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플의 미학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by김경훈

분명히 거기 있는데 끝까지 언어로 잡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인터뷰 현장에서 뭔가 중요한 게 오가고 있다는 느낌. 분명히 감지되는데 전사본에는 남지 않는 것. 목소리의 떨림, 잠깐의 침묵, 눈을 피하는 방향. 녹음기는 소리를 잡지만, 그 소리 사이에 있는 것은 잡지 못한다. 현상학 연구자들은 이걸 두고 '체험의 구조'라고 부른다. 경험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막상 언어로 옮기려 하면 뭔가 빠져나간다. 포착하려는 순간 달아나는 것. 현상학이 평생 붙잡으려 하는 그것이다.


트러플이 딱 그렇다.



항공우편으로 배송된 트러플 상자를 열었다는 어느 요리 연구자의 기록이 있다. 상자를 여는 순간, 강렬한 바다 냄새가 퍼졌다고 한다. 짭짤하고 변덕스럽고, 멀리 퍼지면서도 고집스러운 깊이감.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주방 전체로 새록새록 퍼지는 야릇한 냄새. 오후가 저녁이 되면서 바다 냄새가 흙 냄새와 버섯 냄새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절반밖에 표현되지 않는다고 했다. 냄새를 설명하다가 설명이 실패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어떤 면에서 그게 가장 정확한 기술이다.


트러플은 학명이 투베르(Tuber)인 곰팡이의 자실체다. 땅속에서 참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같은 나무 뿌리에 붙어 자란다. 나무와 트러플의 관계는 꽤 모범적이다. 나무는 광합성으로 저장한 탄수화물을 트러플에게 주고, 트러플은 땅속의 질소와 인을 흡수해 나무에게 돌려준다.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는 공생 관계다. 인간 슬롯에서는 이런 관계를 호혜라고 부르고, 생태계에서는 공생이라고 부른다. 어느 쪽이든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트러플과 나무는 꽤 잘 해내고 있는 편이다.


트러플이 채취되는 방식도 흥미롭다. 원래는 암퇘지를 써서 찾았다. 트러플이 성숙하면 발정한 수퇘지의 냄새와 비슷한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냄새에 암퇘지가 반응한다. 그런데 이 방법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암퇘지가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땅을 마구 파헤치다가 나무뿌리 네트워크를 망가뜨리고, 심지어 트러플을 먹어치웠다. 열심히 찾아주더니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개를 훈련시켜 쓴다. 개는 냄새로 위치를 찾은 뒤 주인에게 조용히 알려주고, 주인이 조심스럽게 파낸다.


탱고도 트러플 냄새를 맡으면 반응한다. 물론 학문적 관심에서가 아니라 식욕에서다. 탱고의 코가 트러플 헌팅에 쓰인다면 아마 암퇘지보다는 개 쪽 방식을 따를 것 같지만, 간식이 걸린 문제라면 장담할 수 없다.



현상학에서는 어떤 경험을 탐구할 때 '판단 중지(에포케, epoché)'라는 방법을 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미리 가져온 전제들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의 경험 자체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트러플 냄새 앞에서 이 방법이 특히 유효하다. '비싼 식재료' '고급 요리' '어딘가 허세스러운 것' 같은 선입견을 잠깐 괄호 안에 넣고, 냄새 자체에 집중해보는 것.


그 요리 연구자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트러플을 처음 얇게 저미자 속살이 드러나면서 냄새가 바뀌었다. 토스터기에서 올라오는 바삭한 빵가루 냄새, 살짝 구운 잣 냄새. 겉에서 맡던 것과 전혀 달랐다. 하나의 냄새가 아니라 층위가 있었다. 어디서 맡느냐에 따라, 언제 맡느냐에 따라, 온도에 따라 다른 얼굴이 나왔다. 트러플은 단일한 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각 경험이었다.


