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심(喜傷心)

5부

by김경훈

희상심(喜傷心): 기쁨이 지나치면 심기(心氣)가 흩어진다. 흩어진 기는 모으기 어렵다. — 《동의보감》 내경편



1


딸이 서울로 간 건 삼월 초였다.


합격 통보가 온 건 이월이었다. 서울 강남에 본사를 둔 대기업 마케팅 직군. 경쟁률이 높은 곳이었다. 딸 오유진이 그 소식을 전화로 알려왔을 때 어머니 박순남은 부엌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이 꺾인 게 아니라 그냥 앉아버렸다. 힘이 빠진 게 아니라 너무 차서 앉아버렸다.


이십사 년이었다.


남편이 일찍 떠난 뒤 수성구에서 작은 식당을 열었다. 이름은 순남식당이었다. 이름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 이름을 붙였다. 간판 글씨가 예쁘지 않다고 주변에서 말했는데 바꾸지 않았다. 바꿀 이유가 없었다. 그 식당에서 이십사 년 동안 밥을 팔면서 유진을 키웠다.


유진이 중학교 때 반에서 일등을 했을 때도, 고등학교 때 수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대학교 졸업식 날 사진을 찍을 때도 박순남은 울지 않았다. 눈물이 없는 사람이었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다른 데 쓰는 사람이었다. 식당 일을 하면서 감정을 아끼는 법을 몸이 알아서 배웠다.


그런데 합격 전화를 끊고 부엌 바닥에 앉아서 박순남은 처음으로 혼자 울었다.


기뻐서 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유진이 짐을 싸고 서울로 올라간 날 이후로 박순남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피곤한가 보다 했다. 이삿짐 나르느라 무거운 걸 들어서 그런가 했다. 근데 아무것도 안 해도 두근거렸다. 밤에 누우면 더 심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이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과에 갔다. 심전도를 찍었다. 이상 없다고 했다. 혈압도 정상이었다. 의사가 갱년기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호르몬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박순남은 검사를 받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다가 그냥 집으로 왔다.


딸이 떠난 게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박순남은 알 수 없었다. 기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십사 년 동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거였다. 기쁜 게 맞았다.


근데 가슴이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지는 몰랐다.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약령시 골목 명음사 사장 최기태였다.


"사장님, 요즘 어디 안 좋아요?"


순남식당에 오면 항상 그 자리에 앉는 단골이었다. 박순남이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봤다.


"아, 그냥요. 좀 피곤한가봐요."


"약령시에 한의원이 하나 있어요. 저 거기서 꽤 봤습니다. 가보시죠."


박순남은 그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태는 밥을 먹고 나서 계산을 하면서 말했다.


"오늘 된장찌개 특히 맛있었어요."


박순남이 그 말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2


약령시 골목 입구에서 박순남은 잠깐 멈췄다.


이상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골목 한약 냄새가 좋아서였다. 어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이 골목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몇 살 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냄새는 기억났다. 지금이랑 똑같은 냄새였다. 냄새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다가 포르쉐 카이엔을 봤다. 짙은 남색이었다. 골목 입구 쪽에 주차되어 있었다. 박순남은 그 차를 보면서 이 골목에 저 차가 맞나 잠깐 생각했다가 그냥 지나쳤다.


심의당은 낡은 건물 2층이었다. 계단을 올랐다.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박순남은 계단 소리를 들으면서 순남식당 계단이 생각났다. 그것도 삐걱거렸다. 고쳐야지 고쳐야지 하다가 이십사 년이 지났다.


대기실에 들어서니 젊은 여자가 폰을 보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었는데 아래로 청바지가 보였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들어가시면 돼요."


박순남이 진찰실 문을 열었다.


김원효가 진찰 의자에 앉아서 뭔가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음식을 먹고 있지 않았다. 손에 작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박순남이 들어서자 수첩을 덮어서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빠른 동작이었다.


"어서 오이소. 앉으이소."


박순남이 앉았다. 김원효가 맞은편에 앉아서 진료카드를 봤다.


"박순남 씨. 가슴 두근거림이랑 불면이 주증상이고. 내과에서 이상 없다고 했고."


"네."


"얼마나 됐어요?"


"두 달 됐어요."


"두 달 전에 무슨 일 있었어요?"


박순남이 잠깐 생각했다.


"딸이 서울로 취직해서 갔어요."


"잘 됐네요."


"네."


"기뻤겠네요."


"네."


김원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순남을 봤다. 잠깐 그냥 봤다. 박순남은 그 시선이 뭔가를 살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업이 뭐예요?"


"식당 해요. 수성구에서."


"혼자요?"


"네. 오래 됐어요."


"식당 이름이 뭐예요?"


"순남식당이요."


"본인 이름이네요."


"그냥 붙였어요."


김원효가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약침 한 방 먼저 맞아보이소."



3


약침은 손목 안쪽 경혈에 놓았다.


심포경(心包經)이라고 김원효가 설명했다. 심장을 감싸는 경락이라고 했다. 박나리가 약침 트레이를 들고 왔다. 오늘은 청바지 대신 흰 면 바지였다. 박순남이 봤더니 발목에 복숭아 모양 문신이 있었다.


"긴장 풀어보이소."


"네."


"밥은 먹고 왔어요?"


"아침에요."


"식당 하면서 본인은 언제 밥 먹어요?"


"틈틈이요."


"제대로요?"


박순남이 잠깐 생각했다. 제대로라는 게 어떤 기준인지 몰랐다.


"그냥 먹어요."


그 타이밍에 바늘이 들어왔다.


"아야."


"참을 만하지예?"


"네."


"손목 아래쪽이 더 아프면 심기(心氣)가 많이 흩어진 기라예."


"많이 아픈데요."


"그렇구만요."


박나리가 트레이를 가져가면서 폰을 꺼냈다. 박순남이 힐끗 보니 음식 배달 앱이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 같았다. 박나리가 빠르게 스크롤하다가 탁 누르고 화면을 껐다. 삼십 초도 안 됐다.


박순남은 그걸 보면서 저 나이에는 그렇게 쉽게 결정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4


맥을 짚고 혀를 보고 눈꺼풀을 확인하는 순서는 같았다.


그리고 김원효가 처음으로 하지 않았던 걸 했다.


바카라장 쪽으로 갔다. 낡은 바카라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박순남은 그 바카라장을 처음 봤다. 한의학 바카라들이 많았는데 가운데 칸에 좀 다른 종류의 바카라들이 있었다. 박순남이 제목을 읽으려고 했는데 김원효가 그쪽 칸이 아닌 아래쪽 칸에서 바카라을 꺼냈다.


낡은 바카라이었다. 표지가 닳아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꺼내려다가 멈췄다.


잠깐이었다. 손이 그 바카라 등에 닿았다가 멈췄다가 옆 바카라을 꺼냈다.


박순남은 그 멈춤을 봤다.


김원효가 꺼낸 바카라을 들고 돌아왔다.


"동의수세보원이라예. 이제마 선생이 쓴 바카라이거든요."


"처음 들어봐요."


"조선 말에 쓰인 바카라인데. 사람을 네 가지 체질로 나눴어요.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저는 어떤 거예요?"


김원효가 박순남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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