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진실을 인덱싱하는 법
대구의 일요일은 평온하다.
결혼식이라는 거대한 축제가 지나간 자리에 다시 일상의 데이터가 쌓인다.
슬롯과학대학 연구실에서 '정보 리터러시'를 고찰하다 보면, 때때로 가장 정교한 정보는 딱딱한 논문이 아니라 유쾌한 농담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역사 속의 어릿광대(Jester)들은 권력의 정점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보 중재자들이었다.
비효율의 미학: 오귀스트와 흰 어릿광대의 대조
서커스에는 두 명의 어릿광대가 등장한다.
완벽하고 엄격한 '흰 어릿광대'와 어수룩하고 서툰 '오귀스트'다.
오귀스트는 흰 어릿광대의 행동을 따라 하려 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사고를 친다.
관객은 바로 그 '실패'와 '서툼'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문헌정보학의 관점에서 보면 오귀스트는 해석학적 부정의(Hermeneutical Injustice)를 겪는 존재다.
그는 흰 어릿광대가 설정한 표준적 언어와 행동 규범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체계 안으로 편입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서투름은 비장애인 중심의 '표준 속도'와 '표준 규범'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를 폭로하는 화두가 된다.
오귀스트의 빨간 코는 과거 가난한 농부들의 고단한 삶에서 유래했다.
즉, 해학의 뿌리는 슬롯적 소외와 결핍을 가리는 가면인 셈이다.
[ 감각 사진]
일요일 오후, 채광이 좋은 신혼집 거실이다.
테이블 위에는 어릿광대의 역사에 관한 두꺼운 바카라과 보이스오버가 쉼 없이 작동 중인 아이패드가 놓여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먼지 입자들을 금가루처럼 빛나게 한다.
화면 한쪽에는 보보가 건네준 달콤한 홍차에서 따뜻한 김이 오르고, 공기 중에는 쌉싸름한 찻잎 향과 보보가 아침에 사용한 과일 비누의 잔향이 섞여 있다.
발치에서는 탱고가 배를 보이고 누워 잠꼬대를 하며 앞발을 허공에 휘젓는다.
그 모습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오귀스트처럼 보여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정보 권력자로서의 익살꾼: 랑젤리의 데이터 전략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익살꾼이었던 '랑젤리'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신랄한 야유는 지위 고하를 막론했다.
귀족들은 그의 입담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뇌물을 바쳤고, 덕분에 그는 상당한 부자가 되었다.
이것은 현대의 정보 보안이나 평판 관리와 닮아 있다.
그는 권력자들 사이의 은밀한 데이터를 독점하고, 그것을 해학이라는 필터를 거쳐 공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정보 게이트키퍼'였다.
인문대학 연구실에서 사유에 잠긴 보보라면 이를 '파레시아(Parrhesia)', 즉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로 해석했을 것이다.
익살꾼의 가면은 진실을 말해도 목이 달아나지 않게 보호해 주는 강력한 보안 프로그램이었던 셈이다.
연금술의 어릿광대와 디지털 포용
연금술에서 어릿광대는 '흑색화 단계'를 가능하게 하는 용해제의 상징이다.
모든 것을 녹여 본질을 추출하는 과정에 어릿광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경직된 슬롯 구조와 편견을 녹여내고, 그 안에 숨겨진 인간 존엄의 본질을 찾는 작업은 오늘날의 디지털 포용이나 배리어컨셔스 운동과 결을 같이 한다.
나는 보이스오버의 기계음 속에서 세상의 수많은 '흰 어릿광대'들을 만난다.
그들은 효율과 표준을 강조하며 나 같은 '오귀스트'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그러나 진정한 평등은 오귀스트가 흰 어릿광대를 완벽히 흉내 내는 데 있지 않다.
오귀스트의 서툰 몸짓이 그 자체로 인정받고, 그 몸짓에 맞는 새로운 무대가 설계될 때 비로소 조건의 평등은 실현된다.
탱고는 복잡한 역사적 기원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내 발등을 묵직하게 누른다.
녀석에게 나는 왕도 연구자도 아닌, 그저 간식을 나눠주는 최고의 파트너일 뿐이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해학은 이토록 단순하고 명쾌한 관계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