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 디 파르마 콜로니아

by김경훈

서문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의 면담 장소를 밝혀둬야겠다.


연구실이 아니다.


보보가 차를 몰아 경북대 북문을 빠져나온 것은 오후 두 시쯤이었다. 딱히 목적지 없이 나선 드라이브였는데, 어쩌다 보니 서문시장 근처에 차를 세우게 됐다. 탱고가 조수석에서 바람을 맞으며 코를 연신 킁킁거렸다. 기름 냄새, 어묵 국물 냄새, 생선 냄새, 좌판에 쌓인 옷감에서 올라오는 먼지 냄새. 시장 특유의 그 층층이 쌓인 냄새들. 그 한복판에서 나는 손목에 뿌려뒀던 오늘의 면담 상대를 맡았다.


아쿠아 디 파르마 콜로니아.


시장 냄새와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향수인데, 이상하게도 어울렸다.



연구자: 오늘 장소가 특이하죠?


콜로니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저는 손수건에 뿌리는 향수로 태어났습니다. 이탈리아 신사들이 시장에도 가고, 거리에도 나가고, 사람들 사이를 누볐죠. 저도 그랬습니다. 연구실보다 이쪽이 더 익숙할 수도 있어요.



1916년. 세계가 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있던 해, 이탈리아 파르마의 귀족 카를로 마냐니는 향수를 만들었다. 당시 유행은 독일에서 수입한 무겁고 과시적인 향수였다. 마냐니는 이에 반기를 들고 사각거리는 듯한 느낌의 산뜻한 향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존 향수와 쓰임새도 다르게 포지셔닝했다. 이탈리아 신사들이 손수건에 뿌려 쓰는 향수로. 전쟁 중에 태어난, 시대와 정반대 방향을 택한 향수.


콜로니아는 전후 미국과 유럽의 유명인들 사이에서 이탈리아 시크의 상징이 됐다. 캐리 그랜트, 아바 가드너, 오드리 헵번이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리고 지금, 그 레시피는 100년 전과 거의 같다.



탑 노트는 시칠리아 레몬, 스위트 오렌지, 칼라브리아 베르가못이다. 첫 분무에서 퍼지는 향은 과장이 없다. 달지 않고, 튀지 않고, 그냥 맑다. 레몬 하나를 손바닥으로 굴렸을 때 손에 배는 그 냄새, 껍질이 터지면서 올라오는 투명한 시트러스. 시장 좌판 앞에서 맡으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주변이 복잡할수록 이 향은 더 또렷해지는 종류다.


미들로 내려가면 라벤더, 불가리안 로즈, 버베나, 로즈마리가 합류한다. 각자 주장하지 않는다. 서로 목소리를 낮추고 가지런히 자리를 잡는다. 라벤더는 허브처럼, 로즈는 꽃처럼, 버베나는 풀처럼. 이 조화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개별 노트를 뜯어내기가 어렵다.



연구자: 성분이 많은데도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콜로니아: 합창단을 생각해보십시오. 목소리가 많다고 시끄러운 게 아닙니다. 각자가 제 자리를 알면 하나의 소리가 됩니다. 저는 100년 동안 연습했습니다.



베이스는 베티버, 샌달우드, 패츌리. 앞선 밝고 상쾌한 흐름이 여기서 조용히 착지한다. 뜨겁지 않고 따뜻하다. 시트러스의 청명함이 나무의 온기 위에 내려앉는 느낌. 서문시장의 오후 햇살이 좌판 천막 위에 비스듬히 기울던 그 시간, 보보가 어묵 국물 한 잔을 건네면서 내 소매를 스쳤다. 탱고가 내 손목 쪽으로 코를 들이밀었다가 이내 좌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묵 쪽이 더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콜로니아는 주장하지 않는다. 무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남는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기분 좋은, 잘 정돈된 사람의 냄새. 1916년에 만들어진 향수가 2025년 대구 서문시장 골목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클래식이란 유행을 초월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유행을 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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