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휴게소에서 읽는 섬이야기

지금은 쉼표가 된 휴게소 행담도의 옛날시간 1868년 그리고 1935년

전국에 자리한 수많은 휴게소를 방문해 보았는데 특히 바다가 보이는 곳의 휴게소를 가면 마치 그곳으로 여행한 느낌마저 받을 수가 있다. 서해안에는 바다와 면해 있는 휴게소중 행담도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서해대교에 오르면 다리 한가운데에서 길이 한 갈래 빠져나가면 만날 수가 있다. 그 끝에 행담도휴게소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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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고 커피를 사며 화장실에 들르고 다시 차에 오르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섬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아산만 한가운데 놓인 0.45㎢의 작은 섬. 행정구역으로는 충남 당진시 신평면에 속하는 이 땅은 지금 전국에서 가장 붐비는 휴게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처음부터 휴게소가 아니었다. 사람이 살던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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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담(行淡)이라는 이름에는 바다의 이야기가 있다. 간만의 차가 가장 클 때 갯벌의 물이 완전히 빠져 뭍에서 섬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는 데서 '행'이, 평소에는 물에 잠겨 있다는 데서 '담'이 왔다고 전한다. 걸어서 닿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물에 막혀 있는 땅이다. 옛사람들은 이 섬을 '가치내'라고도 불렀다. 한번 갇히면 나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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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 조사에 따르면 이곳의 조수간만 차는 9.2m에 달했다고 한다. 썰물이 되면 섬 둘레로 갯벌이 드러나 섬의 넓이가 두 배 넘게 불어났다. 굴과 바지락과 낙지가 그 갯벌에 지천이었고 삽교천 민물이 섞여드는 바다에는 물고기도 넉넉했다. 섬은 하루 두 번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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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섬이 역사의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1868년이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 일행의 배가 행담도 앞바다에 닻을 내렸고 그들은 작은 배로 갈아타 삽교천을 거슬러 올라갔다. 목적지는 덕산에 있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였다. 도굴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 사건은 조선이 문을 더 단단히 걸어 잠그는 계기가 되었다. 한 나라가 바다를 향해 빗장을 지른 이유 하나가 이 섬 앞에 정박해 있었던 셈이다. 그때 섬에는 주민이 한 명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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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뒤인 1935년이 되면 가까운 송악 부곡리에 살며 『상록수』를 쓰던 심훈이 이 섬에 배를 댔다고 한다. 그는 수필 「7월의 바다」에서 이 섬을 멀리서 보면 송아지가 누운 것만 한 외딴섬으로 그렸다. 굴 껍데기가 들러붙은 바위와 새우를 말리려 깔아 둔 멍석, 꼴뚜기와 밴댕이의 비린내. 그가 기록한 섬에는 단 한 가구가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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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 테라스로 올라가면 나무 데크 위로 테이블과 의자가 길게 늘어서 있다. 유리창 너머 실내에서도 바다가 보이지만 바람을 맞으며 앉는 쪽이 이 섬에는 더 어울린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야 이 섬이 얼마나 바다 한복판에 놓여 있는지 비로소 실감이 난다. 날이 맑으면 서해대교와 바다가 함께 물드는 일몰을 볼 수 있어 사진 찍는 이들의 발길도 잦다.


쉼표가 된 섬 오늘의 행담도는 다리 아래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에 서면 머리 위로 서해대교의 푸른 상판이 지나가고 물가로 걸어 나가면 거대한 교각이 바다에 줄지어 박혀 있다. 멀리 사장교의 주탑이 흐린 하늘에 걸려 있다. 섬은 이제 다리를 받치는 디딤돌이자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쉼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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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담도 휴게소에는 아웃렛과 식당가와 카페, 화장실로 이어지는 파란 선이 이어진다. 전기차 충전소와 수소충전소. 슈퍼차저까지 500m라는 화살표 옆에 바다전망대를 알리는 작은 사진 한 장이 붙어 있다. 사람들은 이 섬에서 연료를 채우고 허기를 달래고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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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건물은 박공지붕 아래 하얀 기둥을 세운 서양식 외관이다. 에스컬레이터 위로 아웃렛 매장이 자리하고 아래층에는 식당가와 카페와 편의점이 이어진다. 주황색 지붕을 얹은 탑 너머로 작은 풍차 하나가 서 있다. 당진시는 이 풍차 근처에 옛 섬마을 사람들의 생활 사진을 영구 전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휴게소에 들른다면 커피를 들고 풍차 쪽으로 몇 걸음 더 걸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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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풍경이 달라진다. 벽돌 깔린 광장 끝에 난간이 길게 이어지고 그 너머로 아산만이 펼쳐진다. 맞은편 해안선 위로 낮은 산 능선이 겹겹이 포개진다. 차양 아래 피크닉 테이블에 앉으면 고속도로의 소음이 사라진다.


휴게소의 아래로 내려가면 난간에는 갈매기 먹이 주는 곳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공을 던지는 사람은 없고 새들만 코트를 차지한 풍경이 묘하게 이 섬의 지금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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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이 섬에 이삼십 분쯤 머물다 떠난다. 한번 갇히면 나오지 못한다던 섬은 이제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는 섬이 되었다. 그 사이 섬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은 결국 떠났고 20여 년이 지나서야 다시 모여 향우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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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하나둘 사람이 들어와 어촌이 생겼다. 1980년대에는 24 가구 100명이 넘는 주민이 이 섬에 살았다. 아이들은 한정초등학교 행담분교에 다녔고 어른들은 배를 타고 신평면 맷돌포로 건너가 생필품을 사 왔다. 1978년 행담분교 아이들을 태우고 소풍을 가던 어선이 썰물에 걸려 갯벌 위에 멈춰 선 사진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섬의 운명을 바꾼 것은 길이었다.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7,310m의 서해대교가 이 섬을 딛고 건너가게 되면서 주민들은 하나둘 섬을 떠났다. 1990년대 말까지 남은 20여 명은 끝까지 버텼다. 현장 농성이 이어졌고 구속되는 주민까지 나왔지만 결국 모두 섬을 떠나야 했다. 2000년 서해대교가 완공되었고 2001년 1월 행담도휴게소가 문을 열게 된다. 지금 섬 전체의 주인은 한국도로공사다.


다리 아래로 밀물과 썰물은 여전히 하루 두 번 오간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날이면 지금도 어딘가에 뭍으로 이어지는 갯벌 길이 드러날지 모른다. 커피 한 잔이 식는 동안 난간에 기대어 그 물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이 섬에 처음 걸어 들어왔던 사람의 발자국은 어디쯤 잠겨 있을까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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