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

Maison Margiela Replica Flower Market

by김경훈

방천시장 골목을 걷다 꽃집 앞에 멈추는 순간이 있다.


문을 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지나치기만 해도 충분하다. 냉장 쇼케이스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공기, 바닥에 고인 물, 철제 통에 꽂힌 줄기들, 누군가 잘라내고 버린 잎사귀. 꽃 냄새라기보다 꽃이 존재하는 공간의 냄새. 그 안에 잠깐 서 있으면 어딘가 마음이 헐거워진다.


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은 그 순간을 한 병에 담으려 한 향수다.



연구자: 레플리카(Replica)라는 이름이 흥미롭습니다. 무언가를 복제했다는 뜻인데.


플라워 마켓: 기억을 복제했습니다. 꽃 자체가 아니라, 꽃시장을 걸을 때 몸이 기억하는 감각들. 발밑에 물이 고이는 느낌, 손에 쥔 비닐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줄기를 자를 때 올라오는 풀내음. 저는 그것들의 복제본입니다.


연구자: 꽃 향수인데 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셈이군요.


플라워 마켓: 꽃집에 들어가면 꽃 냄새만 나지 않습니다. 흙 냄새도 나고, 차가운 냉기도 나고, 때로는 비닐 냄새도 납니다. 그 전부가 저입니다.



2012년, 메종 마르지엘라는 레플리카 라인 첫 세 가지 향수를 동시에 발표했다. 플라워 마켓, 비치 워크, 펀페어 이브닝. 각각 특정 기억을 불러일으키도록 설계되었고, 면직 라벨에 그 출처가 기록됐다. 향수를 감각의 기록으로 보는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적 시선이 향기 영역으로 확장된 순간이었다.


조향은 자크 카발리에와 마리 살라마뉴가 맡았다. 조향사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막 만들어진 꽃다발의 풍성함과, 꽃집 바닥에 잘려나간 줄기와 짓밟힌 잎사귀에서 올라오는 감각이었다.


탑 노트는 프리지아와 그린 리브스다. 첫 분무에서 퍼지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푸르다. 프리지아의 맑고 투명한 꽃향기와 함께, 잎사귀를 손으로 비볐을 때 나는 그 풋내음이 먼저 온다. 달콤하기 전에 초록빛이다. 방천시장 꽃집 앞을 지나칠 때 제일 먼저 코에 닿는 그 냄새.


미들에서 튜베로즈, 삼박 재스민, 이집트 재스민, 로즈 드 메가 합류한다. 화이트 플로럴이 한꺼번에 피어오르는데, 이상하게도 무겁지 않다. 각자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꽃집 냉장고 안의 꽃들처럼, 서로 빽빽하게 붙어 있으면서도 개별적으로 숨을 쉰다.



연구자: 화이트 플로럴이 네 가지인데 관능적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의도한 것입니까?


플라워 마켓: 튜베로즈는 관능적인 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튜베로즈를 꽃병에 꽂힌 상태로 씁니다. 누군가의 피부에 닿기 전의 상태. 아직 팔리지 않은 꽃.



베이스는 피치, 시더우드, 오크모스다. 꽃향기가 서서히 물러나면서 복숭아의 보드랍고 달콤한 살내음이 아주 옅게 남는다. 오크모스의 흙내음이 그 아래에서 받쳐준다. 마치 꽃집을 나와 한 블록쯤 걸어왔을 때, 옷에 밴 냄새처럼.


이 향수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한때 단종 루머가 돌았고, 품절 상태가 이어졌다. 1년 동안 아껴 쓰던 미니 사이즈가 바닥을 드러낼 때가 되어서야, 많은 사람들이 이 향수가 얼마나 좋았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른다는 사례.


기억을 복제한 향수가, 자신을 잃고 나서야 기억되는 향수가 됐다. 아이러니하지만 어울린다.


보보와 나란히 방천시장을 걷던 오후, 탱고가 한 꽃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냄새를 맡는 건지 시원한 냉기를 즐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보보가 "저기 꽃 한 다발 사도 돼?"라고 물었고, 나는 이미 손목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비슷한 냄새가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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