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라보 패츌리 24

by김경훈

이름을 믿지 마라.


르라보 패츌리 24. 이름만 보면 패츌리 향수다. 히피의 냄새, 70년대 반문화의 상징, 흙냄새 짙은 달콤한 허브. 그걸 기대하고 면담실 문을 열면, 당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그날 연구실에는 보보도 있었다. 인문관 강의를 마치고 건너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펼쳐들고 있던 참이었다. 오늘 면담 상대가 온다고 했더니, 보보가 그냥 옆에서 지켜보겠다고 했다. 이름이 패츌리니까 자기 취향일 것 같다고. 첫 분무가 퍼지는 순간, 보보는 바카라에서 눈을 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게 패츌리야?"



연구자: 이름이 패츌리인데, 패츌리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패츌리 24: (담담하게) 패츌리 24는 패츌리에 대한 향수입니다. 패츌리 그 자체가 아니라.


연구자: 차이가 있습니까?


패츌리 24: 누군가에 대해 쓴 글이 그 사람과 같지 않은 것처럼요. 저는 패츌리라는 재료가 품고 있던 가능성의 다른 버전입니다.



조향사 아닉 메나르도. 디올의 히프노틱 푸아종, 불가리 블랙을 만든 사람이다. 그녀가 패츌리 24를 내놓은 것은 2006년, 르라보가 브랜드를 창립하던 해였다. 그리고 이 향수는 르라보의 철학을 가장 극단까지 밀어붙인 버전이 됐다. 이름에 적힌 원료가 반드시 주인공은 아니다.


첫 분무에서 코를 때리는 것은 패츌리가 아니다. 자작나무 타르다. 버치 타르. 시베리아 숲에 불이 난 것처럼, 가죽이 고열에 눌어붙는 것처럼, 의료용 소독약처럼. 날카롭고 검고 타는 냄새. 몇 번 시향했던 리뷰어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뜨거운 오토바이 엔진 위에 올려둔 낡은 가죽 재킷. 또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속 세계, 바카라들이 불타는 장면. <화씨 451>의 그 냄새.


스티락스가 가세하면서 연기는 더 두터워지고 수지(樹脂)처럼 끈적해진다.



연구자: 처음 맡는 사람들이 압도당합니다. 의도한 것입니까?


패츌리 24: 첫 인상이 강해야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서 끝나는 향수가 아닙니다. 기다려보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바닐라가 온다.


갑작스럽지 않다. 타르와 연기가 조금씩 물러나는 틈으로, 크리미하고 따뜻한 바닐라가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연기 냄새가 바닐라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바닐라가 이긴다. 정확히는 둘 다 이긴다. 서로를 지운 게 아니라, 서로를 변형시키면서 어느 쪽도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제3의 냄새가 탄생한다. 불에 그슬린 바닐라, 또는 바닐라 향을 흡수한 연기.


한 리뷰어는 이것을 두고 "압력 밸브"라고 표현했다. 스모키한 가죽이 너무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 바닐라가 그것을 붙잡아준다는 것. 외줄타기를 하되 안전망이 있는 느낌.



연구자: 패츌리는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패츌리 24: (잠깐 침묵하다가) 그림자 속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아요. 저는 패츌리가 이 향수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보보가 바카라을 덮고 다시 코를 킁킁거렸다. "처음엔 별로였는데, 지금은 좀 달라."


그게 이 향수의 방식이다. 처음 만남은 압도적이고 낯설고 거부감마저 든다. 하지만 피부 위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향은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고, 어느새 자꾸 손목을 들이밀게 만든다. 탱고는 내 소매 냄새를 맡더니 두어 번 킁킁거리고는 자리를 피했다. 보보는 다시 바카라을 펼쳤지만, 이따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패츌리 24는 친절한 향수가 아니다.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향수도 아니다. 그냥 자기 자신인 채로 거기 있다. 이해하는 사람이 오면 좋고,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런 사람이 있다. 처음 만날 때 당황스럽고, 두 번째 만날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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