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와이비시 방송국 지하 사 층의 비밀 서버실 복도는 무덤처럼 고요하고 차가웠다. 서늘한 항온항습기의 냉풍이 목덜미를 때릴 때마다, 짙은 회색 전술복을 입은 요원 지훈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공기 중에는 먼지 하나 없는 건조한 오존 냄새와, 서버 랙들이 내뿜는 미세한 금속성 비린내가 맴돌고 있었다. 지훈은 복도 모퉁이의 짙은 그림자 속에 몸을 구겨 넣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려 눈가를 따갑게 찔렀다. 방탄조끼의 묵직한 무게가 가슴을 짓눌렀지만, 지금 그를 가장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물리적인 압박감이 아니라 귓가에 꽂힌 인이어에서 들려오는 오 팀장의 냉혹한 목소리였다.
요원 케이, 전방 코너에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 두 명이다. 거리는 십오 미터. 십 초 뒤면 네가 숨은 곳을 지나간다. 당장 투명화 능력 활성화해.
오 팀장의 건조한 명령에 지훈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훈의 초능력은 이 기괴하고 하향 평준화된 첩보 세계에서도 가장 악명 높고 수치스러운 능력이었다. 그는 자유자재로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완벽한 은폐 능력을 가졌지만, 그 발동 조건은 인간의 존엄성을 밑바닥까지 박살 내는 끔찍한 것이었다. 투명화 상태가 되려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찌질하고 부끄러운 흑역사를 타인의 고막이 터질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육성으로 외쳐야만 했다. 수치심의 농도가 짙을수록, 그리고 목소리의 데시벨이 높을수록 투명해지는 시간과 완벽도가 비례했다. 은밀함이 생명인 비밀 요원이, 숨기 위해 자신의 가장 더러운 비밀을 동네방네 폭로해야 하는 미치고 팔짝 뛸 모순이었다.
팀장님, 제발요. 지훈이 이어피스를 쥐고 훌쩍거리며 속삭였다. 저번 주 잠입 작전 때 초등학교 육 학년 소풍 가서 바지에 똥 싼 얘기까지 다 털었습니다. 어제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술 취해서 선배한테 키스한 얘기까지 썼다고요. 이제 진짜 남은 수치심의 밑천이 없습니다. 차라리 환풍구로 우회하면 안 됩니까.
입 다물어 인마. 오 팀장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환풍구는 적외선 센서로 도배되어 있다. 국가 안보가 달린 일이야. 중학교 이학년 때 네 싸이월드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쓴 글, 당장 복창해.
지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안 됩니다. 팀장님, 그것만은 제 슬롯적 인격에 대한 사형 선고입니다. 제발 그것만은 묻어 주십시오. 차라리 저놈들 총에 맞고 장렬하게 순직 처리해 주십시오. 국립 현충원에 묻히는 게 낫습니다.
지훈이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지만, 복도 끝에서 육중한 군화 발소리가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었다. 철컥. 경비원들이 소총의 장전 손잡이를 당기는 서늘한 금속음이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롭게 들려왔다. 손전등의 뜨거운 불빛이 복도의 어둠을 가르며 지훈의 발끝까지 다가왔다. 발각까지 남은 시간은 단 삼 초였다. 오 팀장이 마지막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요원 케이, 조국은 네 수치심을 잊지 않을 거다. 당장 질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훈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가올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폐부 깊숙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 뒤, 복도가 떠나가라 미친 듯이 악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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