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컷

by김경훈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혼자 인생네컷을 찍는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니까. 친구랑, 애인이랑, 가족이랑 찍는 그 부스에 나는 혼자 들어간다. 커튼을 치고, 동전 대신 카드를 꽂고, 화면이 세어 주는 다섯, 넷, 셋에 맞춰 어색하게 웃는다. 옆자리는 비워 둔 채로. 네 컷이 나오면 두 컷은 바닥에 버리고, 두 컷은 집에 가져간다. 신발 상자 하나가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반쯤 찼다.

처음 혼자 찍은 건 작년 겨울이었다. 누구랑 헤어졌거나, 누가 떠났거나, 그런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니었다. 그냥 어느 밤,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불 꺼진 원룸에 들어가 스위치를 올리는 그 일 초가, 그날따라 견디기 싫었다. 켜 봤자 나밖에 없는 방의 불을, 굳이 내 손으로 켜는 일이. 편의점도, 코인노래방도 아니었다. 발이 멈춘 곳이 무인 사진관이었다. 그날 처음 혼자 부스에 들어갔고,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밤이 길다. 자정이 지나면 가게들이 하나둘 사람을 거둬들이고, 무인만 남는다. 무인 편의점, 무인 아이스크림, 무인 빨래방, 무인 사진관. 사람이 빠진 도시는 의외로 환하다. 불은 다 켜져 있는데 사람만 없다. 나는 그 환한 무인의 길을 걸어 사진관까지 간다. 십오 분. 그 십오 분이 하루 중 내가 가장 나 같은 시간이다.

가는 길에 무인 빨래방을 지난다. 새벽에도 불이 환하고, 건조기 도는 소리가 유리문 밖까지 샌다. 가끔 그 안에 누가 모로 누워 자고 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은 무인을 안다. 무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까.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걸, 나는 사진관 앞에 설 때마다 안다. 우리는 사람을 피해 무인으로 모인다. 실은, 사람이 그리워서.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마땅한 답이 없다. 거울은 나를 비추기만 한다. 카메라는 나를 한 장 떼어 준다. 떼어 낸 나는 조금 낯설고, 그래서 오히려 견딜 만하다. 셀카는 내가 나를 찍는 일이지만, 인생네컷은 무언가가 나를 찍어 주는 일이다. 그 사소한 차이가 나에겐 컸다. 나를 봐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게 천장에 박힌 렌즈 하나일지라도.

신발 상자 속 사진들을 가끔 꺼내 본다. 겨울의 나, 봄의 나, 여름의 나. 옆자리는 늘 비어 있다. 그런데도 한 장도 버리지 못했다. 두 컷은 바닥에 버리면서, 집에 가져온 두 컷은 끝내 버리지 못한다. 버려진 나와 보관된 나. 그 차이가 뭔지는 나도 모른다. 어떤 나는 버려지고, 어떤 나는 상자 속에 쌓인다.

요즘은 다들 사진을 찍는다. 밥을 찍고, 하늘을 찍고, 자기 얼굴을 하루에도 몇 번씩 찍는다. 그런데 정작 자기 얼굴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가장 많이 찍히는 시대를 살면서, 가장 자주 자기를 지운다. 찍고, 지우고, 또 찍는다.

무인 사진관은 그 모든 걸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해 준다. 누구랑 왔어요, 묻지 않는다. 왜 혼자예요, 묻지 않는다. 좋은 일 있어요, 묻지 않는다. 그냥 다섯을 세고, 나를 찍고, 한 장 떼어 준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무관심이다.

내가 다니는 곳은 새벽에도 문이 열려 있다. 부스가 네 개. 셋은 늘 비어 있고, 나는 늘 같은 부스, 안쪽 끝 4번을 쓴다. 4번은 가장 어둡고 가장 조용하다.

4번 부스 바닥에 사진 조각이 유난히 많다는 건 사실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부스는 한두 장인데 4번만 수북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한 컷씩 버리고들 가는 거겠거니 했다. 눈을 감은 얼굴, 웃다 만 얼굴, 둘이 들어왔다가 한 사람만 잘려 나간 자리. 나는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밟고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밟고 나왔다. 발밑에 누가 매일 자기를 버리고 있다는 건, 그때는 몰랐다.

그날은 새벽 두 시였다.

4번 부스의 커튼이 쳐져 있었다. 커튼 위 작은 등에 빨간 글씨가 켜져 있었다. 촬영 중.

