 사람 없는 가게에 처음으로 작은 긴장이 돌았다. 우습게도, 그 의심 덕분에 우리는 전보다 더 자주, 더 길게 말을 섞게 되었다. 남을 의심하는 일에도 온기가 있다면, 그건 적어도 서로를 쳐다는 본다는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동전을 넣은 건 나다.

대단한 사연은 없다. 사연이라면 사연이고. 한 달쯤 전, 유난히 추운 밤이었다. 영하로 뚝 떨어진 날. 캐리어 영감이 빨래방 구석에서 맨바닥에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덮을 게 없었다. 그 양반 살림이라곤 캐리어 하나뿐이니, 이불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한참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깨워서 우리 집에 가자 할 수도 없고, 돈을 쥐여 줄 수도 없었다. 그런 건 받는 사람을 더 춥게 만든다. 나도 늙어 봐서 안다. 적선이라는 건, 주는 사람만 따뜻하고 받는 사람은 외려 더 시린 거다.

영감하고 나는 말을 섞은 적이 거의 없다. 그래도 새벽마다 눈인사는 한다. 내가 들어가면 고개를 한 번 까딱, 내가 나갈 때 또 한 번 까딱. 그게 우리 대화의 전부다. 늙으면 말이 줄고 까딱이 는다. 까딱 한 번에 담기는 말이, 젊어 떠들던 말보다 많아진다.

그래서 다음 날, 나는 집에서 헌 이불 한 채를 들고 나왔다. 죽은 마누라가 쓰던, 솜이 좋은 거였다. 그걸 삼 번 건조기에 넣고 돌렸다. 따끈따끈하게 데워서, 영감 자는 옆에 슬쩍 놔두려고. 그런데 막상 깨워서 이거 덮으쇼, 하기가 또 뭣해서. 나는 그냥 데워만 놓고 돌아왔다. 식으면 또 데우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동전 몇 개면 됐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빨래방은 그런 데 쓰기 좋다. 아무도 왜 그러냐고 묻지 않으니까. 누가 물었으면 나는 못 했을 거다. 영감 덮어 주려고 그럽니다, 하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그건 적선이 되니까. 무인 빨래방에서는 적선도 빨래인 척할 수 있다. 나는 그게 좋았다.

한번은 들킬 뻔했다. 동전을 넣는데 아주머니가 불쑥 들어온 거다. 아이고 어르신, 이 새벽에 또 빨래세요?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늙으면 잠이 없어, 했다. 아주머니가 삼 번 건조기를 흘끔 보더니, 어, 저거 또 도네, 했다. 나는 그러게 말이야, 누가 참 별나, 하고 같이 혀를 찼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그날 밤 내가 딱 그 꼴이었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끝까지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면, 모르는 척을 아주 잘해 주는 사람이거나.

그러던 어느 밤, 영감이 드디어 그 이불을 끌어다 덮고 잤다. 보름 만에. 캐리어를 베고, 따뜻한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코를 살짝 골았다. 나는 못 본 척, 내 양말 한 짝을 세탁기에 넣고 동전을 넣었다. 손이 좀 떨렸던 것 같다. 늙으면 별것 아닌 일에도 손이 떨린다.

그런데 며칠 뒤,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내가 동전을 넣지 못한 밤이 있었다. 몸이 안 좋아 일찍 누웠다. 다음 날 가 보니, 삼 번 건조기가 여전히 따뜻하게 돌고 있었다. 누가 넣은 것이다. 나 말고, 누가.

청년인지, 아주머니인지, 바닥 닦는 양반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게 무인 빨래방의 법도니까. 다들 알면서 모르는 척했을 것이다. 보름 동안 그 연속극을 떠들던 사람들이, 실은 진작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면서, 굳이 모르는 척, 한 명씩 돌아가며 동전을 넣고 있었는지도.

한번은 새벽에 가 보니, 삼 번 건조기 위에 누가 두유 한 팩하고 따뜻한 캔커피를 올려놨더라. 영감 먹으라고. 누가 놨는지는 아무도 말 안 했다. 또 한번은, 캐리어 옆에 새 양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포장도 안 뜯은 거. 나는 아니었다. 나는 양말 한 짝밖에 안 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러니 또 누가 있는 거다. 얼굴도 안 내밀고, 생색도 안 내고, 슬쩍 데워만 놓고 가는 누가.

가만 보면, 무인(無人)이라는 말이 좀 우습다. 사람이 없다는 뜻인데, 정작 그 안엔 늘 사람이 있다. 잠든 청년이 있고, 떠드는 아주머니가 있고, 캐리어를 벤 영감이 있고, 양말 한 짝 들고 온 늙은이가 있다. 사람 없으라고 만든 가게에, 갈 데 없는 사람만 잔뜩 모인다. 세상 일이 대개 그렇다. 없애려 들면, 거기 꼭 누가 남는다.

무인 빨래방에서는 다정도 무인으로 한다. 얼굴 없이, 이름 없이, 고맙다는 말도 받지 않고. 사람이 없는 가게가, 사람이 할 줄 모르게 된 일을 대신 해 주고 있었다. 누군가를 조용히 데워 두는 일 같은 거. 요즘 세상에 그런 건, 기계한테나 배워야 하는 모양이다.

나는 오늘도 양말 한 짝을 들고 빨래방에 간다. 삼 번 건조기는 여전히 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다만 다들, 지나가며 동전을 한 개씩 넣고 간다. 둥, 둥, 둥. 빨래방은 따뜻하고, 오늘 밤도 누군가는 거기서 잘 것이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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