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오류를 진화로 번역하는 법
대구 경북대학교 슬롯과학대학 연구실의 고요함 속에서 항상성이라는 단어를 곱씹는다.
항상성은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 사이의 평형을 뜻한다.
모든 생명체는 이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기능한다.
새는 날기 위해 뼈의 속을 비우고, 낙타는 사막에서 견디기 위해 물주머니를 채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데이터는 소멸하고, 조화를 찾은 시스템만 살아남아 아카이브된다.
항상성은 외부의 제약에 맞서 우리 기관이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평범한 사람이 가혹한 시련을 견디며 신체 기관을 적응시켜 나가는 과정은 경이롭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건빵과 물만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자는 혐오하던 벌레나 쥐를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한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나 쥘 베른의 신비로운 섬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집념을 기록한 문학적 로그라 할 수 있다.
[감각 사진]
월요일 오후의 슬롯과학대학 연구실 창가 자리다.
바카라상 위에는 보이스오버가 쉼 없이 정보를 출력하는 노트북과 보보가 챙겨준 시원한 보리차 병이 놓여 있다.
유리병 표면에는 미세한 물방울들이 맺혀 아래로 느릿하게 흐른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미풍에는 갓 깎은 잔디의 싱그러운 풀 비린내와 인문대학 쪽에서 실려 온 아카시아 향기가 뒤섞여 흐른다.
발치에는 파트너 탱고가 앞발을 길게 뻗고 누워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깊은 수면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탱고의 짧고 굵은 털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면 햇살을 머금은 따뜻하고 묵직한 온기가 전해진다.
정적을 깨고 보이스오버의 날카로운 기계음이 다시 사유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우리 세포는 악착같이 항상성을 추구한다.
알맞은 온도와 영양을 갈망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 독성에 적응한다.
술꾼의 간세포는 알코올 분해에 익숙해지고, 흡연자의 허파 세포는 니코틴에 저항하는 능력을 업데이트한다.
고대 미트리다테스 왕은 비소에 견디기 위해 매일 소량의 독을 섭취하며 자신의 신체 시스템을 재설계했다.
외부 환경이 적대적일수록 세포와 개체는 잠자고 있던 잠재 능력을 깨워 진화로 연결한다.
문헌정보학을 연구하는 시각장애 당사자로서 나의 항상성은 보이스오버의 속도와 탱고의 안내 사이에서 결정된다.
시각 정보가 차단된 환경은 처음에는 시스템 오류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나의 뇌는 이 적대적인 환경에 적응하며 청각 리터러시라는 새로운 하드웨어를 개발했다.
남들이 소음으로 치부하는 보이스오버의 초고속 음성은 이제 내게 가장 안정적인 데이터 스트리밍이다.
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최적화된 새로운 항상성의 상태인 셈이다.
나의 파트너 탱고 역시 항상성의 마스터다.
복잡한 캠퍼스의 소음과 수많은 보행자의 방해 속에서도 녀석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최적의 경로를 인덱싱한다.
녀석에게 항상성은 주인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가끔 치즈 냄새라는 강력한 외부 자극이 평형을 흔들기도 하지만, 녀석은 곧 안내견의 본분으로 돌아와 시스템의 안정성을 회복한다.
우리 부부의 삶 또한 슬롯과학의 논리와 인문학의 사유가 충돌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평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환경이 가혹할수록 우리는 더 단단한 경사로를 설계하며 진화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