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어진 폐교에 피어난 가을꽃의 이야기와 가을감성
지구상에는 셀 수도 없는 수많은 꽃들이 있는데 그중에 꽃의 이름은 우주라는 이름이 붙여진 꽃이 있다.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은 꽃이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kosmos에서 왔다. 질서와 조화를 뜻하는 말이다. 멕시코 고원에서 이 꽃을 본 스페인 선교사들이 가지런히 펼쳐진 꽃잎을 보고 이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같은 단어가 다른 길을 걸어 우주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이 단어를 혼돈의 반대편에 놓인 질서 곧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는 우주의 짜임새로 풀어낸다. 그리고 바카라을 이 문장으로 열어간다. "코스모스는 지금 존재하는 것이며 과거에 존재했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꽃 앞에 서서 그 문장을 떠올리니 조금 다르게 읽혔다. 우주를 설명하는 첫 문장이 꽃 한 송이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홍성으로 들어서는 길 돌담 아래에서 그해 첫 코스모스를 만났다. 연분홍 꽃잎 여덟 장이 가는 줄기 끝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고개를 돌리는 꽃이다. 저렇게 여린 것이 어떻게 한 계절의 얼굴이 되었을까.
코스모스는 낮이 짧아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꽃을 피운다. 해가 긴 여름 내내 키만 키우다가 낮의 길이가 어느 선 아래로 줄어들면 그제야 꽃눈을 맺는다. 달력을 보지 않고도 가을이 왔음을 아는 셈이다. 우리가 코스모스를 보며 가을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꽃이 우리보다 먼저 계절을 읽어 냈기 때문일 것이다. 손바닥을 펼쳐 한 송이를 받쳐 보았다. 무게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충남에서 코스모스를 만나볼 수 있는 것들이 적지가 않다. 그렇지만 지금은 폐교가 된 대평초를 가보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선사해 준다. 홍남동로 161번지 대평초등학교 교문에 닿았을 때 해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벽돌 기둥 사이로 둥근 아치가 걸려 있고 낡은 글자판들이 아치를 따라 매달려 있었다. 그 아래 현수막에는 총동문회 회장 이취임식과 모두 함께하는 코스모스 작은 음악회 소식이 적혀 있었다. 교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흙 운동장이 아니었다. 분홍과 자주와 흰빛이 뒤섞인 꽃의 바다였다.
운동장이 통째로 코스모스에 덮여 있었다. 그 뒤로 2층 교사가 낮게 엎드려 있는데 한때 아이들이 달리고 넘어지고 줄을 서던 자리를 지금은 꽃이 채우고 있다. 동문들이 이곳에 모여 음악회를 연다는 것은 이 운동장이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장소라는 뜻일 것이다. 꽃밭 아래에는 수십 년 치의 발자국이 겹겹이 묻혀 있다.
해가 지자 색이 달라져간다. 한낮의 코스모스가 선명한 분홍이라면 저물녘의 코스모스는 보랏빛을 머금는다. 하늘의 푸른 기운이 꽃잎에 스며드는 시간이다. 꽃밭 너머 은행나무 한 그루만 성급하게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서 있었다. 가을은 이렇게 한 나무씩 차례로 오는 모양이다.
꽃밭 가장자리를 따라 흙길과 오래된 벽돌길이 이어진다. 큰 나무 그늘 아래로 천천히 걷다 보면 꽃밭이 어디서 끝나는지 잘 가늠되지 않는다. 먼저 와 있던 가족이 사진을 몇 장 남기고 교문 쪽으로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저녁의 운동장에는 풀벌레 소리만 남았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면이던 꽃밭도 가까이 다가가면 한 송이 한 송이가 다르다. 짙은 자홍색 꽃잎에 가는 결이 박힌 꽃이 있고 흰 바탕에 가장자리만 붉게 물든 꽃도 있다. 막 벌어지기 시작한 봉오리 곁에 벌써 꽃잎을 떨군 줄기가 서 있다. 같은 날 같은 밭에 섰지만 저마다의 시간은 조금씩 어긋나 있다.
칼 세이건은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들이 아주 오래전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꽃잎 속의 탄소도 우리 뼈의 칼슘도 언젠가 어느 별의 중심에서 빚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하면 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는 일은 우주의 아주 작은 조각을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허리를 굽혀 꽃을 보는 동안 하늘에는 첫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코스모스는 대개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절정을 맞는다. 한낮에 가면 맑은 분홍을 저물녘에 가면 보랏빛으로 가라앉는 꽃밭을 만날 수 있다. 두 번 가 볼 만한 이유다. 줄기가 가늘고 약해서 꽃밭 안으로 들어가면 쉽게 꺾이니 가장자리 길에서 보는 편이 좋다. 사진은 몸을 낮춰 꽃을 앞에 두고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담으면 이곳만의 풍경이 나온다. 학교 부지인 만큼 방문 전에 출입 가능 여부를 한 번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자.
교문 아치 아래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이 운동장을 천천히 덮어 가는데 각양각색의 코스모스만 오래도록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낮이 짧아진 것을 알고 피어난 꽃들은 이제 길어지는 밤을 견디며 하나씩 질 것이다. 우주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 한 철 피었다 지는 동안 우리는 어떤 것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