나는 기다렸다. 곧 플래시가 터지고, 누군가 사진을 들고 나오겠지. 그러면 나는 4번에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플래시가 터지지 않았다. 오 분. 십 분. 촬영 중, 이라는 글씨는 꺼지지 않았다. 부스 안은 조용했다.

커튼 아래로 신발코가 보였다. 운동화 두 짝.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별생각을 다 했다. 안에서 누가 쓰러졌나. 자나. 혹은. 무인 점포에서 가장 무서운 건 누가 있는 게 아니다. 있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거다.

다른 부스를 쓰면 됐다. 1번도 2번도 비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4번이어야 했다.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게 아니라 지키라고 있는 거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겐 그렇다. 나는 커튼을 살짝 걷었다.

스툴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스물 몇쯤.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화면에는 촬영을 시작하려면 화면을 눌러 주세요, 라는 안내가 깜박였다. 그는 누르지 않았다. 그냥 렌즈를 보고 있었다. 마치 렌즈 너머에 누가 있다는 듯이.

나는 잠깐, 그가 죽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무인 점포에서 사람이 죽으면 누가 가장 먼저 알까. 아무도 묻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게 무인의 가장 깊은 친절이자 가장 깊은 무서움이다.

저기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놀라지 않았다. 한참 전부터 내가 거기 있는 걸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다 찍으셨어요?

아직요. ……누가 좀, 같이 찍어 줬으면 해서요.

네?

혼자 찍으면, 다음 날 보기가 좀 그래서요.

나는 늘 혼자 찍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 규칙이었다. 옆자리는 비워 두는 것. 비워 둬야 그게 나라는 것. 그런데 나는 커튼 안으로 들어갔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어쩌면 같은 종류의 사람을 알아봤기 때문인지도. 혼자 찍는 사람과 혼자 찍는 사람이, 처음으로 서로의 옆자리를 채운 것이다.

좁은 스툴에 둘이 앉았다. 어깨가 닿았다. 모르는 사람의 어깨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사람의 체온이라는 게 이렇게 구체적인 거였구나, 하고 나는 새삼 생각했다. 화면을 눌렀다. 카메라가 세기 시작했다. 다섯, 넷, 셋.

좁은 부스 안에서 나는 그를 처음으로 가까이 보았다. 면도를 며칠 안 한 턱, 후드 소맷부리가 해져 있었다.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사진 찍으러 온 사람의 손이 아니라, 면접을 기다리는 사람의 손 같았다. 찬 바람 냄새와, 아주 옅은 담배 냄새가 났다.

사진은 둘일 때만 거짓말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무슨 뜻이에요?

혼자 찍으면 다 거짓말 같거든요. 잘 지내는 척, 괜찮은 척. 근데 옆에 누가 있으면, 그냥 같이 찍힌 두 사람이잖아요. 거기엔 척할 게 없어요.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살짝 웃은 것 같았다. 그가 웃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플래시가 터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 짧은 빛 속에서 나는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상하게, 잘 나오고 싶었다.

사진이 두 장 인쇄돼 나왔다. 똑같은 네 컷이 두 줄. 그가 한 장을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로 고마운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는 커튼을 걷고 나갔다. 유리문이 열렸다 닫혔다. 도어벨이 딸랑 울렸다. 나는 남은 한 장을 들고 부스에 잠깐 더 앉아 있었다.

부스 안 화면이 다시 깜박였다. 촬영을 시작하려면 화면을 눌러 주세요. 나는 누르지 않았다. 그 남자처럼,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다. 그가 왜 누르지 않고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혼자라는 게 확정되니까. 누르지 않으면,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있을 수 있으니까.

모르는 사람과 사진을 찍은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따뜻했다. 나는 그 따뜻함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며 일어섰다.

나갈 때, 4번 부스 발치를 보았다.

사진 조각이 수북했다. 늘 거기 있던, 늘 밟고 다니던 것들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허리를 굽혀 한 장을 집었다.

네 컷 모두 그 남자였다. 혼자.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또 한 장. 같은 남자, 혼자. 또 한 장. 또 한 장. 사진 아래 작은 글씨로 날짜가 찍혀 있었다. 어제. 그제. 지난주. 지지난주.

나는 그 조각들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수십 장이었다. 전부 그 남자였고, 전부 혼자였고, 전부 버려져 있었다. 내가 몇 달을 아무 생각 없이 밟고 지나다닌 것이, 한 사람이 매일 밤 버린 자기 얼굴이었다.

