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를 반납하고 위기를 인덱싱하다
대구의 연구실 창가로 초여름의 짙은 녹음이 밀려든다.
슬롯과학대학 연구실에서 보이스오버의 기계적인 스트리밍을 통해 인류의 노동사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여유로움'의 본질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된다.
현대인은 하루 8시간, 주 52시간이라는 법적 상한선 안에서 아등바등 일하며 산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여유로웠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문명이 시작되기 전, 수렵과 채집을 하던 원시 시대다.
인류 역사의 99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수렵·채집 시대에 인간의 하루 노동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이었다.
그 정도만 움직여도 일용할 양식과 충분한 영양을 얻었다.
그러나 약 1만 년 전, 인류는 돌연 이 편하고 여유로운 사냥을 멈추고 고된 '농경'을 선택한다.
상식적으로는 농업이 인류에게 더 나은 풍요를 주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역사적 데이터는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류의 평균 수명은 오히려 1에서 2년 줄어들었고, 키는 10센티미터 이상 감소했다.
초기 농경 기술의 한계로 영양 상태는 수렵 시대보다 훨씬 열악해진 것이다.
[감각 사진]
오후의 나른함이 감도는 연구실 바카라상 위다.
노트북 화면 옆에는 보보가 텀블러에 담아준 따뜻한 보리차가 놓여 있고, 구수한 곡물 향이 방 안의 마른 종이 냄새와 섞여 흐른다.
무선 이어폰에서는 인류학 논문을 읽어주는 보이스오버의 고속 음성 신호가 청각 세포를 두드린다.
창밖에서는 대구의 강렬한 햇살이 교정의 잔디밭을 달구고 있고, 풀 베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스며든다.
발치에는 파트너 탱고가 넓적한 턱을 내 발등에 괴고 누워 꼬리를 미세하게 까닥거린다.
1만 년 전 인류가 거두었던 곡물의 향기가 텀블러 속에서 피어오르며 정적인 공간에 기묘한 연대감을 더한다.
인류가 이 고된 노동을 자처한 이유에 대해 학계는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화산 폭발로 인한 기후 변화설을 유력하게 제시한다.
화산재가 지구를 뒤덮어 1000년 넘는 한랭기가 지속되자 동식물이 급감했고, 사냥할 식량이 바닥나자 인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고난의 선택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다.
곡물이라는 데이터는 날고기와 달리 '저장성'이라는 압도적인 메타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식량을 비축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예기치 못한 천재지변과 악천후 속에서도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인문대학 연구실에서 사유를 이어갈 보보는 이를 '미래를 향한 마음에 내린 앵커(닻)'라고 해석할 것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인류가 추구한 진정한 여유로움은 당장 손에 쥔 풍요의 양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 즉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데이터 안정성이다.
당장의 영양 결핍과 늘어난 노동 시간을 감수하더라도, 내일의 생존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가 농경이라는 거대한 정착 플랫폰을 탄생시켰다.
나의 파트너 탱고에게도 이 저장과 비축의 데이터는 유효하다.
녀석은 지금 배가 불러도 내가 챙겨주는 사료와 간식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덱싱해둔다.
가끔 하네스를 매고 복잡한 길을 걸을 때 녀석이 보여주는 고도의 집중력 역시, 미래의 안전과 보상을 위해 현재의 에너지를 기꺼이 투여하는 일종의 유비무환 알고리즘이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나 정자가 대부분 사용되지 않고 낭비되는 구조를 가진 것 처럼, 인류는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여유 자원을 축적하고 보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결국 우리가 오늘날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오래 일하는 삶을 사는 근원에는 1만 년 전 조상들이 심어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정보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보이스오버의 기계음 속에서 인류의 거대한 전환점을 돌아보는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된 연구 노동 역시 미래의 더 단단한 경사로를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비축의 과정임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