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폐(悲傷肺)

4부

by김경훈

비상폐(悲傷肺): 슬픔은 폐를 상하게 한다. — 《황제내경》



1


동성로에 레코드 가게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옷가게들 사이에 끼어 있는 낡은 건물 1층. 간판은 오래된 글씨체로 명음사(鳴音社) 라고 쓰여 있었다. 붓글씨는 아니고 그냥 고딕체였는데 글자가 오래되어서 붓글씨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주인 이름은 최기태였다. 예순두 살이었다.


가게를 연 건 서른한 살 때였다. 그러니까 삼십일 년이 됐다. 그 삼십일 년 동안 동성로는 많이 바뀌었다. 가게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건물들이 올라갔다가 허물어졌다. 사람들이 왔다가 갔다. 최기태는 그 자리에 있었다. 명음사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문제가 시작된 건 오 년 전이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커지면서 음반 시장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걸 오 년 동안 봤다. 명음사도 흔들렸다. 최기태는 버텼다. 버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레코드를 찾는 사람들이 아직 있었다. 적었지만 있었다. 그 사람들이 오면 최기태는 레코드를 꺼내서 같이 들었다. 그게 장사인지 취미인지 구분이 안 됐지만 최기태는 그 구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침이 시작된 건 작년 가을이었다.


처음에는 환절기라고 생각했다. 약국에서 감기약을 샀다. 나아지지 않았다. 내과에 갔다. 폐 사진을 찍었다. 이상 없다고 했다. 기관지가 예민해진 것 같다고 했다. 약을 줬다. 먹었다. 기침은 계속됐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는데도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숨도 자꾸 짧아졌다. 레코드를 꺼내 들다가 숨이 차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무거워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가벼운 것도 들다가 숨이 찼다. 계단을 오르면 더했다.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가게 단골손님 이진수였다.


"사장님, 약령시에 한의원이 하나 있는데요. 저 거기서 꽤 봤습니다. 한번 가보시죠."


최기태는 한의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엔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많아졌다.



2


심의당을 찾아가는 길에 최기태는 약령시 골목 입구에서 잠깐 멈췄다.


한약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골목 입구에 차가 막혀 있었다. 포르쉐 카이엔이었다. 짙은 남색. 골목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걸린 것 같았다.


골목이 좁았다. 원래 차가 들어올 수 있는 너비가 아니었다. 포르쉐 카이엔 정도 크기면 간당간당했다. 실제로 간당간당하게 들어갔다가 중간에 막혔다. 뒤로 빠지려면 핸들을 꺾어야 했는데 그러면 골목 입구 한약재 상점 간판이 문제였다.


차 주변에 사람이 세 명 서 있었다. 한약재 상점 주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 두 명이 서서 보고 있었다. 구경하는 표정이었다.


창문이 내려갔다. 운전석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조금만 비켜주면 안 됩니까."


경상도 사투리였다.


상점 주인이 대꾸했다.


"비킬 데가 없잖아요. 애초에 여기 차가 들어오면 안 되는 거 아입니까."


"카이엔이 이거보다 좁은 데도 들어가거든요."


"여기는 안 들어가지요."


"오늘은 좀 됩니더."


"안 됩니다."


창문이 다시 올라갔다. 잠시 후 차가 천천히 후진하기 시작했다. 핸들을 꺾으면서 상점 간판 모서리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최기태가 보기에 오 센티미터 정도 여유였다.


카이엔이 골목 밖으로 나왔다. 멈췄다. 잠깐 있다가 창문이 내려졌다. 흰 가운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상점 주인을 봤다.


"골목이 좁아지긴 했네요."


"좁아진 게 아니라 원래 이렇습니다."


"작년에는 들어갔는데."


"그럼 올해 차가 커진 겁니다."


창문이 올라갔다. 차가 멀찌감치 주차하러 갔다. 상점 주인이 팔짱을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행인 두 명이 방금 본 걸 정리하는 표정으로 각자 갈 길을 갔다.


최기태는 그 자리에서 잠깐 서 있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3


계단을 오르면서 최기태는 숨이 찼다.


두 층도 안 되는 계단이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중간에 멈춰서 숨을 고쳤다. 이 정도로 숨이 차는 게 맞지 않다는 걸 최기태는 알고 있었다.


대기실에 들어서니 젊은 여자가 폰을 보고 있었다. 최기태가 들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들어가시면 돼요."


최기태가 진찰실 문을 열었다.


김원효가 창가에 기대 서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찐빵이었다.


"어서 오이소."


최기태가 들어가 앉았다. 김원효가 찐빵을 다 먹고 손을 닦으면서 맞은편에 앉았다. 최기태를 봤다. 최기태도 김원효를 봤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혹시," 최기태가 먼저 말했다. "아까 골목에서 카이엔 후진한 분이."


"예."


"그게 선생님이에요?"


"예."


"골목이 좁은 건 알고 계셨어요?"


"작년에는 됐거든요."


"작년에도 안 됐을 겁니다."


"됐는데요."


최기태가 더 이상 그 주제를 이어가지 않았다. 김원효가 진료카드를 봤다.


"기침이 일 년 됐고, 내과에서 이상 없다고 했고. 맞지예?"


"네."


"숨도 짧아요?"


"네."


"다른 데 안 가봤어요?"


"흉부외과도 가봤어요. 거기도 이상 없다고 하더라고요."


김원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최기태를 봤다.


"직업이 뭐예요?"


"레코드 가게 합니다. 동성로에."


"오래 했어요?"


"삼십일 년 됐습니다."


김원효이 눈썹이 잠깐 올라갔다.


"삼십일 년이요."


"네."


"요즘도 되는 장사예요?"


최기태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4


약침은 등 쪽 경혈에 놓았다.


폐 경혈이 등에 있다고 김원효가 설명했다. 최기태가 상의를 올리고 엎드렸다. 진찰 침대가 낡았다. 가죽이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최기태는 그 갈라진 가죽을 보면서 이 침대가 얼마나 됐을까 생각했다.


바늘이 들어왔다.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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