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 철학

자아를 지키는 기억의 ‘화이트칠’

by김경훈

경북대학교 슬롯과학대학 연구실의 창밖은 초여름의 활기로 눈부시다.

문헌정보학 박사 논문의 데이터 숲을 헤매다 보면, 인간의 기억이라는 '아카이브'가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새삼 놀라게 된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있는 그대로 저장한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의 뇌는 가장 창의적인 '편집자'다.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의 마이클 콘웨이 교수팀이 진행한 ‘학습 기능 프로그램’ 실험은 이 편집 실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주간의 공부법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실제 성적 향상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 덕분에 내 능력이 향상되었다"라고 굳게 믿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강의를 듣기 전인 '과거의 나'를 실제보다 더 무능했다고 과소평가(다운그레이드)하여, 현재와의 간극을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다.



데이터 리터러시와 자아의 방어 기제


하버드대 대니얼 삭터 교수가 말한 ‘기억의 7가지 죄’ 중 하나인 이 현상은 일종의 ‘셀프 이미지 세탁’이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의 데이터를 조작한다.

"젊을 땐 정말 바보 같았지"라거나 "왕년에 사고 좀 쳤지"라며 과거를 부정적으로 각색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나은 존재다"라는 안정감을 준다.


문헌정보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최신 데이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구버전 백업 파일에 의도적으로 오류를 심는 행위와 같다.

보이스오버로 논문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지식의 습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심리적 인덱싱'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똑똑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보보의 철학적 주석과 탱고의 정직한 현재


인문대학 연구실에서 사유에 잠겨 있을 보보는 이를 '존재의 서사적 정당화'라고 부른다.

그녀는 인간이 기억을 편집하는 이유가 단순히 거짓말쟁이라서가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고도의 철학적 생존술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내가 부족했을수록, 지금의 내가 견뎌온 시간은 더 빛나는 법이니까"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내 연구실의 차가운 통계 데이터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장애 당사자로서 나의 과거 역시 이 편집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이스오버의 기계음에 익숙해지기 전, 혹은 탱고를 만나기 전의 나를 나는 가끔 필요 이상으로 서툴렀던 존재로 인덱싱하곤 한다.

그래야만 지금 탱고의 하네스를 잡고 당당히 걷는 나의 모습이 더 극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를 비극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더 멋진 '성공 서사'를 만들기 위한 유쾌한 편집 과정이다.


나의 파트너 탱고는 이 복잡한 편집 기술이 전혀 없다.

녀석에게 과거는 수정할 수 없는 로그 기록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일 뿐이다.

녀석은 어제 치즈를 못 먹었다고 해서 "어제의 나는 불쌍했어"라고 과거를 조작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내 손에 들린 치즈의 실존적 가치에만 집중한다.

가끔은 녀석의 이 정직한 '리얼타임 데이터'가 부럽기도 하다.



결론: 행복한 흑자를 위한 기억의 분식회계


결국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인생이라는 잡지를 만드는 편집장들이다.

과거의 나를 조금 깎아내려 현재의 나를 돋보이게 하는 '기억의 분식회계'는 때로 자존감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3주간의 강의가 성적을 올려주지는 못했어도 학생들에게 '만족감'이라는 정서적 흑자를 안겨주었듯이, 우리의 기억 왜곡 역시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 저녁 보보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당신 기억 속의 3년 전 나는 얼마나 '바보'였어?"

만약 그녀가 나를 아주 많이 부족했던 사람으로 기억해준다면, 나는 내가 그만큼 많이 성장했다는 증거로 삼고 기쁘게 웃을 것이다.

4월의 소란함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를 예쁘게 다듬으며 내일을 향한 경사로를 설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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