파스타 위에 트러플을 올려 먹은 첫 번째 시도는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한다. 트러플 슬라이스는 뻣뻣했고, 향도 기대만큼 환상적이지 않았다. 함께 식사한 네 사람 중 신선한 트러플을 먹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트러플 오일 정도만 접해봤는데, 사실 그 오일에는 실제 트러플이 거의 들어있지 않다. 합성향료로 '트러플화'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생긴다. 트러플 오일로 형성된 트러플에 대한 기대가, 실제 트러플 경험을 방해했다. 가짜 트러플 경험이 진짜 트러플 경험의 해석 틀이 된 것이다. 현상학에서 이런 현상을 다룰 때 '지향성(intentionality)'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를 향하고 있고, 그 지향 방식이 경험의 내용을 미리 구성한다. 트러플 오일이 심어놓은 기대 구조 안으로 진짜 트러플이 들어왔을 때, 경험은 왜곡됐다. 정보 리터러시 관점에서 보면 더 직접적이다. 우리는 어떤 정보를 접할 때 이미 가진 틀로 그것을 읽는다. 그 틀이 어디서 왔는지를 먼저 점검하지 않으면, 정보를 읽는 게 아니라 기대를 확인하는 게 된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달랐다. 이번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파스타 위에 트러플을 바로 저며 올렸다. 뜨거운 열이 트러플 향을 건드리자, 시시각각 변하고 유동적인, 파스타 면 속에 겹겹이 숨은 향이 피어올랐다. 이 경험을 연구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미분음 연구와 같았다." 미분음은 반음보다 더 작은 간격의 음이다. 서양 음악의 표준 음계로는 표기하기 어렵고, 귀를 세밀하게 열어야만 들린다. 트러플 향이 그랬다. 하나의 냄새로 규정되지 않고, 열어두어야만 들리는 것이었다.


현상학에서 메를로-퐁티는 신체가 단순한 감각 수용기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주체라고 했다. 우리는 냄새를 맡는 게 아니라 냄새를 통해 세계와 만난다. 트러플의 향이 시간에 따라, 온도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르게 경험된다는 것은, 트러플이 변하는 게 아니라 트러플과 만나는 신체와 상황이 함께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경험은 대상에만 있지 않다. 경험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 안에 있다.


이 대목에서 현장 인터뷰가 떠오른다. 같은 연구자가 같은 인터뷰이를 만나도, 첫 번째 만남과 세 번째 만남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다르다. 인터뷰이가 달라진 게 아니다. 둘 사이에 쌓인 것이 달라졌고, 그게 경험의 질을 바꾼다. 좋은 현장 연구자는 이 변화를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변화 자체를 데이터로 읽는다.



흥미로운 실패 사례도 있다. 남은 트러플을 올리브 오일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결과는 명백한 실패였다. 향의 톱 노트가 모조리 사라졌다. 땅과 하늘 사이의 모든 것을 품고 있던 묵직한 향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 다음 시도는 달랐다. 올리브 오일을 너무 뜨겁지 않은 온도로 천천히 데우고, 트러플 슬라이스를 띄워 뚜껑을 덮어두었다. 이번엔 지난밤 식탁 주변을 감싸던 뉘앙스들이 오일 안에 고스란히 농축됐다. 입체성은 줄었지만, 파노라마처럼 넓은 범위의 향이 담겼다. 완전히 포착하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많이 담아낸 방식이었다.


이게 현상학적 기술이 가진 딜레마와 같다. 경험을 언어로 옮기는 순간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언어는 전자레인지처럼 너무 강하게 열을 가하면 향을 날려버린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최대한 낮은 온도로 천천히, 최대한 많은 뉘앙스를 담으려 애쓰는 것. 현상학적 연구 기술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완전한 포착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능한 한 가까이 가려는 시도.



트러플은 수확하고 나면 빠르게 수분이 사라진다. 냄새도, 맛도, 금전적 가치도 함께 시든다. 이 사실이 트러플을 더 비싸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선한 트러플의 경험은 그 순간에만 가능하다. 재현이 안 된다. 나중에 오일로 담아두면 유령처럼 일렁이는 향이 남지만, 그 순간의 살아있는 경험은 돌아오지 않는다.


좋은 현장 연구도 그렇다. 그 순간의 인터뷰, 그 공간의 분위기, 말해지지 않은 것들. 녹음파일과 전사본과 현장 노트로 최대한 담아두지만, 그 순간의 살아있는 경험은 재현되지 않는다. 현상학 연구자들이 반복적으로 현장에 돌아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은 이미 첫 번째와 같지 않다. 그 간극 안에서 의미가 생긴다.


원문 기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남은 트러플을 모두 오일에 담고, "그 오일 위로 트러플의 아름다운 유령이 일렁이고 있었다."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포착하려는 순간 형태가 바뀌는 것들이 있다. 현상학은 그 유령을 쫓는 학문이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가까이 따라가는 것. 연구자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트러플이, 의외로 꽤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탱고는 여전히 냄새가 남아있는 오일병 근처를 서성인다. 트러플의 유령이 아직 일렁이고 있다는 뜻이다. 탱고의 코가 나보다 훨씬 정확한 현상학자일 수 있다. 언어 없이, 전제 없이, 그냥 그 냄새를 온몸으로 향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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