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뿌리를 건너보는 제17회 대전효문화뿌리축제 체험기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우리가 별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아주 먼 별에서 시작된 것이 수십억 년의 진화와 셀 수 없는 세대를 건너 지금 한 사람의 몸이 되었다. 그 시간은 조부모에서 부모에게로 그리고 나를 통과해 자식에게로 흘러간다. 모두 같은 별에서 왔지만 사람들은 그 흐름의 갈래마다 이름을 붙였고 그것을 뿌리라 불렀다. 대전에는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돌에 새겨 세워둔 공원이 있다. 가을의 문턱에서 이곳은 뿌리의 의미를 되묻는 효문화뿌리축제로 북적인다.
뿌리공원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 통과하는 조형물이 조성이 되어 있다 짙은 밤색 판에 흰 구름무늬를 새기고 팔각 창살을 끼운 한옥 대문으로 문짝 하나는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그 위로 '대전효문화뿌리축제'라는 글자가 가을 하늘에 걸려 있었다.
2008년에 시작된 효문화 축제는 올해로 열일곱 번째를 맞았다.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 동안 뿌리공원 일원에서 열렸고 슬로건은 '함께 내딛는 새로운 뿌리'였다. 대전시가 꼽은 2026년 대표축제 아홉 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입구 옆 배치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어본다. 메인게이트에서 시작한 길은 중구 뿌리공방과 푸드트럭, 프린지무대를 지나 다리를 건넌다. 다리 너머에는 메인무대와 효 체험마당 그리고 한국족보박물관이 모여 있다. 이곳을 지나가면 성씨가 숲을 이룬 공원이 나온다.
뿌리공원은 대전 중구 침산동에 있다. 1997년 11월 1일 효를 주제로 문을 연 테마공원이다. 공원의 얼굴은 산바카라로를 따라 늘어선 성씨 조형물이다. 개장 당시 72개였던 조형물은 지금 244개에 이른다. 저마다 높이 3m 폭 2m 안에서 문중의 유래와 이름난 조상의 이야기를 새긴 채 후손을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조형물 앞에서 절을 올리는 어르신도 있다고 한다. 돌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건 돌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 돌에 새겨진 이름들이 결국 내 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흘러왔다는 사실 앞에서 숙이는 것이리라.
공원 안에는 2010년 4월 문을 연 한국족보박물관이 있다. 족보만을 다루는 박물관으로는 국내 처음이었다. 효문화마을과 한국효문화진흥원도 같은 품 안에 자리 잡게 된다.
입장료는 없고 문은 연중 열려 있다. 축제가 없는 평범한 날에도 누군가는 이곳에 와서 자기 성씨의 돌을 찾는다. 낯선 이름들 사이에서 익숙한 한 글자를 발견하는 순간 사람은 잠깐이나마 혼자가 아니란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손끝에서 시작되는 축제는 어떤 체험을 할 수가 있을까. 천막이 늘어선 길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색이었다. 슬라임 체험 부스 테이블 위에 투명한 통들이 줄지어 있었다. 파스텔 구슬과 반짝이는 비즈 그리고 색종이를 동그랗게 오려낸 듯한 토핑들. 통마다 노란 플라스틱 숟가락이 꽂혀 있었고 바구니 안에는 보라와 빨강과 파랑 색소 병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한 아이가 파란 슬라임을 손끝으로 집어 높이 끌어올렸다. 덩어리였던 것이 얇은 막이 되어 늘어났다. 빛이 비치자 거의 투명해졌고 그 안에 박힌 알갱이들이 별처럼 떠 있었다. 아이는 끊어질 듯 말 듯한 그 순간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옆에서는 또 다른 손이 테이블 위의 슬라임을 꾹꾹 누르는 중이었다. 늘이는 손과 누르는 손. 무언가를 처음 만져보는 손은 언제나 진지한 것이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08번 부스는 '주문제작 굿즈, 내 맘대로 키캡 소품샵'이었다. 칸칸이 나뉜 투명 상자마다 색색의 파츠가 사탕처럼 담겨 있었다. 분홍과 노랑 캐릭터 키링이 나무 쟁반 위에 나란히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팔찌를 여러 겹 감은 작은 손이 그 위를 한참 맴돌았다. 고르는 손은 늘 망설인다. 무엇을 집을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지가 더 어려운 법이니까.
12번 부스 앞에는 투명한 구슬 풍선이 둥실 떠 있었다. 천막에 붙은 안내판에는 체험 이름과 가격이 적혀 있었다. LED 구슬 풍선 만들기 1만 원, 나만의 구슬 풍선 8천 원, 3D펜 키링 8천 원, 다육이 화분 1만 원. 안쪽 테이블에서는 3D펜이 돌아가고 있었다. 뜨거운 필라멘트를 다루는 일이라 손에는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펜 끝에서 검은 선이 천천히 흘러나와 리본 단 고양이 얼굴의 윤곽을 따라갔다. 분홍 리본은 이미 오돌토돌하게 쌓여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선을 한 겹씩 쌓아 올리는 일에 가까웠다. 시간이 형태가 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세로 배너 하나가 서 있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찾아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훗날 임종 과정에 들어섰을 때 연명의료를 받을지 말지를 미리 밝혀두는 것이기도 하다.
