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 서울투어 후 광주, 대전, 대구 찍고
퇴사하고 점점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고정된 스케줄이 다시 사라지니, 다시 24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집 - 카페, 또는 공유 오피스로 반쯤 사무실처럼 (여기에 운동이나 병원이 추가되는 정도) 동선이 반복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있었지만 혼자 하는 데이터 정리였고 보름이 되도록 약속도 거의 없다 보니, 다시 쁘띠 독립 때 느꼈던 외로움이 올라왔다.
나 생각보다 혼자서 잘 못 사나?
외로워서 프리랜서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하지만 온라인 게임인이 체질이라니.
그러던 차 마치 우주가 내 외로움에 응답이라도 해주듯
“그동안 외로웠지? 자, 여기 열흘 치 꽉 찬 스케줄 ^^”
하며 던져주었다.
일 년에 한 번 한국 돌아오는 친구의 서울 일정과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벤트가 겹쳐, 어찌하다 보니 모든 일정들이 한 주에 몰려버린 것이다.
일요일 - 일산 EBS부터 시작해 문래동 투어
화요일 - 그토록 고대하던 국립중앙박물관과 망원동 나들이
수요일 - 어쩌다 보니 몇 년 만의 대학로
금요일 - 다른 친구와 티타임 후 콘서트
토요일 - 삼복더위에 북촌에서 낙산공원까지 걸어서 서울투어까지
그야말로 한 주가 꽉 찬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토요일 서울투어가 끝이 아니었다.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광주 - 대전 - 대구까지 이어졌고,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거진 두세 달 치 일정을 열흘 만에 몰아서 소화하는 기분이었다.
특히나 서울 첫날은 친구와 함께 드디어 펭수 집을 보러 간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아야 재미난 법.
일산까지 갔는데 일요일이라 굿즈샵은 닫혀있어서 구매가 불가능했고, 애석하게도 실내에 에어컨이 들지 않아 반쯤 사우나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EBS 사옥 밖에 있는 거대한 펭수 포스터와 함께 인증샷도 찍고, 실내에서는 유일하게 구매 가능했던 인생네컷으로 안팎으로 야무지게 인증샷을 남겼다.
아니 EBS 님들, 돈 안 벌 거야?!
국립중앙박물관, 핫하다고 소문난 ‘국중박’ 일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만나 두어 시간 간단히 보고 여유롭게 점심을 즐기려 했거늘, 선사 시대부터 이미 너무 많은 유물에 두 역사 덕후는 시작부터 흥분 상태였다. 구석기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이후 독립까지 장장 네 시간을 서서 한반도의 오천 년 역사를 함께 하느라 점심도 거른 채 관람 후, 둘 다 진이 빠진 채 감탄하면서도 헛웃음을 치며 퇴장했다.
이 외에도 변수는 무수히 많았는데 마지막 날, 고온다습한 여름 날씨와 더위를 정말 싫어하는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낙산공원의 노을을 보고 싶다는 친구 간절한 부탁에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많은 길을 걸어 다녀서 낙산공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손 선풍기 전원이 나가버렸지만, 땀에 절어서 마침내 마주한 해 질 녘 노을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거의 스무 해 전이 된 그 옛날의 이런저런 추억을 함께 나누면서.
참 계획대로 된 건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재미나던, 잊지 못할 한 주였다.
그렇게 몸에서 썩은 내가 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헤어진 후 바로 다음날, 전라도 광주로 향했다.
짐을 어떻게 싼 건지도 기억도 안 나지만 최애의 군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였기에, 어떻게든 가야만 했던 이벤트였다.
눈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정말 (안 그래도 지쳤는데) 진이 빠질 만큼 신나게 놀고 소리 지르고 같이 간직할 추억을 만든 후, 너무도 벅찬 행복함으로 공연장을 나섰다. 감사히도 다른 친구와 대전까지 새벽 드라이브를 하며 둘 다 쉰 목소리로 자체 뒤풀이를 했더랬다.
이 날 밤은 여러모로 잊지 못할 거야.
그러고 다음날 다시 대구로 향하기까지.
이미 서울에서 많은 걸 했던 친구와의 마지막이라 크게 아쉬울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매번 친구가 미국으로 다시 갈 때 바래다주던 입장에서, 동대구역에서 친구에게 배웅을 받는 입장이 되다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나더랬다.
1년 뒤면 다시 보겠지 하는 기대감을 안고, 그렇게 뜨거웠던 열흘 정도를 마무리한 채 서울로 돌아왔다.
그다음 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찌나 피곤하던지…ㅎ
저렇게 이벤트가 몰아붙이면 몇 백장 찍은 사진도 정리하면서 돌아보고 기록도 하고 ‘이런 게 좋았지’ 하고 정리할 시간도 필요한데, 두세 달 치 약속을 몰아서 여행처럼 다녀온 탓에 다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아, 이런 것도 쉬는 거였구나'
분명 다소 에너지가 버거운 밀도의 약속과 시간이긴 했지만, 혼자 있는 자유만큼 함께 하는 행복도 필요했나 보다. 농담처럼 ‘외향 반 내향 반 반반 무많이’라곤 했지만, 혼자 충전하고 오롯이 쉴 수 있는 만큼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소중한 이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해프닝도 겪고 추억도 쌓고, 사소한 서운함도 쌓고, 그만큼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쌓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쉬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저마다 각자 맞는 방법이 있을 뿐.
비록 어렵게 충전한 에너지를 열흘 만에 소진해 버렸지만, 덕분에 십여 년 만에 알찬 여름방학을 만끽할 수 있었다.
새 학기인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 덧붙이는 말
이번 한 주는 연재를 쉬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