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의 아키텍처

by김경훈

나는 아메리카노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

쓴맛을 즐기지 못하고, 속도 쓰리다.

그래도 오랫동안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메뉴판을 볼 수 없을 때, 아메리카노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이름만 알아도 주문할 수 있었고, 설명을 요구하지 않아도 됐으며, 카운터 앞에서 오래 서 있지 않아도 됐다.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선택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것은 보보와 함께 동네 카페에 갔다가, 처음으로 메뉴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처음으로 먹고 싶은 것을 고른 어느 평범한 오후의 기록이다.



신혼집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의 카페였다.

보보가 카운터 앞 메뉴판을 훑다가 말했다.

"여기 메뉴가 엄청 많네. 어떻게 할까?"


예전 같으면 이미 입을 열었을 것이다. 아메리카노요.

대신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다.


"다 읽어줄 수 있어?"


보보는 잠시 메뉴판을 들여다보더니 읽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계열 먼저.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바닐라라테,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카운터 뒤에서 직원이 미소 지으며 기다렸다.

뒤에 줄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소리로 어림잡기엔 애매한 정도였다.


보보는 멈추지 않았다.

"논커피로 넘어갈게. 말차라테, 얼그레이라테, 딸기라테, 자몽에이드..."


자몽에이드. 오늘 날씨가 덥다.

"자몽에이드 할게."

"나는 말차라테."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탱고가 테이블 아래로 들어가 엎드렸다.

잠시 후 자몽에이드가 왔다.

새콤하고 차가웠다. 좋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오늘은 보보가 있었다.

보보가 없었다면, 아메리카노를 시켰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취향이 어디 있는지와 무관하게 오랫동안 반복된 일이다.

카운터 앞의 그 잠깐의 압박. 뒤에 줄이 서 있을 것 같은 느낌. 직원에게 하나하나 물어보기가 미안한 마음.

그 마음이 쌓여 결국 내리게 되는, 선택처럼 보이는 포기.


시각장애인에게 카페의 메뉴판은 처음부터 없는 것과 같다.

이미지로만 된 메뉴판, 빼곡한 글씨로 가득 찬 칠판, 화면 속 사진들.

점자 메뉴판을 갖춘 곳이 없지는 않지만, 없는 곳이 훨씬 많다.

모바일 주문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화면 낭독기가 읽지 못하는 이미지 메뉴는 그쪽에도 여전하다.


없다고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택지가 없을 때, 사람은 원하는 것을 고르는 대신 가장 무난한 것을 고르는 법을 몸에 익힌다.

그렇게 취향은 조금씩 지워진다.



제목: 메뉴의 아키텍처, 혹은 취향을 가질 권리에 대하여.


카페의 메뉴판은 아무도 막지 않는다.

들어오지 말라는 말도 없고, 주문하지 말라는 말도 없다.

그러나 선택지가 보이지 않을 때, 자유로운 선택이란 없다.


접근성은 출입구의 문제가 아니다.

카운터 앞에 서서, 먹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결론: 메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다는 자기결정의 가장 작은 단위다.

점자 메뉴판 하나, 음성 지원 하나.

그것은 카페의 배려가 아니라, 취향을 가질 권리를 되돌려 주는 일이다.


그나저나 보보는 이제 내 공식 메뉴 낭독사가 됐다.

오늘도 말차라테를 마시며 "이거 너무 맛있어"를 세 번 말했다.

나는 자몽에이드를 마시며 처음으로, 이게 내가 진짜 원했던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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