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7부

by김경훈

나는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삼 년을 같이 일했는데도 그렇다. 아침에 오면 포르쉐가 먼저 와 있거나 내가 먼저 와 있다. 어느 쪽이든 말은 별로 없다. 선생님은 진찰실에 있고 나는 대기실에 있다. 환자가 오면 들여보내고, 탕약이 되면 갖다 주고, 전화가 오면 받는다. 그게 내 일이다.


처음엔 그게 편했다.

전 온라인 게임은 물어보는 게 많았다. 뭐 먹었어요, 주말에 뭐 했어요, 남자친구는 있어요. 나는 그런 질문들이 싫었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일하러 온 거였는데.


선생님은 묻지 않는다. 삼 년 동안 내 주말이 어땠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나도 선생님한테 묻지 않는다. 그게 우리 사이의 규칙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요즘은 그게 좀 달라졌다.



시작은 수첩이었다.


선생님이 항상 가운 주머니에 수첩을 가지고 다닌다. 작고 낡은 수첩이다. 표지가 가죽인데 오래되어서 색이 바랬다. 환자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넣는다. 빠른 동작으로. 처음엔 그냥 메모 수첩인가 했다. 차트 옆에 따로 적어두는 게 있나 싶었다.


근데 차트는 따로 있다. 컴퓨터로도 치고 종이로도 있다. 수첩에 적는 건 그게 아닌 것 같다.


한 번은 선생님이 화장실 간 사이에 수첩이 바카라상 위에 있었다.


열지 않았다. 열 수도 있었는데 안 열었다. 왜 안 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느낌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선생님이 돌아와서 수첩을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내가 안 열었다는 걸 알았는지 모랐는지 모르겠다.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도 아무 말도 안 했다.



두 번째는 영어였다.


전화가 영어로 왔을 때 나는 폰을 선생님한테 건넸다. 선생님이 받아서 말하는 걸 들었다. 목소리가 달랐다. 경상도 사투리가 사라졌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근데 나한테는 이상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저걸 배운 걸까.


나중에 물어봤다. 선생님은 배울 데서 배웠다고 했다. 외국에 나가본 적 있냐고 했더니 없다고 했다.


외국에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저 영어가 나온다.


나는 그 이후로 선생님 영어를 두 번 더 들었다. 스티븐 박 선생님이 두 번째로 왔을 때. 그리고 한 번은 전화로. 매번 목소리가 달랐다. 사투리 쓸 때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 같았다.


같은 사람이 왜 목소리가 달라지는 걸까.



세 번째는 어제였다.


하재민 씨가 갔다. 선생님이 진찰실에 혼자 있었다. 나는 대기실에서 폰을 보고 있었다. 아니, 폰을 들고 있었다. 그날은 별로 볼 게 없었다.


그때 들렸다.


진찰실 쪽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났다. 혼잣말이었다. 처음엔 차트 보면서 중얼거리는 건가 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으니까. 근데 아니었다.


사투리가 아니었다. 표준어도 아니었다.


어디 억양인지 몰랐다. 두 문장쯤. 무슨 말인지 잡히려는 순간 끊겼다.


나는 문을 열었다. 선생님이 차트를 보고 있었다. 아무 일 없는 표정이었다.


다음 환자 몇 시야. 경상도 사투리로 물었다.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했다.


들었는데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


나는 그 두 가지가 어떻게 같은 시간 안에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환자가 적었다.


오전에 두 명, 오후에 한 명. 선생님이 오후 환자를 보내고 나서 진찰실에 있었다. 나는 대기실에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됐는데 선생님이 나오지 않았다.


두드렸다.


"선생님."


"응."


"다음 환자 없어요."


"알아."


"퇴근할게요."


"어."


퇴근하면서 진찰실 문 앞을 지나쳤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선생님이 창가에 서 있었다. 약령시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찐빵도 없었다. 수첩도 없었다. 그냥 서서 봤다.


뭘 보는 건지 몰랐다.


골목에 뭐가 있는 건지. 아니면 골목 너머 뭔가를 보는 건지.


나는 그냥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삼 년 동안 선생님을 봤는데 내가 아는 건 뭔가.


찐빵을 좋아한다. 포르쉐를 타는데 람보르기니도 있다. 둘 다 SUV다. 약령시 골목에 포르쉐를 주차하려다가 매번 막힌다. 영어를 잘한다. 외국에 나간 적이 없다. 수첩을 가지고 다닌다. 뒤집힌 액자가 있다. 사투리가 아닌 목소리가 있다. 환자한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 혼자 골목을 내려다본다.


그게 다다.


삼 년이 그게 다다.


나는 그게 이상한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골목을 나오면서 한약재 상점 주인 아저씨가 마침 문을 닫고 있었다.


아저씨가 나를 봤다.


"오늘도 늦게 나와요?"


"그냥 좀 늦었어요."


아저씨가 열쇠를 잠그면서 말했다.


"원효 씨는 아직 있어?"


"네."


"저 사람은 항상 제일 늦게 나오더라."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잠깐 멈췄다.


"아저씨, 선생님 오래 알아요?"


"오래는 뭐. 저 건물 살 때부터니까. 몇 년 됐지."


"그 전에는요."


"그 전엔 모르지." 아저씨가 열쇠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저 건물 사가지고 뚝딱 열었으니까. 우리도 물어봤는데 대답을 잘 안 해."


"어디서 왔는지도요?"


"어디서 왔는지도."


아저씨가 의자를 안으로 들이면서 나를 봤다.


"거기서 삼 년 일했죠?"


"네."


"나도 십 년 됐는데 몰라요."


아저씨가 문을 닫았다. 나는 골목 밖으로 걸었다.


십 년이 몰라요.


나는 삼 년이 몰라요.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면서 폰을 꺼냈다.


뭔가를 검색하려다가 뭘 검색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 이름을 검색해도 나오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전에 해봐서 알고 있었다. 심의당 이름으로 검색하면 주소랑 전화번호밖에 없다.


폰을 껐다.


버스가 왔다. 탔다. 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봤다.


41번이 아니었다. 다른 노선이었다. 나는 41번을 탈 때마다 하재민 씨가 생각날 것 같았다. 아직 운전 복귀를 못 한 사람. 선생님이 처음으로 틀렸다가 고쳤던 날의 환자.


선생님이 틀릴 수 있다는 게 나는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왜 안심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집에 와서 불을 켰다.


좁은 방이었다. 짐이 많지 않았다. 벽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선생님 진찰실 벽에는 뒤집힌 액자가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안 걸려 있는 벽을 봤다.


뭔가를 걸어놓고 뒤집어놓는 것과 아무것도 안 거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둘 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 같은 것 같기도 했다.



자려고 누웠다가 생각이 났다.


명음사에 레코드를 사러 가기로 했다. 최기태 씨가 들어보고 사라고 했다. 들어봤는데 또 들어보고 사라고 했다. 이유가 이상했는데 막상 들으니까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들을 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엄마가 자주 틀었다고 했는데 이제 그 노래를 나도 자주 틀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 이야기를 선생님한테 한 적이 없다.


선생님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서 편했는데, 요즘은 가끔 누가 물어봐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선생님이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누군가.



불을 껐다.


어두워졌다.


선생님이 골목을 내려다보면서 뭘 보는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근데 아마 오래 봤을 것 같다.


퇴근하고 나서도 한참.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경상심(驚傷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