페인팅부스에서는 볼에 반짝이를 붙인 작가가 아이 앞에 몸을 낮추고 앉아 있었다. 한 손으로는 아이의 정수리를 가만히 받치고 다른 손으로 눈가에 붓을 댔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의 아이는 숨을 참듯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건 작은 일이 아니다. 어릴 적 부모가 우리 머리를 쓰다듬었듯 언젠가 우리는 늙은 부모의 머리를 감겨드리게 된다. 머리 위에 얹히는 손은 그렇게 세대를 건너며 방향만 바꿔 이어진다.
호두과자 부스 테이블에는 '꿈돌이·꿈순이 호두과자' 상자가 쌓여 있었다. 그 옆으로 꿈돌이 얼굴을 새긴 키캡과 머리핀과 볼펜과 동전지갑이 가지런했다. 1993년 대전엑스포의 마스코트였던 꿈돌이는 이제 그때 아이였던 사람들의 아이들 손에 들려 있다. 한 도시의 캐릭터가 두 세대를 건너가는 모습이 이 축제의 이름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부스 곳곳에는 문화누리 표시도 붙어 있었다.
35번 부스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중구일자리지원센터가 내건 현수막에는 '잡(JOB) 생각이 나면! 즐기GO! 참여하 GO! 정보얻GO!'라고 적혀 있었다. 안쪽에서는 홀랜드 간이검사로 나와 맞는 직업을 찾아보는 상담이 이어졌다. 입구의 초록 보드에는 하트와 별 모양 메모지가 빼곡했다. 어른 곁에 선 어린아이들이 그 앞을 기웃거렸다.
한자리에 두 개의 질문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떠나고 싶은가. 아이들이 장래를 그려보는 자리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하는 서류가 기다리고 있었다.
효를 이야기하는 축제가 이 둘을 나란히 둔 건 우연이었을까. 부모의 마지막 뜻을 미리 묻고 들어 두는 일 역시 오늘의 효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살아 계실 때 잘해드리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지 묻는 법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 메인무대가 있는 잔디광장으로 들어섰다. 무대 앞 잔디밭에 붉은 치마와 흰 저고리 차림의 여인들이 모여 있었다. 머리에는 흰 수건을 쓰고 손에는 커다란 소쿠리를 들었다. 몇몇은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그 곁으로 용을 그린 농기가 바람에 펄럭였고 파란 조끼를 입은 풍물패가 북을 멘 채 서 있었다.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어르신 한 분이 행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농기 끝에 매단 검은 천이 길게 늘어져 흔들렸다. 그 사이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많았다. 서로의 매무새를 고쳐주고 소쿠리를 다시 고쳐 잡으며 웃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아마 저 소쿠리에 진짜 곡식을 이고 들길을 걸었을 것이다. 고된 노동의 도구가 이제는 공연의 소품이 되었다. 그래도 머리 위의 무게를 견디는 자세만큼은 몸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무대는 아직 비어 있었다. 트러스 그림자가 잔디 위에 사다리처럼 길게 누웠고 회색 의자들은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무대 위에도 아래에도 사람이 없는 시간이었다. 축제 둘째 날 오전 이 무대에서는 전국 100여 개 문중이 성씨의 유래와 조상의 이야기를 퍼포먼스로 풀어내는 문중입장 퍼레이드가 열렸다. 수많은 이름이 지나간 자리는 다음 이름을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다리를 건너가 보았다. 난간 위로 청사초롱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위는 붉고 아래는 푸른 등. 다리 양옆 화분에서는 핑크뮬리가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양산을 쓴 사람, 유모차를 미는 사람, 아이 손을 잡은 사람이 저마다의 속도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다리 끝에서 강을 내려다보았다. 유등천은 산 그림자를 고스란히 품은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물가를 따라 계단식 관람석이 붉고 푸른 줄로 이어졌고 그 위로 하얀 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물에 비친 천막은 실제보다 조금 더 길게 느껴졌다.
뿌리라는 말은 늘 땅속을 떠올리게 한다. 보이지 않는 곳이나 오래전에 내려진 것도 있고 이미 정해진 것도 있다. 그런데 이날 본 뿌리는 조금 달랐다. 슬라임을 늘이던 손과 아이의 정수리를 받치던 손 그리고 소쿠리를 고쳐 잡던 손 같은 뿌리는 땅속보다 그렇게 서로를 붙드는 손끝에서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244개의 돌 가운데 어딘가에 내 성씨를 새긴 돌도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에 이 공원을 찾으면 그 돌부터 찾아가게 될까. 아니면 오늘처럼 다리 위에서 다른 가족들이 건너가는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게 될까. 뿌리는 그렇게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어지며 여전히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물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