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장례지도사
나이 49세
성별 남자
특징 슬픔을 감별한다고 믿는다
1
이 일을 이십이 년 하다 보면, 빈소 문이 열리는 그 삼 초 안에 거의 다 보인다. 진짜로 무너진 사람과, 무너지는 척하는 사람을.
진짜 슬픈 유족은 들어올 때 발끝이 먼저 멈칫한다. 영정을 마주 볼 자신이 없어서 몸이 저절로 머뭇거린다. 시선이 영정에 닿기 직전에 한 번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천천히 올라간다. 반대로 연기하는 사람은 문턱을 넘기도 전에 곡소리부터 낸다. 슬픔이 도착하기 전에 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거다. 그게 가짜다. 진짜 통곡은 늦게 온다. 보통은 입관할 때, 닫히는 관 뚜껑을 보고 나서야 온다.
사람들은 장례지도사가 시신을 닦고 염을 하는 사람인 줄로만 안다. 그건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산 사람을 읽는 일이다. 누가 끝까지 영수증을 따질 사람인지, 누가 죄바카라감 때문에 비싼 관을 고를 사람인지, 누가 형제들 눈치를 보며 돈을 더 쓸 사람인지. 빈소에서 가장 오래 깨어 있는 사람은 유족이 아니라 나다. 다들 울다 지쳐 상복 입은 채로 구석에서 졸 때, 나는 그들을 본다. 육개장 냄새와 향 냄새가 밴 그 새벽의 공기 속에서, 나만 또렷하게 깨어 사람들을 읽는다.
내가 이걸 배운 건 학원에서가 아니다. 스무 살 때 외삼촌을 따라 빈소 도우미로 처음 들어갔다. 전을 나르고, 소주를 채우고, 화투 치는 문상객들 발치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그때 외삼촌이 그랬다. "여기서는 우는 사람을 보지 말고, 안 우는 사람을 봐라. 안 우는 사람이 돈을 쓴다." 죽은 사람한테 못 해준 게 많은 사람일수록, 그 미안함을 관값으로 메운다는 거였다. 그 말이 이십몇 년 동안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슬픔으로 먹고산다. 더 정확히는 슬픔이 만들어내는 죄바카라감으로 먹고산다. 오동나무 이중관을 펼쳐 보여주면서 "보통 이 정도는 해드리세요, 마지막인데" 한마디면 된다. 그 '마지막인데'라는 말이 그렇게 잘 먹힌다. 상담실에 전시한 관은 제일 좋은 걸로 보여주고, 막상 입관 때 쓰는 건 한 등급 아래로 내려도 아무도 모른다. 관 뚜껑은 어차피 닫히니까. 유골함도 그렇다. 백자 함을 보고 고르지만, 화장장에서 받아 나오는 건 비슷하게 생긴 도자기 함이다. 십오만 원쯤 차이가 나는데, 슬픔에 잠긴 사람은 바닥에 찍힌 라벨을 확인하지 않는다.
나쁜 짓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죽은 사람은 관이 오동나무든 향나무든 모른다. 산 사람 마음만 편하면 되는 거고, 나는 그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정당한 수고비를 챙긴다. 세상에 남의 불행 덕에 먹고사는 직업이 한둘인가. 의사도, 변호사도, 보험회사도 다 그렇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정직하게, 슬픈 일에만 종사한다.
2
올봄에 들어온 신입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는 또 그 얘기를 했다. 우는 사람 말고 안 우는 사람을 보라고.
그 신입은 자꾸 마음이 약해지는 게 탈이었다. 유족이 울면 같이 코끝이 빨개지고, 입관할 때 손이 떨렸다. 나는 그게 영 못마땅했다. 이 바닥에서 감정 이입은 사치다. 우리가 같이 울어주면 유족이 위로받는 것 같지만, 그건 잠깐이고, 결국 정산할 때 정신 차린 유족이 한 줄 한 줄 따지기 시작하면 그 눈물값은 우리가 토해내야 한다. 나는 신입에게 단단히 일렀다. 적당히 슬픈 표정, 적당한 거리. 그게 프로다.
그날 들어온 상주는, 내 이십이 년 경력에서 처음 보는 종류였다.
쉰을 갓 넘긴 남자가 새벽에 자다가 갔다. 심장이었다. 발견한 건 아내였다. 빈소를 차리러 온 그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발끝이 멈칫하지 않았다. 곡소리도 없었다. 영정 사진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한참을 그렇게 보더니, 고개를 한 번 천천히 끄덕였다. 마치 오래전에 한 약속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신입이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소장님, 사모님이 충격이 너무 크셔서 그런가 봐요. 멍하신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건 충격받은 사람의 걸음이 아니다. 충격받은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린다. 저 여자는 또박또박 걸었다. 영정 앞까지 와서 멈추는 거리까지 정확했다. 슬픈 사람도, 슬픈 척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일을 처리하러 온 사람의 걸음이었다.
