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의 철학

태양이 어디로 가는지보다 어디서 오는지가 더 궁금한 사람들에 대하여

by김경훈

보보가 운전하다가 갑자기 말했다.


"자기야, 우리 왜 동쪽으로 가고 있지?"


나는 조수석에서 잠깐 멈췄다.


"팔공산 가려고."


"그니까, 왜 팔공산은 동쪽에 있지."


나는 이 질문을 잠시 처리했다. 철학 박사 과정생이 드라이브 중에 지형에 의문을 품는 것은 이 결혼 생활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매번 처음처럼 황당하다.


"산이 어디에 있을지는 산이 결정하는 거야."


"근데 재밌지 않아? 대구 사람들이 뭔가 근원적인 게 필요할 때 가는 곳이 동쪽이잖아.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다 동쪽이야."


"그게 우연이야?"


"모르겠어. 근데 오늘 읽은 게 있어."


보보가 운전하면서 읽었다는 게 조금 걱정됐지만, 보보는 신호 대기 중에 읽었을 거다. 아마도.


탱고는 내 발 아래 공간에서 자고 있었다. 팔공산까지는 집에서 한 시간 남짓. 탱고는 장거리 이동 중 수면을 선택하는 현명한 개다.



보보가 읽은 건 이런 내용이었다.


인류의 위대한 모험은 대부분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루어졌다. 율리시즈, 콜럼버스, 아틸라. 그들은 태양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했다. 서쪽으로 가는 것은 미래를 향하는 것.


그러나 태양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한 사람들도 있었다. 마르코 폴로, 나폴레옹, 빌보 배긴스. 그들은 동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가는 것은 근원을 향하는 것.


"빌보 배긴스가 나폴레옹이랑 같은 카테고리야?" 내가 물었다.


"원문이 그래."


"빌보한테는 좀 억울하겠다."


"나폴레옹한테도 억울하지 않을까. 빌보랑 묶이는 게."


탱고가 발 아래에서 한번 뒤척였다. 대화의 방향이 예상보다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자는 중에도 감지하는 것 같았다.



팔공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구불구불하다.


나는 이 길의 구불구불함을 안다. 보보가 핸들을 꺾을 때마다 몸이 기울고, 탱고가 발 아래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고, 창문 밖 공기가 달라진다. 도시 공기와 산 공기는 다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냄새가 가벼워진다. 뭔가가 희석되는 느낌. 도시의 밀도가 빠져나가는 느낌.


"자기야," 보보가 말했다. "우리는 동쪽파야 서쪽파야."


"무슨 기준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서쪽파, 근원을 찾으러 가는 사람이 동쪽파."


나는 잠깐 생각했다.


"자기는?"


"나는 동쪽파인 것 같아. 칸트 하는 것도 결국 철학의 근원을 찾으러 가는 거잖아.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어디서 시작됐는지."


"나는 둘 다인 것 같아."


"어떻게?"


"정보 접근성 연구가 미래 지향이기도 하고 — 앞으로 어떻게 더 잘 접근할 수 있을까 — 근데 동시에 근원이기도 해. 이 정보는 어디서 왔는가, 누가 만들었는가, 왜 어떤 사람은 접근하지 못하는가. 이게 다 동쪽 질문이야."


보보가 잠깐 말이 없었다.


"정보 리터러시가 동쪽 방향이네." 보보가 말했다.


"응. 정보를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정보의 출발점을 묻는 거니까."



동화사 주차장에 차를 댔다.


탱고가 발 아래 공간에서 기지개를 켰다. 이 기지개는 "도착했군요오" 의 기지개다. 차 문을 열자 공기가 달라졌다. 나무 냄새, 흙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향 냄새. 동화사 특유의 공기였다.


탱고가 내리면서 코를 들었다. 이 공기도 탱고는 기억하고 있다. 전에도 왔었으니까. 탱고의 기억은 냄새 단위로 저장되는 것 같다. 냄새 도서관이다.


"통일대불 쪽으로 가자." 보보가 말했다.


동화사 통일대불은 높이 33미터짜리 석불이다. 팔공산 능선을 등지고 서 있다. 나는 이 불상을 볼 수 없지만, 앞에 서면 안다. 공간이 다르다.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고, 소리가 다르게 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발소리가 느려진다. 거대한 무언가 앞에서 인간의 속도가 줄어드는 현상.


탱고도 여기서 속도를 줄인다. 훈련 때문인지 공간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대불 앞 돌계단에 앉을 때 옆에 누군가 있었다.


나이 든 여성의 목소리였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탱고를 발견하고 발소리가 잠깐 멈췄다.


"안내견이네요."


"네."


"여기까지 오셨어요?"


"드라이브하다가요."


그 분이 탱고 쪽으로 조금 다가왔다.


"만져봐도 되겠어요?"


"네, 괜찮아요."


탱고가 얌전히 있었다. 그 분이 탱고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저는 매달 여기 와요. 이십 년째요."


"소원이 있으세요?" 보보가 물었다.


"처음엔 소원 빌러 왔죠. 아들 취직, 남편 건강, 그런 거요. 근데 요즘은 그냥 와요."


"왜요?"


그 분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씀하셨다.


"여기 오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뭘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게 어떻게 된 건지. 그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보보가 나를 봤다. 나는 보보가 나를 보는 공기를 안다.


"동쪽이잖아." 보보가 작게 말했다. 나한테만 들리게.



그 분이 가시고 나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동화사의 가을은 소리로 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저 멀리 목탁 소리, 간간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여기서의 발소리는 다른 곳과 다르다. 다들 조금씩 천천히 걷는다.


"자기야," 보보가 말했다.


