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교호정원과 공원

삽교호 정원에 물을 막은 자리에서 흐르는 가을

삽교호 관광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공원과 퇴역 군함, 해산물 식당들이 어우러진 곳이다. 최근에는 이 풍경에 정원이 더해졌다. 놀이공원과 먹거리 거리의 활기 곁에, 잠시 걸음을 늦추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정원을 걷다 보니 가을은 여름과 겨울 사이에 놓인 좁고 긴 문턱처럼 느껴졌다. 문턱은 안과 밖을 가르는 작은 자리다.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으면서도 겨울을 향해 조금씩 기울어가는 가을 역시 두 계절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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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호도 경계에서 만들어진 풍경이다. 지금 호수가 자리한 곳은 본래 바닷물이 드나들던 하구였다. 1979년 당진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 인주면 문방리 사이에 길이 3,360m의 방조제가 놓이면서 물길은 호수가 되었다. 물을 막은 선택 하나가 주변의 풍경과 생활을 바꾸었다. 짠물과 민물이 갈라선 경계 곁으로 공원이 생기고, 상점들이 들어서고, 관람차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삽교호는 당진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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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에 들어서면 해산물뿐 아니라 지역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매장도 만난다. 건물 정면에는 ‘당진시 농식품 생산자 직판장’이라는 초록색 글씨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신평농협 로컬푸드 행복장터’ 간판이 붙어 있다. 바다로 이름난 여행지에서 땅의 산물을 파는 곳이다. 주변의 들판과 삽교호의 역할을 떠올리면 자연스러운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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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매장에서는 생산자의 이름이 붙은 물건을 만날 수 있다. 유통 단계를 줄였다는 설명도 중요하지만, 이름 한 줄이 물건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게 한다. 누가 길렀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구매할 때의 믿음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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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건물 3층에는 ‘100 BUNJI 콩카페’가 있다. 노란 현수막에는 신선한 원두와 수제청, 가족과 함께 즐기는 족욕을 안내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농산물을 사러 들어온 건물 위층에서 차를 마시고 발을 쉬게 할 수 있다니, 여행의 동선이 생각보다 다채롭다. 이날은 구름이 낮게 깔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햇빛이 풍경을 과장하지 않는 날에는 장소가 제 얼굴 그대로 다가온다. 그런 날의 여행에서는 걸음도 조금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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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기둥 위에는 갈색 깃털이 얼룩덜룩한 갈매기 한 마리도 앉아 있었다. 흰 몸과 회색 날개를 가진 갈매기들과는 모습이 달라 어린 새처럼 보였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쉽게 날아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길에 익숙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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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공원 앞마당으로 향했다. 퇴역 군함을 들여와 조성한 군함 테마공원은 삽교호의 익숙한 풍경 가운데 하나다. 다만 방문 당시 매표소 앞에는 군함전시관이 시설 정비 중이어서 당분간 관람이 어렵고, 해양테마체험관만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바다를 떠나온 배에게도 쉬어야 할 때가 있는 모양이다.


바로 옆 바다공원에는 나무로 만든 해적선 놀이터가 있다. 돛대 꼭대기마다 갈매기가 앉아 있었다. 멀리 실제 군함의 마스트가 보이고, 그 앞에서는 아이들이 놀이용 배에 올라 미끄럼틀을 탔다. 배의 쓰임은 서로 다르지만, 한 공간에 놓인 풍경은 이곳이 가족 여행지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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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공원에서 대관람차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새로 조성된 정원이 나타난다. 삽교호 관광지 안에서 활용도가 낮던 경관녹지 약 4,000㎡를 생활권 실외정원으로 바꾼 공간이다. 블루애로우와 홍가시나무, 나무수국, 남천 등 여러 수목과 꿩의비름, 사초, 눈향 등을 포함해 4,100여 주가 심겼다고 한다. 앉아 쉴 수 있는 벽과 야간 경관 조명도 함께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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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그늘막 여러 장이 돛처럼 하늘에 걸려 있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천이 살짝 부풀었다. 바다 가까운 곳에서 만난 그늘막이 배의 돛을 닮았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 아래로 난 길은 맞은편 횟집 거리까지 이어진다. 정원에서 쉬다가 식당으로 향할 수 있고,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정원을 걸을 수도 있다.


정원 너머에는 수확을 앞둔 논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바다를 바라보던 여행은 어느새 들판을 향하고 있었다. 몇 그루의 단풍나무는 먼저 붉어지기 시작했고, 화단 앞에는 작은 식물 이름표가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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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는 가는 꽃대 끝에 달린 분홍 꽃들이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나비가 잠시 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화단 바닥에는 검은 자갈이 깔려 있고, 구멍이 많은 돌들이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갓 조성된 정원에는 아직 여백이 보인다. 나무들이 자라고 식물들이 계절을 거듭하면 지금과는 다른 풍경이 될 것이다. 정원은 문을 여는 날 완성되기보다, 몇 해의 생장과 시행착오를 지나며 제 모습을 찾아간다.


낮은 언덕처럼 솟은 잔디 둔덕 사이로 분홍빛 길이 휘어졌다. 그 뒤에는 붉고 푸른 철골의 대관람차가 서 있었다. 놀이공원의 익숙한 풍경과 새로 심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돌아가는 즐거움 곁에 천천히 자라는 풍경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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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지나 다시 먹거리 거리로 향했다. 삽교호에는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과 함께, 시장처럼 거리에서 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붉은 고무 대야마다 기포기 호스가 꽂혀 있었고, 수면 위로 흰 거품이 올라왔다. 한 대야에는 작은 게들이 서로 다리를 얽은 채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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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대야에는 조개와 고둥이 종류별로 나뉘어 담겨 있었다. 길쭉한 맛조개가 한 대야를 채우고, 뾰족한 고둥이 다른 대야를 채웠다. 둥근 조개들은 크기와 무늬가 조금씩 달라 이름을 모두 가려내기는 어려웠다. 분홍 바가지에는 껍데기를 벗긴 조갯살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저만큼 담기기까지 누군가는 작은 조개를 하나씩 손질했을 것이다.


갯벌에서 나는 조개를 보고 있으면 물때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간이 떠오른다. 바닷물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가 채취하고, 가져온 것을 나누고 손질하는 시간이다. 장바구니에 담기는 조개 한 봉지에도 그렇게 여러 사람의 일이 이어져 있다. 가까운 조개구이 거리에서는 그 수고가 여행자의 한 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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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는 방조제를 다시 건넜다. 한쪽은 호수이고 다른 한쪽은 바다였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을 막은 경계 주변에 새로운 풍경이 쌓였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호수 곁에 관광지가 들어서고, 퇴역 군함이 자리를 잡고 관람차가 서고 이제는 정원까지 자리하게 됐다.


오늘 본 풍경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군함은 바다에서의 역할을 마친 뒤 이곳으로 왔고, 정원의 나무들은 옮겨 심어진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시장의 해산물은 누군가의 식탁으로 향하고, 관람차는 사람들을 태운 채 같은 자리를 돌아간다. 저마다 움직이는 방식과 속도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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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비교적 오래 꽃을 볼 수 있어 정원에 많이 심는 가우라의 꽃은 계절이 지나면 지고, 정원은 내년에도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방조제는 물길을 갈랐지만, 그 주변의 시간까지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여름과 겨울 사이의 문턱에서 만난 삽교호 정원. 물을 막아 만든 호수 곁에서도 가을은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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