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녀는 첫마디부터 달랐다.
"여기서 사망진단서 떼는 것도 도와주시죠? 그리고 입관할 때 쓰는 관, 모델명이랑 단가표를 따로 받을 수 있나요? 정산할 때 비교하게요."
이십이 년 만에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빈소에 막 들어선 미망인이, 남편 영정 앞에서 관 모델명과 단가표를 달라니.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직업적인 미소로 받아넘겼다. "아유, 그런 건 나중에 천천히 보셔도 돼요. 지금은 마음부터 추스르세요." 그녀는 웃지도 않고 답했다. "마음은 괜찮아요. 그것보다 단가표가 더 급해요."
까다로운 사람이구나.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까다로운 유족은 더러 있다. 보험금 때문에 계산이 빠른 사람들. 나는 경계 수위를 한 칸 올렸다.
3
삼일장 내내, 그녀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조문객이 와서 손을 잡고 "어쩌냐, 그렇게 멀쩡하던 양반이" 하며 눈시울을 붉혀도, 그녀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만 했다. 목소리에 떨림이 없었다. 절을 받고, 답례하고, 다음 손님을 맞고. 그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차라리 행사 진행 요원 같았다.
밤이 깊어 빈소가 비면, 그녀는 영정 앞에 혼자 앉아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봤다. 우는 게 아니었다. 뭔가를 메모하고, 사진첩을 넘기고, 가끔 어딘가로 짧은 통화를 했다. 한번은 화장실 가는 길에 그녀의 통화 끝자락이 들렸다. "…네, 항목별로 다 받아둘게요. 영수증은 원본으로요." 영수증 원본. 미망인이 남편 빈소에서 영수증 원본을 챙기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저 여자, 뭔가 있다. 나는 확신했다. 멀쩡하던 남편이 자다가 죽었고, 발견자는 아내 한 사람뿐이고, 아내는 슬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돈 계산은 칼같다. 진짜 슬픈 사람은 저렇게 침착할 수가 없다. 내가 누군데. 나는 안 우는 사람을 읽는 사람이다. 이십이 년 동안 그 감이 틀린 적이 없었다.
빈소 한쪽에는 근조 화환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중 하나에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국 일동'이라고 적힌 리본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잠깐 생각했다. 공무원이었나 보네, 깐깐한 부서네. 그러고는 잊었다. 그게 나중에 내 발목을 잡을 줄은, 그땐 몰랐다.
둘째 날 밤, 나는 강력계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빈소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라, 내가 쓸 만한 정보를 흘려주면 가끔 밥을 산다. 일종의 정보원 관계랄까.
"야, 이건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남편이 자다가 갔는데, 아내가 너무 이상해. 눈물 한 방울을 안 흘려. 이 바닥 이십 년인데 저런 상주는 처음이야. 발견자도 아내 혼자고. 부검 한번 해보라 그래봐."
후배는 반신반의했지만, 형님 감은 늘 잘 맞았으니까, 위에 보고는 해보겠다고 했다.
4
발인을 하루 앞둔 아침, 형사 둘이 빈소에 왔다. 유족 동의를 받아 부검을 의뢰하겠다고 했다. 나는 멀찍이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보통 사람이면 펄쩍 뛴다. 멀쩡한 사람 잡아다 뭐 하는 짓이냐고. 떳떳하면 떳떳할수록 더 화를 낸다.
그런데 그녀는 놀라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잠깐 형사들을 보더니, "필요하시면 하세요. 발인은 미루면 되죠?"라고 물었을 뿐이다. 너무 태연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봐라, 저게 더 수상한 거다. 진짜 억울한 사람이면 부검한다는데 저렇게 담담할 수가 없지.
발인은 미뤄졌고, 시신은 국과수로 갔다. 덕분에 나는 며칠 더 그녀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빈소를 정리하면서, 신입이 조심스레 물었다. "소장님, 진짜 사모님이… 그런 걸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두고 봐. 내 감이 틀리나." 신입은 못내 찜찜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자신만만했다.
부검 결과가 나오는 데는 일주일이 걸렸다.
급성 심근경색. 자연사였다. 평소 고지혈증에 가족력까지 있던 남자가, 새벽에 심장이 멈춰서 죽은 것뿐이었다. 독극물도, 외력도, 질식도, 그 무엇도 없었다. 그냥 운 나쁜 중년 남자의 심장이 멈춘 거였다. 후배가 머쓱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형님, 이번엔 헛다리였네요. 사모님한테 괜히 미안하게 됐어요.
