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 앞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카페에서 메뉴를 고르는 시간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칠판에 적힌 메뉴를 훑어보고, 오늘은 뭘 마실까 잠깐 고민하고, 계산대 앞에 서서 주문한다. 아마 2분에서 5분 사이의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에 두세 번 반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점심 먹고 카페 가자는 말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메뉴가 수십 가지인 카페도 낯설지 않다. 에스프레소, 라테, 콜드브루, 플랫화이트, 시그니처 음료, 계절 한정, 논카페인 라인, 디저트까지. 선택지가 많다는 건 좋은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선택지가 당신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메뉴판은 대부분 시각 정보다. 벽에 걸린 큰 메뉴판, 계산대 위의 디스플레이, 테이블 위의 종이 메뉴판. 이 중 어느 것도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카페에 들어서면, 그 수십 가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중증 시각장애인이 카페를 방문하면 먼저 함께 온 지인이나 활동지원사에게 메뉴를 읽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음료 이름만 들어서는 부족하다. 우유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당분은 있는지,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선택을 하려면 정보가 필요하고, 그 정보를 얻는 과정이 비장애인과 완전히 다르다.
문제는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생긴다는 것이다. 뒤에 줄이 서 있다. 직원은 기다리고 있다. 일일이 설명을 요청하다 보면 까다로운 손님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선택을 포기한다. 정확히는 선택의 과정 자체를 포기한다.
용인에 사는 한 전맹 시각장애인은 카페에 가면 주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고 했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메뉴를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 을지로에 사는 또 다른 시각장애인은 추천받아 주문해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국 음료를 거의 마시지 못하고 나오는 때도 있다고.
아메리카노는 이 이야기에서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선택을 포기한 자리에 남은 것이다.
선택이라는 행위를 정보 접근성의 관점에서 보면 구조가 드러난다.
선택은 정보에서 시작된다.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고를 수 있다. 그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이 차단되면, 선택지 자체가 사라진다. 메뉴판이라는 정보 구조물이 시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은, 시각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 공간의 선택권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택지가 30개인 카페에서 시각장애인이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얼마나 되는가. 점자 메뉴판이 없다면, 동행자가 없다면, 혹은 동행자에게 부탁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30개의 선택지는 사실상 없는 것과 같다.
비장애인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과 시각장애인에게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메뉴가 늘어날수록 읽어야 할 정보가 많아지고, 그 정보가 시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한 격차는 더 커진다. 메뉴 다양화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선택지 확대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입 장벽 상승이다.
이것이 정보 접근성이 단순한 편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선택에서 배제된다는 것이고, 선택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그 공간에서 동등한 참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카페는 일상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의 배제는 일상에서의 배제다.
점자 메뉴판이 해결바카라처럼 보인다. 실제로 일부 프랜차이즈는 도입하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2019년부터 전국 가맹점에 점자 메뉴판을 비치했다. 메뉴 이름뿐 아니라 상세 정보까지 점자로 제공한다. 긍정적인 변화다.
그런데 점자 메뉴판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시각장애인 전체의 점자 해독률은 10퍼센트 내외로 추정된다. 후천적 시각장애인의 경우 성인이 된 이후 점자를 배우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점자 메뉴판은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해결바카라이다.
키오스크와 모바일 주문 시스템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들이 스크린 리더와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터치스크린 키오스크는 화면을 봐야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음성 안내가 없고, 버튼의 위치를 알 수 없고, 오류가 났을 때 어떤 오류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디지털 전환이 오히려 접근성을 낮추는 역설이 여기서 생긴다. 오래된 문제가 새로운 기술로 포장되어 더 견고해지는 것이다.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다. 접근성을 고려해 설계된 앱이 있고 그렇지 않은 앱이 있다. 스크린 리더가 읽을 수 있는 버튼과 읽을 수 없는 버튼이 같은 화면에 섞여 있다. 이미지로만 구성된 메뉴 설명은 대체 텍스트가 없으면 시각장애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좋은 의도로 만든 서비스가 처음부터 특정 사용자를 배제한 채 설계되어 있다.
정보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있다.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그것을 찾고, 평가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이 개념은 보통 개인의 능력으로 이야기된다. 정보를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런데 개인의 능력 이전에 환경이 있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정보 리터러시를 가진 사람도 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
카페 메뉴판 앞에서 시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의 문제다. 메뉴판이 시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한, 그 환경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시간적 비용, 감정적 비용, 슬롯적 비용.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비용이다.
정보 접근성이란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구나 동등한 노력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비장애인이 메뉴판을 보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기준이라면, 시각장애인이 같은 정보를 얻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의 차이가 바로 접근성의 격차다. 그 격차가 존재하는 한 두 사람은 같은 카페에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
카페는 현대 슬롯에서 가장 평범한 일상 공간 중 하나다. 누구나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시키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 평범함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공간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부탁하기가 부담스러워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사람이 있다. 음료를 거의 마시지 못하고 나오는 때도 있다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카페를 찾는 이유는 그 공간에 있고 싶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공간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설계다. 메뉴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키오스크가 어떻게 설계되는가, 앱이 어떤 사용자를 전제하고 만들어지는가. 이 선택들이 누군가를 포함하고 누군가를 배제한다.
선택의 자유는 선택지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메뉴판이 있어도 읽을 수 없다면, 선택지가 30개여도 0개와 같다. 선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여기 있다.
이 공간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