그는 매일 밤 여기 와서 혼자 네 컷을 찍고, 한 컷도 남기지 않고 전부 버리고 갔던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한 컷이 아니라 네 컷 전부를. 자기를 찍어서, 자기를 버리는 일. 그걸 몇 주째 반복하고 있었다. 무인 사진관은 그가 자기를 버리는 걸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친절로, 그가 매일 조금씩 사라지는 걸 도왔다.

그런데 오늘은, 한 장을 가져갔다. 처음으로. 옆자리가 채워진 한 장을.

나는 내 손에 들린 사진을 보았다. 좁은 부스에 어색하게 낀 두 사람. 모르는 남자와 나. 둘 다 조금 굳은 얼굴로, 그래도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이 세상에 그 사람의 사진은 지금 이 한 장뿐이라는 걸. 그가 버리지 않은 단 한 장. 그리고 그건 그가 가진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었다.

나는 그를 도와준 게 아니었다. 혼자 찍기 무서운 사람의 옆자리를 잠깐 채워 준 게 아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이 세상에 남는 단 하나의 자리가 된 것이었다. 그는 매일 자기를 지웠고, 오늘 처음으로 자기를 남겼고, 그 남긴 자리는 내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가방에 넣었다. 버릴 수 없었다. 버리면 그는 정말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가방이 무겁지도 않은데, 나는 자꾸 가방끈을 고쳐 멨다. 종이 한 장이 그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누군가의 유일한 얼굴을 들고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날 집에 가는 길이 유난히 길었다. 무인의 길은 여전히 환했고,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 환함이 조금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가방 속 사진 한 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며칠, 나는 길에서 사람들 얼굴을 보게 됐다. 예전엔 안 그랬다. 무인의 도시에서는 얼굴을 볼 일이 없으니까. 다들 화면만 보고 걸으니까. 그런데 자꾸 스물 몇쯤의 남자 얼굴을 살피게 됐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어딘가에서 잘 지내는지 — 아니, 잘 지내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어딘가에 있긴 한지, 그게 궁금했다. 묻지 않는 법만 배운 도시에서, 나는 처음으로 누가 궁금했다.

한번은 평소보다 일찍, 자정쯤 사진관에 가 보았다. 그를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4번 부스는 비어 있었다. 촬영 중 등은 꺼져 있었다. 커튼이 반쯤 열린 채 흔들렸고, 스툴 위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빈 스툴을 한참 보다가, 결국 사진을 찍지 않고 돌아 나왔다. 그날은 혼자 찍는 것조차 하기 싫었다.

그다음 주, 나는 다시 그 사진관에 갔다. 습관은 무섭다. 나는 또 혼자였다.

4번 부스 바닥이 깨끗했다. 수북하던 조각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 새벽에 다 쓸어 간 모양이었다. 무인 점포에도 사람이 다녀간다. 아무도 없는 척하는 가게에도, 밤마다 그걸 치우러 오는 누군가가 있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 남자의 버려진 얼굴들도, 전부 함께 쓸려 갔을 것이다.

이제 그의 사진은 정말로 한 장뿐이다. 내 가방 안에, 신발 상자 맨 위에.

나는 그날, 4번 부스에 들어가지 못했다. 옆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자, 누가 거기 앉았다 간 것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1번 부스에 들어갔다. 커튼을 치고, 카드를 꽂고, 다섯, 넷, 셋. 옆자리를 비워 둔 채로.

그런데 이상하게, 그 빈자리가 예전 같지 않았다. 비어 있다는 건, 한때 누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플래시가 터졌다. 네 번. 사진이 나왔다. 나는 그걸 들여다보았다. 혼자 찍은 네 컷. 잘 지내는 척, 괜찮은 척. 그 남자 말이 맞았다. 혼자 찍은 사진은 어딘가 거짓말 같았다.

나는 두 컷을 바닥에 버렸다. 늘 그랬듯이. 그러다 다시 주워 가방에 넣었다. 모르는 남자의 사진 옆에. 왜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무인의 도시에서 나는 묻지 않는 법을 빨리 배웠으니까.

가방 속에서 두 장의 사진이 포개졌다. 혼자인 나와, 둘인 우리.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어디 사는지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무인의 도시 어딘가에, 자기를 매일 버리던 사람의 얼굴이 단 한 장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건 내 가방 안이다. 그거면 됐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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