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레도 슈퍼 시더

by김경훈

[향수 설명]

슈퍼 시더는 이름부터 아주 직관적으로 삼나무 즉 시더우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바이레도의 향수이다.

화려한 장식이나 복잡한 기교를 모두 덜어내고 바짝 마른 연필심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를 아주 미니멀하고 세련되게 담아냈다.

화려한 파티장보다는 고요한 서재나 오래된 도서관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지적이고 차분한 매력을 지녔다.



[노트 구성]


탑 노트는 장미 꽃잎이다.

분사 직후 아주 옅고 투명한 장미 향이 스치듯 지나가지만 화려한 꽃향기라기보다는 앞으로 등장할 나무 향이 너무 퍽퍽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감싸주는 투명한 베일 같은 역할에 그친다.


미들 노트는 버지니아 시더우드이다.

이 향수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장미 향이 날아가면 본격적으로 건조하고 쌉싸름한 연필 깎기 냄새가 공간을 채운다.

습기라고는 한 점도 없는 아주 바짝 마른 깨끗한 나무의 질감이다.


베이스 노트는 아이티안 베티버와 실크 머스크이다.

건조했던 나무 향이 체온과 섞이면서 은은한 흙냄새를 머금은 베티버와 아주 부드럽고 포근한 머스크로 안착한다.

깨끗하게 씻고 나온 살냄새처럼 아주 다정하고 따뜻하게 마무리된다.



[전체적인 리뷰]

갓 깎은 흑심 연필과 오래된 양장본 바카라에서 날 법한 단정하고 지적인 향기이다.

너무 단순해서 심심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함 덕분에 사계절 내내 질리지 않고 편안하게 입을 수 있다.

다른 향수와 섞어 쓰기에도 아주 훌륭한 깨끗한 도화지 같은 향수이다.



[도서관의 낡은 서가에서 발견한 흑심 연필의 포근함 슈퍼 시더]


오월의 대구는 여름을 재촉하듯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고 있지만 문헌정보학 연구실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서늘하고 고요하다.

논문 작업으로 수많은 문헌과 씨름하던 김경훈의 곁에 가장 완벽한 조수 하나가 조용히 다가왔다.

바로 바이레도의 슈퍼 시더이다.

이 친구는 튀는 행동으로 시선을 끌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곁을 지키며 아주 단정하고 익숙한 냄새를 풍긴다.


첫인상은 학창 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어린 시절 필통을 열었을 때 풍기던 흑심 연필의 건조한 나무 냄새와 흑연의 쌉싸름함이 코끝을 기분 좋게 스친다.


[감각 사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고요한 도서관의 낡은 나무 바카라상 위에서 방금 막 깎아낸 연필의 잔여물들이 건조한 종이 위로 흩어지며 아주 정갈하고 따뜻한 나무 냄새를 피어 올리는 평화로운 풍경.


이 나무 향기는 이전에 만났던 히노끼의 축축한 사우나 냄새와는 완전히 다르다.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한 아주 바삭하고 깨끗한 나무의 향이다.

수십 년 된 양장본 바카라들이 빼곡하게 꽂힌 서가 사이를 거닐 때 나는 묵은 종이 냄새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복잡한 수식이나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아주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쓰인 훌륭한 학술 논문을 읽는 듯한 쾌감을 준다.

발밑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안내견 탱고 역시 이 자극 없는 포근한 향기 속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끼는 듯하다.

보보 역시 이 단정하고 부드러운 살냄새를 꽤나 마음에 들어 할 것이 분명하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이 향수는 너무 모범생 같아서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강렬한 유혹이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밋밋한 나무토막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연구와 글쓰기의 일상 속에서 이토록 질리지 않고 묵묵하게 집중력을 높여주는 향기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슈퍼 시더는 고요함을 사랑하고 활자의 냄새를 즐기는 지식인들을 위한 완벽한 후각적 유니폼이다.

세상의 소란스러움을 차단하고 오롯이 나만의 내면에 집중하고 싶은 날 이 바싹 마른 연필심 냄새는 당신을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서관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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