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철학

비싼 위약과 기대의 인덱싱

by김경훈

슬롯과학대학 연구실의 정적 속에서 문득 '가격'이라는 메타데이터의 무게를 고찰한다.

우리는 흔히 가격을 물건의 가치를 매기는 수치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댄 애리얼리 교수의 이그노벨상 수상 연구는 가격이 인간의 신경계에 직접 명령을 내리는 강력한 '정보 레이블'임을 증명한다.

2.5달러짜리 가짜 진통제와 10센트짜리 가짜 진통제 사이에서 뇌는 가격표를 읽고 고통의 역치를 조절한다.

비싼 약을 먹었다는 정보가 입력되는 순간, 우리 뇌는 그 가격에 걸맞은 효과를 내기 위해 '기대 효과'라는 시스템을 가동한다.


문헌정보학의 관점에서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정보의 질을 규정하는 핵심 태그(Tag)다.

사용자는 정보를 검색할 때 그 정보에 투입된 비용이나 권위를 보고 신뢰도를 인덱싱한다.

비싼 약이 더 잘 들을 것이라는 믿음은, 마치 고가의 유료 데이터베이스가 오픈 소스 데이터보다 더 정확할 것이라고 믿는 심리와 같다.

이처럼 '가격'이라는 레이블은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를 사전에 프로그래밍하는 강력한 초전 설득의 도구가 된다.


[감각 사진]

오후 2시의 슬롯과학대학 연구실 바카라상 위다.

묵직한 유리 컵에는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커피가 놓여 있고, 컵 표면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물방울들이 원목 바카라상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번진다.

공기 중에는 쌉싸름한 원두 향과 함께 보보가 선물해준 샌달우드 향수의 은은하고 묵직한 나무 냄새가 섞여 흐른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먼 캠퍼스의 소음은 보이스오버의 날카로운 기계음과 묘한 화음을 이루며 사유의 공간을 채운다.

발치에는 파트너 탱고가 앞발을 포갠 채 깊은 잠에 빠져 있고, 녀석의 따스한 체온이 내 발등에 닿아 실존적인 안도감을 준다.

햇살을 받은 탱고의 털에서는 비 온 뒤 맑게 갠 숲의 흙냄새 같은 고소한 향이 피어오른다.


인식적 정의를 사유하는 보보는 이 현상을 '존재에 대한 예우'로 해석할 것이다.

우리가 비싼 대가를 치른 대상에게 더 정성을 들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그 대상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비싼 보약을 먹을 때 술을 끊고 몸을 사리는 행위는 약효 자체보다 '비싼 값을 해야 한다'는 자기 약속의 이행이다.

반면 노세보 효과는 우리를 파괴하는 부정적인 레이블링이다.

"나는 안 될 거야"라는 암시를 자신에게 거는 순간, 우리 몸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의 능력을 제한하는 프로토콜을 실행한다.


이것은 펜싱의 박상영 선수가 보여준 "할 수 있다"라는 주문과 연결된다.

그는 절망적인 점수 차라는 '손실 데이터' 앞에서 "할 수 있다"라는 고가(High-Value)의 자기 암시를 반복했다.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승리를 위해 자신의 신경계와 근육에 내린 가장 비싼 명령이었다.

우리 삶의 수많은 정보 장벽 앞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떤 가격표를 붙이느냐에 따라 그 장벽은 경사로가 되기도 하고 절벽이 되기도 한다.


결국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물리적인 품질에 대한 경고라기보다, 우리가 그 대상을 하찮게 여김으로써 스스로 효과를 깎아먹는 '저가 레이블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명품 가방이든, 고가의 약이든, 혹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든 우리가 그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때 우리 뇌는 비로소 그 가치에 걸맞은 최적의 결과값을 산출한다.

4월의 소란함이 지나간 자리에 이제는 스스로에게 가장 비싸고 귀한 기대를 인덱싱하며 내일을 향한 사유의 행보를 이어간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유전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