"응."


"이 분이 이십 년 동안 동쪽으로 온 거잖아."


"처음엔 서쪽 마음으로 왔는데."


"응. 미래를 바라러 왔다가, 어느 순간 근원을 찾으러 오게 된 거야."


"그게 자연스러운 순서인 것 같아. 처음엔 앞을 보다가, 나중엔 뒤를 보게 되는."


"나이가 들면 동쪽파가 되는 거야?"


"아니면 충분히 서쪽으로 가봤을 때."


탱고가 돌계단 위에서 몸을 쭉 늘렸다. 기지개가 아니라 눕는 거였다. 여기가 편하다는 뜻이다. 탱고가 편한 곳에서 눕는 건 최고의 승인이다.



나는 잠깐 진지하게 생각했다.


정보에는 방향이 있다.


새로운 정보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서쪽이라면, 그 정보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것이 동쪽이다. 나는 정보 접근성을 연구하면서 오래 서쪽을 봤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정보에 닿을 수 있는가. 더 좋은 기술, 더 나은 제도, 더 넓은 접근. 앞을 향해 달리는 방향.


그런데 동쪽 질문이 있다. 이 정보는 누가 만들었는가. 누구의 시각으로 만들어졌는가.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배제됐는가. 왜 어떤 정보는 공식 기록에 없는가.


이 질문들이 내 연구의 뿌리다.


서쪽 연구는 더 빠르게 달리게 해준다. 동쪽 연구는 왜 달리는지를 알게 해준다. 나는 오래 서쪽을 달리다가 어느 순간 동쪽을 보게 됐다. 그게 지금 내가 하는 연구의 방향이다.


팔공산이 대구 동쪽에 있는 건 우연인지 모른다. 그러나 대구 사람들이 뭔가 근원적인 게 필요할 때 동쪽으로 오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보보야," 내가 말했다.


"응."


"북쪽은 힘을 시험하러 가는 거고, 남쪽은 쉬러 가는 거래."


"아까 읽은 거?"


"응. 그러면 우리 남쪽은 언제 가."


보보가 웃었다.


"온도 카페가 남쪽 아닐까."


"집 근처인데."


"쉬러 가는 곳이 남쪽이면 집이 남쪽이지."


"그 논리면 냉장고가 남극이네."


보보가 소리 내서 웃었다.


탱고가 돌계단에 누운 채 귀를 쫑긋했다. 웃음소리에 반응하는 탱고의 귀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천천히 걸었다.


탱고가 앞장섰다. 경사를 내려갈 때 탱고는 더 신중해진다. 나보다 더 조심스럽다. 이게 좋은 안내견의 덕목이다. 안전이 속도보다 우선이라는 걸 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매점이 있었다.


탱고가 그쪽으로 당겼다. 냄새 때문이었다. 뭔가 구운 냄새.


매점 아주머니가 탱고를 보고 말씀하셨다.


"어머, 안내견이다. 예쁘다."


"저도 맡게 해줄 수 있어요?" 내가 물었다.


"예? 아, 네네! 이거 도토리묵 구운 거예요."


나는 한 조각 받았다. 도토리 냄새, 고소한 냄새, 기름 냄새. 팔공산 냄새가 스며든 것 같았다.


탱고가 내 손 쪽으로 코를 기울였다.


"탱고는 못 먹어." 내가 말했다.


탱고가 시선을 거뒀다. 포기가 빠른 개다. 이것도 훈련인지 체념인지 모르겠다.



차에 타면서 보보가 말했다.


"자기야, 오늘 좋았다."


"응."


"이 분이 이십 년 동안 여기 온 거 생각하면."


"처음엔 바라는 게 있어서, 나중엔 그냥 와서."


"우리도 나중에 그렇게 될까."


"뭘 바라러 오다가 그냥 오게 되는?"


"아니면 처음부터 그냥 온 거일 수도 있어. 오늘처럼."


나는 잠깐 생각했다.


맞다. 오늘 우리는 특별한 이유 없이 동쪽으로 왔다. 소원도 없고, 목적도 없이. 그냥 팔공산이 거기 있어서.


어쩌면 그게 가장 동쪽다운 이유일 수 있다. 근원은 목적을 갖고 찾아가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그냥 거기 있다는 걸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탱고가 발 아래에서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냄새들을 정리하는 중인 것 같다. 향 냄새, 나무 냄새, 도토리묵 냄새, 그 분의 손 냄새. 탱고의 기억 속에서 오늘 팔공산 동화사가 저장되고 있을 거다.


나도 저장하고 있었다. 냄새 말고 다른 방식으로.



[비하인드 스토리]


탱고예오. 안녕하세오.

오늘은 멀리 갔어오. 차를 오래 탔어오. 저는 차 안 발 아래 공간이 좋아오. 아늑해오. 형 발이 가끔 움직이지만 그것도 좋아오. 오늘은 형 발이 산 공기 얘기할 때 조금 들떴어오. 저도 들떴어오.

동화사는 냄새가 많은 곳이에오. 향 냄새가 제일 진해오. 그리고 오래된 돌 냄새. 이십 년 된 기도 냄새 같은 것도 있었어오. 그 분 손에서 났어오.

도토리묵은 못 먹었어오. 아쉬워오. 그러나 냄새는 맡았어오. 절반은 성공이에오.

오늘 형이랑 누나가 동쪽 서쪽 얘기를 했어오. 저는 방향에 대해 생각해봤어오. 저는 매일 형이 가는 방향으로 가오. 동쪽이든 서쪽이든 상관없어오. 형이 가는 방향이 제 방향이에오. 이게 안내견의 철학이에오. 논문에 써도 좋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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