나는 조금 민망했지만 티 내지 않았다. 어쨌든 절차였고, 의심은 합리적이었으니까. 안 우는 미망인, 칼 같은 돈 계산, 영수증 원본 통화. 누구라도 의심했을 거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5
발인이 다시 잡힌 날, 마지막 정산을 하러 그녀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청구서를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었다. 관, 수의, 유골함, 도우미 인건비, 제단 꽃, 그리고 부검 때문에 늘어난 안치 비용까지. 나는 늘 하던 대로 군데군데 부풀린 금액을 매겨두었다. 안치료에 하루치를 더 얹었고, 도우미 시간도 실제보다 길게 잡았고, 꽃값에는 떼올 만큼 뗐다. 그녀가 분명 한 줄 한 줄 따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까다롭던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녀는 한 군데도 깎지 않았다. 청구서를 다 읽고는, 조용히 카드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보냈어요." 나는 안도했다. 의외로 깔끔하네. 결제가 끝나고 그녀가 가방을 챙겨 일어서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서류 봉투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건 따로 드리는 거예요. 집에 가서 천천히 열어보셔도 되고요."
수고비라도 챙겨주려나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미망인들이 더러 있다. 잘 보내줘서 고맙다고. 나는 인사치레로 "아유, 뭘 이런 걸" 하면서 봉투를 받았다. 그녀가 빈소를 나가는 걸 배웅하고, 자리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현금이 아니라, 종이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첫 장은 입관실 사진이었다. 내가 전시품 대신 한 등급 내려 쓴 그 관의 측면이, 라벨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누군가 입관 과정을 몰래 촬영한 거였다. 둘째 장은 화장장에서 받은 실제 유골함의 모델 번호와, 그 옆에 적힌 인터넷 도매가. 상담실에서 그녀가 골랐던 백자 함과는 십오만 원이 차이 났다. 셋째 장은 도우미 근무 시간 기록과 내 청구서를 나란히 붙여놓은 비교표였다. 시간마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은, 남편의 명함 복사본이었다.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국, 조사관.
그제야 빈소에 서 있던 그 근조 화환이 떠올랐다.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국 일동. 깐깐한 부서네, 하고 흘려보냈던 그 리본.
봉투 안쪽에 손글씨 메모가 한 장 더 있었다.
"남편이 그 일을 십팔 년 했어요. 장례 바가지 민원만 평생 들여다본 사람이었죠. 그 사람이 늘 그랬어요. 자기가 죽으면 제일 비싼 장례식장에 가서, 우는 척하지 말고, 똑똑히 지켜보라고. 슬픈 사람은 라벨을 안 본다는 걸, 그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고요. 그러니까 너는 그날만은 슬프지 말고, 끝까지 또렷한 눈으로 영수증을 봐라. 그게 마지막 부탁이었어요. 제가 안 운 건요, 소장님.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약속을 지키느라 그런 거예요. 부검까지 시켜주셔서, 안치료 부풀린 항목 표본도 아주 깨끗하게 받았네요.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6
빈소가 텅 비었다. 나는 그 종이 몇 장을 손에 쥔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십이 년 동안, 나는 사람을 읽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문이 열리는 삼 초 안에 다 보인다고. 우는 사람 말고 안 우는 사람을 보라고, 신입한테까지 가르쳤다. 그런데 그 여자는, 빈소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첫 삼 초부터, 나를 읽으러 들어온 거였다. 발끝이 멈칫하지 않은 건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처리할 일이 있어서였다. 그 일이 바로 나였던 거고.
관 모델명을 묻던 것도, 영수증 원본을 챙기던 통화도, 부검을 순순히 받아들이던 태연함도, 전부 슬픔이 아니라 절차였다.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러 온 동시에, 남편의 마지막 사건을 마무리하러 온 거였다. 평생 남의 장례 바가지를 잡던 조사관이, 자기 장례를 미끼로 마지막 한 건을 잡은 셈이다. 죽어서까지.
신입이 빈소 정리를 마치고 다가와 물었다. "소장님, 사모님 가셨어요? 그… 결국 자연사였다면서요. 괜히 부검까지 하게 해서 마음이 안 좋네요." 나는 종이를 슬그머니 봉투에 도로 넣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러게.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신입은 그 말을 위로로 알아듣고, 소장님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죠, 하며 웃었다. 나는 따라 웃지 못했다.
저 사진들이 어디로 갈지가 문제다. 소비자원으로, 구청으로, 아니면 그 흔한 맘카페 게시판으로. 어쩌면 이미 어딘가로 갔는지도 모른다. 안 우는 사람이 돈을 쓴다고 외삼촌이 그랬는데, 외삼촌은 그다음을 안 가르쳐줬다. 안 우는 사람 중에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증거를 모으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남의 슬픔을 읽어 먹고살았는데, 정작 내가 읽힌 줄도 몰랐다. 빈소에 밴 향 냄새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누구한테 읽히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나간 이십이 년을 천천히 되짚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