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열어봐야 안다
25달러짜리 와인 한 병 앞에서 겁을 먹은 적이 있다.
정확히는 와인이 아니라 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들킬까봐 겁을 먹은 것이다. 잔을 들고 냄새를 맡아야 하는 순간, 이걸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먼저 왔다. 이 냄새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걸 알아야 하는 건지 몰라도 되는 건지. 결국 잔을 들지 않고 바로 마셔버렸다. 맛있었다. 그런데 뭔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겁이 전부였다.
와인은 상당히 솔직한 물건이다. 냄새를 제대로 맡으면 그 와인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날씨 속에서 포도가 자랐는지까지 전부 말해준다. 마른 과일 향이 나면 그해 여름이 뜨거웠다는 뜻이다. 시큼한 과일 향이 나면 서늘하고 느린 계절을 보냈다는 뜻이다. 나무 향은 어떤 통에서 얼마나 오래 숙성됐는지를 알려주고, 빵 냄새가 나면 아직 효모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와인 한 잔이 사실은 꽤 긴 보고서다.
시라 포도는 검은 후추 냄새가 난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초록 피망 향을 품고 있다. 소믈리에들은 이 냄새들을 외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암기가 아니다. 포도 품종마다 다른 냄새가 나는 건, 그 포도가 자라온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냄새를 아는 것은 그 와인이 걸어온 시간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와인을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의 대부분은 향이다. 맛이라고 느끼는 것의 80퍼센트 이상이 후각에서 온다. 코를 막고 와인을 마시면 포도주스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와인을 제대로 경험한다는 것은 사실 코로 경험한다는 것과 거의 같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맛에 집중하고 냄새는 전주곡 정도로 취급한다. 순서가 뒤집혀 있었던 거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는 게 있다. 소믈리에들이 어떤 와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향과 맛만으로 원산지, 품종, 생산 연도, 양조장까지 맞히는 훈련이다. 처음 들으면 마술처럼 보인다. 그런데 원리는 단순하다. 냄새를 충분히 많이 경험하면, 그 냄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경험이 쌓이면 냄새가 언어가 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중요한 건 모른다는 상태를 버티는 것이다. 레이블이 없으면 미리 기대를 설정할 수 없다. 비싼 와인이라는 정보가 없으면 비싸게 느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코앞에 있는 냄새를 맡고, 그 냄새가 무엇을 말하는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모른다는 게 오히려 더 정확한 조건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와인을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보면 결정의 연속이다. 어떤 포도를, 어느 땅에, 언제 심을지. 물을 줄지 말지. 가지를 칠지 말지. 언제 수확할지. 어떤 통에서 얼마나 숙성할지. 각 결정마다 와인의 성격이 달라진다.
대량 생산 와인은 이 변수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어느 해에 만들어도, 어느 공장에서 병입해도 똑같은 맛이 나야 한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나쁜 와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와인에는 특정한 해의 날씨도, 양조장인의 판단도, 그해의 기억도 없다. 균일함의 대가가 그것이다.
반대로 좋은 와인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해마다 다르다. 같은 포도밭, 같은 양조장인이 만들어도 그해의 기후와 결정이 다르면 다른 와인이 된다. 어떤 해는 더 좋고 어떤 해는 덜 좋다. 이 변동성 자체가 정보다. 와인이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가 여기 있다. 통제된 균일함이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
병을 따고 나서도 변한다. 공기를 만나면서 향이 열린다. 잔 안에서도 모금마다 다르다. 와인은 숨을 쉰다.
와인 냄새를 맡는다는 행위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두려움이 있다. 속물처럼 보일까봐. 잘 모르는 게 들킬까봐. 그래서 냄새를 맡지 않고 바로 마셔버린다. 결국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 경험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냄새를 맡는 데 전문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다. 무엇을 느꼈는지 말할 줄 알면 된다. "체리 같은데요"도 충분하다. 실제로 전문 테이스터들도 처음엔 베리류나 사과 같은 실물을 가져다 놓고 비교하면서 배운다. 코도 경험이 쌓일수록 더 잘 맡게 된다. 잘 모르는 채로 시작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문제는 모른다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잘 모를 때 조용히 있기보다 아는 척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아예 경험을 회피하는 것. 두 선택 모두 결국 같은 곳에 남겨진다. 출발선.
이 와인을 처음 맡았을 때 긴장했다고 고백한 연구자가 있다. 와인 전문가가 아닌 자신이 와인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을까, 글로 쓸 수 있을까. 그러다 깨달았다고 한다. 냄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후각을 단련할 수 있다는 것을. 전문 지식이 아니라 주의 깊음이 먼저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냄새로 경험하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함께 냄새를 맡고 각자 다른 것을 느끼고 그것을 말하면서, 서로가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와인 테이스팅이 사교적인 활동인 이유가 단순히 술자리여서가 아니다. 같은 잔 앞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숙성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충분히 익거나 발달한 상태'라고 나온다. 와인이 통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숙성이고, 소믈리에가 수백 번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거치며 감각을 키우는 것도 숙성이다. 둘 다 시간이 필요하고, 둘 다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다.
좋은 와인은 병을 따는 순간을 위해 수년을 기다린다. 그리고 잔에 따르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변한다. 시간을 품고 있다가, 열리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들이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