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홍수에서 익사하지 않는 법
대구 연구실의 공기는 여전히 논문 데이터의 압박으로 눅눅하다.
나에게 ‘정보 리터러시’란 결국 수많은 데이터 중 쓰레기를 골라내고 진짜를 찾는 능력이다.
그런데 오늘 읽은 컬럼비아대학교 쉬나 아이엔가 교수의 ‘잼 판매 실험’은 내 연구 주제에 아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통찰을 던져준다.
가짓수가 많을수록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게으르고 멍청하다는 사실 말이다.
아이엔가 교수는 잼 6종류와 24종류를 놓고 판매 실험을 했다.
24종류의 잼을 늘어놓은 부스에는 60%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역시 인간은 본능적으로 화려하고 많은 것에 끌리는 ‘데이터 수집광’들이다.
하지만 정작 지갑을 열어 잼을 구매한 사람은 3%에 불과했다.
반면 잼을 딱 6종류만 갖다 놓은 부스에서는 구경꾼은 40%로 적었지만, 그중 30%가 잼을 사 갔다.
가짓수를 줄였더니 판매량이 무려 7배나 솟구친 것이다.
이것은 ‘선택의 역설’이자 정보 과부하의 비극이다.
인간이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다.
24가지 잼은 뇌에 ‘시스템 오류’를 일으키고, 결국 결정 장애라는 블루스크린을 띄우게 만든다.
나 역시 식당에 갔을 때 메뉴판이 백과사전 수준이면 일단 식은땀부터 난다.
2배속 스크린리더로 메뉴를 듣고 있다 보면, 마지막 메뉴를 들을 때쯤 첫 번째 메뉴는 이미 내 기억 아카이브에서 삭제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메뉴는 딱 하나요"라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노포 사장님의 단순함을 사랑한다.
그것이야말로 고객의 메타인지를 배려하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나의 유기적 GPS, 탱고에게도 이 실험은 유효하다.
만약 내가 탱고 앞에 30가지 종류의 간식을 늘어놓는다면, 녀석은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내 발등을 짓누르고 낮잠을 선택할 것이다.
녀석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의 간식 30선’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입안을 즐겁게 해줄 ‘치즈 한 개’라는 명확한 데이터다.
나 역시 클래식 음반을 수천 장 수집했지만, 정작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진열장 앞에서 서성거리다 결국 침묵을 선택하는 ‘풍요 속 빈곤’을 겪곤 한다.
정보가 너무 많으면 정보는 더 이상 정보가 아니라 소음이 된다.
아이엔가 교수는 대학 리포트 주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주제가 30가지일 때보다 6가지일 때 학생들의 제출률이 높았고 성적도 더 좋았다.
선택지가 좁아지면 심리적 부하가 줄어들고, 뇌는 더 창의적인 에너지를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논문을 쓰는 나에게 필요한 것도 수만 편의 인용 문헌이 아니라, 내 주장을 관통하는 단 몇 줄의 핵심 데이터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잼 부스에서 우리는 매일 24가지 이상의 선택지를 강요받는다.
하지만 현명한 삶의 리터러시는 그 가짓수를 6가지, 아니 그 이하로 줄여나가는 숙청의 과정에 있다.
나는 오늘도 내 연구용 하드드라이브에서 불필요한 ‘미끼 잼’들을 삭제하고, 탱고의 하네스를 잡은 채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경로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나의 선택은 더 투박하고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보의 늪에서 익사하지 않고, 달콤한 인생의 잼 한 병을 무사히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