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약속을 좋아한다.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든지.
원격의료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 약속은 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반복되고 있다.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도 집에서 의사를 만날 수 있다.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누구나라는 말에는 언제나 몸이 전제되어 있다.
빠른 터치 입력이 가능한 손. 작은 버튼과 구불구불한 보안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눈. 화면을 단계마다 따라가는 인지 속도.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설계된 플랫폼의 기준 몸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나는 이것을 논문이나 학술 보고서에서 먼저 배운 게 아니다.
내 화면 낭독기에서, 내 손끝에서, 그리고 결국 신발을 챙겨 신어야만 했던 내 발에서 먼저 배웠다.
이것은 목이 칼칼했던 어느 화요일, 재진이니까 비대면으로 충분할 거라 생각하며 앱을 열었다가, 세 번의 인증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탱고의 하네스를 들고 버스를 탄 어느 정보 접근성 연구자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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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가 출근한 화요일 오전.
김경훈은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일주일째 목이 칼칼했다. 같은 병원 재진이었고, 비대면 진료 앱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화면 낭독기를 켰다.
"진료 예약, 버튼." "로그인, 버튼."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로그인 후 본인 인증 단계로 넘어갔다.
화면 낭독기가 읽었다.
"이미지 보안 문자를 입력하세요."
멈췄다.
보안 문자는 이미지였다. 구불구불하게 뒤틀린 숫자와 글자가 배경 잡음 위에 박혀 있는, 눈으로 봐야만 해독 가능한 그것이었다.
화면 낭독기는 읽지 못했다. 대신 이렇게 읽었다.
"이미지."
음성 보안 문자 옵션을 찾았다. 없었다.
앱을 껐다가 다시 켰다. 카지노 계정으로 간편 로그인을 시도했다.
연결 화면으로 넘어가자 안내 문구가 나왔다.
"신분증의 네 모서리가 화면 안에 들어오도록 직접 촬영하여 본인 인증을 완료하세요."
탱고가 의자 옆에서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김경훈은 잠시 폰을 내려놓았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연결 대기 중이라는 안내 음성이 십오 분간 흘렀다.
겨우 연결됐다.
"비대면 진료 앱 본인 인증 과정에서 화면 낭독기가 보안 문자를 읽지 못합니다."
상담원이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해당 사항은 개발팀에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탱고의 하네스를 들었다.
대기실
병원 대기실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구조였다.
탱고가 발치에 앉았다. 냉방 소리와 간헐적인 안내 방송이 공간을 채웠다.
잠시 후 옆자리에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앉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비대면 진료 앱 써보셨어요?" 김경훈이 물었다.
"써봤죠. 손이 이래서 버튼을 자꾸 잘못 누르더라고요. 오래 걸려서 그냥 왔어요."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동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이동이 어려운 두 사람을 여기,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혀두었다.
"다음에도 오시겠네요." 남성이 말했다.
"그러게요." 김경훈이 답했다.
번호가 불렸다. 남성이 천천히 일어났다.
제목: 접속의 아키텍처, 혹은 누구나에 포함되지 않는 몸들에 대하여.
원격의료는 이동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동을 없애기 전에, 먼저 물었어야 했다.
지금 이 기술 앞에서 멈추는 몸이 어디에 있는가.
보안 문자 하나, 촬영 안내 문구 하나.
그것은 작은 설계 선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병원 계단과 같다.
플랫폼이 전제하는 손과 눈과 인지 속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이동이 사라진 세계에서도 이동해야 한다.
결론: 기술이 누군가를 해방시킬 때,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더 조용하게 가두기도 한다.
그 조용한 가둠은 나쁜 의도에서 오지 않는다.
그저 설계할 때, 그 몸이 방 안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집에 돌아왔더니 보보가 물었다.
비대면 진료 어땠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잘 됐어.
병원 다녀왔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