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가 기억하는 단맛

2026 당진 해나루 황토고구마축제에서 만난 다양한 이야기들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간식은 어떤 것일까. 먹거리에 대한 유행은 매년 있었다. 그렇지만 스테디셀러는 그냥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그런 맛들이다. 그중에 고구마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특히 황토흙에서 캐내는 고구마는 달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당진은 충남 서북쪽에서 바다를 끼고 앉은 지역이다. 서해에서 건너온 바람이 밭을 쓸고 지나가고 그 밭의 흙은 붉은 황토다. 축제 측은 이 흙을 다양한 미생물이 숨 쉬는 땅이라 소개하고 거기서 자란 고구마의 높은 당도와 포슬포슬한 식감을 자랑으로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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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차량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용두길 표지판이 선 밭머리에 노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황토고구마 캐기 체험장으로 가는 길이다. 현수막 너머로 붉은 흙이 이랑을 이루며 길게 누워 있었고 그 끝에 붉은 벽돌 건물의 첨탑 하나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10월 3일 개천절 아침에 이곳을 방문했다. 하늘이 열린 날을 기념하는 휴일에 사람들은 땅을 열러 이곳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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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장은 붉고 흰 줄로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가족 단위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이랑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는 호미를 쥐고 어른은 상자를 끌고 그곳에 담았다. 줄기를 걷어낸 이랑은 겉보기에 그저 흙더미다. 그런데 손으로 흙을 몇 번 헤치면 붉은 껍질이 슬쩍 얼굴을 내민다. 그 순간마다 여기저기서 짧은 탄성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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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캐기에는 요령이 있다. 줄기 밑동을 찾아 그 둘레의 흙부터 손으로 덜어낸다. 호미는 고구마 바로 위가 아니라 한 뼘쯤 옆에서 비스듬히 넣는다. 끝이 보인다고 바로 잡아당기면 부러지기 쉬우니 주변 흙을 충분히 걷어낸 뒤 들어 올린다. 상처 난 고구마는 오래 보관하기 어렵다. 장화와 면장갑은 필수이고 아이들 여벌 옷도 챙기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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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 온 고구마는 바로 씻지 않는 것이 좋다. 흙이 묻은 채로 신문지에 싸서 서늘한 곳에 두면 된다. 냉장고는 고구마에게 너무 춥다. 며칠 지나면 단맛이 한층 깊어지게 된다. 체험은 밭에서 끝나지 않는다. 쟁반 위에 갓 구운 고구마가 놓이고 장갑 낀 손이 그것을 하나씩 집어 올렸다. 껍질이 터진 자리마다 노란 속살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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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라는 작물의 매력을 살펴보면 고구마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1760년대의 일이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조엄이 대마도에서 종자를 보내온 것이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한 포기에서 여러 개가 달리는 이 뿌리는 흉년을 건너는 다리가 되었다. 배고픔을 버티게 해 주던 구황작물이 지금은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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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한가운데서 고구마 캐릭터 풍선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받침대에 반쯤 가려진 글자는 '호풍'으로 시작한다. 농촌진흥청이 육성한 국산 품종 호풍미일 가능성이 크다. 호풍미는 보급 몇 년 만에 국내 고구마 재배면적 1위에 올랐고 그 전환을 이끄는 지역으로 당진이 꼽힌다. 외래 품종이 대부분이던 고구마밭이 우리 품종으로 조용히 바뀌어 가는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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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에게 흙은 집이면서 동시에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이다. 우리가 먹는 고구마는 열매가 아니라 뿌리가 부풀어 오른 덩이뿌리다. 돌이 많고 거친 땅에서는 뿌리가 마음껏 뻗지 못해 모양이 뒤틀리고 섬유질이 질겨진다. 입자가 곱고 부드러운 황토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뿌리는 막힘없이 살을 찌우고 껍질은 매끈하게 붉어진다. 고구마가 황토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뿌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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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루는 당진시의 농특산물 공동 브랜드로 해나루쌀과 해나루 황토감자가 이미 그 이름을 쓰고 있고 고구마도 같은 이름 아래 묶였다. 고구마 축제는 2018년에 처음 열려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았다. 주최는 고대농업협동조합. 행사장인 당진종합운동장의 주소도 고대면이니 고대면이 곧 이 축제의 고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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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의 단맛은 시간이 만든다. 갓 캔 고구마보다 며칠 묵힌 고구마가 더 달다. 수확 뒤에도 고구마 속에서는 전분이 조금씩 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불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낮은 불에 오래 구우면 고구마 속 효소가 전분을 엿당으로 바꿀 시간을 충분히 얻는다. 센 불에 서둘러 익힌 고구마가 덜 단 까닭이다. 군고구마 장수가 깡통 화덕 앞에서 느긋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밤처럼 포슬포슬한 분질 고구마와 호박처럼 촉촉한 점질 고구마. 취향은 갈려도 껍질을 벗길 때 피어오르는 김 앞에서는 누구나 잠시 입맛을 다시게 된다. 고구마는 땅속에서 보낸 여름을 단맛으로 기억하는 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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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천막에서는 아이들이 비닐장갑을 끼고 하얀 찹쌀 반죽에 노란 고구마 소를 넣어 동글게 빚고 있었다. 반죽을 오므리는 작은 손끝이 서툴러서 오히려 정성스러웠다. 지난 축제에서는 고구마 떡메치기와 고구마 피자 라테 고추장 깍두기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도 열렸다. 고구마 하나로 간식과 음료와 반찬과 장까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직거래 장터에서는 농가와 협동조합이 직접 농산물을 내놓았고 지역 양조장 부스에서는 막걸리를 소개했다. 고구마를 보러 왔다가 당진의 가을 장바구니를 통째로 채워 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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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무대 현수막에는 하루의 시간표가 적혀 있었다. 오전 10시 축제 개막과 11시 개막식에 이어 오후 1시 무대행사 그리고 저녁 6시 축하공연. 그늘막 아래 객석은 일찌감치 가득 찼다. 여러 트로트가수를 응원하는 응원봉을 쥔 어르신 곁에 휴대전화를 든 청년이 앉았고 손부채에 인쇄된 가수의 얼굴이 여기저기서 흔들렸다. 고구마 축제의 객석은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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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상자 속 고구마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봄에 순을 꽂고 여름 내내 해풍을 맞고 가을 한 날 흙 밖으로 나온 것들. 한 상자에 담긴 것은 고구마 몇 킬로그램이 아니라 한 해의 절반이었다. 그 반년은 이제 우리 집 베란다 한구석에서 며칠을 더 묵으며 조금 더 달아지지 않을까. 땅이 오래 품은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래 품고 있는 것들은 지금 어떤 단맛으로 익어가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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