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드 실버 마운틴 워터

알프스의 만년설과 차가운 먹물의 조화

by김경훈

[향수 설명]

실버 마운틴 워터는 크리드의 오랜 베스트셀러로,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과 얼어붙은 폭포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향수이다.

이름 그대로 은빛 산맥을 흐르는 차가운 물의 향기를 표현했다.

한여름의 끈적함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서늘하고 날카로운 공기의 질감을 가졌으며, 깨끗한 녹차 향과 쌉싸름한 잉크 냄새가 어우러져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자아낸다.



[노트 구성]


탑 노트는 베르가못과 만다린이다.

분사하는 순간, 차가운 만년설이 녹아내린 얼음물로 세수를 한 듯 아주 시원하고 쨍한 감귤류의 향기가 터져 나온다.


미들 노트는 그린 티와 블랙커런트이다.

차가운 물기가 살짝 걷히면 본격적으로 서늘하게 식은 녹차 향이 올라온다.

여기에 블랙커런트 열매의 쌉싸름하고 떫은 향이 더해지는데, 이 조합이 묘하게도 서예 붓을 적시는 차가운 먹물이나 고급 만년필의 잉크 냄새처럼 느껴져 지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베이스 노트는 머스크와 샌달우드, 그리고 갈바눔이다.

얼음처럼 찼던 향기가 체온과 섞이면서 은은한 머스크와 부드러운 나무 향으로 남는다.

차가운 눈밭을 걷다가 아늑한 산장 안으로 들어온 듯, 포근하고 깨끗한 비누 향으로 마무리된다.



[전체적인 리뷰]

잘 다려진 하얀색 셔츠를 입고 차가운 금속 테 안경을 쓴 예민한 완벽주의자의 향기이다.

맑고 상쾌하지만 결코 가볍거나 유치하지 않다.

먹물이나 금속 특유의 서늘한 향기 때문에 쇠 냄새가 난다며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덥고 습한 계절에 이보다 더 지적이고 청량한 느낌을 주는 향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알프스의 만년설과 차가운 먹물의 조화, 실버 마운틴 워터의 지적인 냉기]


따뜻한 오월, 대구의 봄기운이 점점 짙어지고 랩탑의 보이스오버 목소리를 들으며 원고를 수정하는 오후이다.

라 튤립이 전해주던 봄날의 온화함에서 벗어나 머릿속을 차갑게 식혀줄 극약 처방이 필요해졌다.

오늘 서재로 초대한 손님은 크리드의 실버 마운틴 워터이다.

이 친구는 따뜻한 미소나 다정한 인사 따위는 생략한 채,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서 갓 불어온 서늘한 만년설의 입김을 사정없이 내뿜으며 등장한다.


첫인상은 말 그대로 얼음장이다.

베르가못의 날카로운 즙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강타한다.


한겨울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설산 한가운데서 꽝꽝 얼어붙은 폭포수 아래의 얼음을 깨고 떠낸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을 때 느껴지는 쨍하고 시린 감각.


이 서늘한 냉기는 단순히 온도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향기의 중심에 자리 잡은 녹차와 블랙커런트의 조합은 아주 기묘한 감각을 선사한다.

마치 벼루에 차가운 물을 붓고 먹을 조용히 갈아낼 때 피어오르는 묵직하고 서늘한 묵향이나, 최고급 만년필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잉크 냄새와 같다.

논문을 작성하던 김경훈의 곁에 다가온 이 서늘한 향기는 나른했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곁에서 꼬리를 흔들던 안내견 탱고마저 이 차가운 산바람 냄새에 코를 킁킁대며 잠시 자세를 고쳐 앉는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이 향수는 곁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아주 깐깐하고 예민한 학자와 같다.

땀 냄새나 인간적인 흐트러짐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듯한 결벽증적인 차가움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베이스 노트의 머스크가 체온과 섞여 부드럽게 피어오를 때쯤이면, 이 차가운 학자도 꽤나 포근한 비누 냄새를 풍기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실버 마운틴 워터는 복잡한 감정과 스트레스를 차갑고 이성적으로 식혀주는 얼음물 같은 존재이다.

보보와의 달콤한 신혼이나 봄날의 나른함을 잠시 걷어내고 완벽하게 정돈된 지적인 고독을 즐기고 싶은 날, 서재의 공기를 가장 세련되게 바꿔줄 훌륭한 파트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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