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백명의 혼이 담긴공간

가을 금산여행에서 만난 역사적인 의미와 칠백의총기념

인삼의 도시라는 금산은 가까운 곳이어서 명절때나 사람과 만날때가 있으면 방문해보곤 하는 곳이다. 금산을 여행하다 보면 한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일은 역사적인 의미를 찾는길에 가깝다.. 길가의 이정표에는 금산 백령성과 육백고지 전승탑이 함께 적혀 있고,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칠백의총으로 이어진다. 가까운 곳에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금산의 역사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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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친동생을 데리고 칠백의총에 도착해 먼저 기념관으로 향해 보다. 바깥의 나무와 넓은 길을 지나 실내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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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의총 기념관의 전시 공간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과 의병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전시된 복식과 자료는 바카라에서 읽던 역사를 눈앞의 크기로 느끼게 한다.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을수록 이곳에 잠시 들른 여행자라는 생각보다, 그날의 선택을 되짚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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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과 의승장 영규대사가 이끈 사람들이 금산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조헌의 의병과 영규대사의 의승군은 앞서 청주성을 되찾는 데 힘을 보탰고, 이후 금산 전투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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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들의 시신을 거두어 함께 묻은 곳이 칠백의총이다. ‘칠백’이라는 이름은 숫자로 남았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삶을 살다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선 사람들의 선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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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에서는 제26회 칠백의사 추모 예능대회의 입상작 전시도 만났다. 벽에 걸린 그림마다 칠백의사를 기억하는 장면과 색이 달랐다. 역사 전시가 당시의 사건을 설명한다면, 입상작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그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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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에게는 오래된 전투의 기억이 지금도 누군가의 붓끝과 생각 속에서 다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당시에 민족을 위해 희생을 했던 모습들이 아이들의 관점으로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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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서의 공간 여행은 그렇게 전시실에서 시작해 묘역 앞에서 잠시 멈췄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걷는 길은 같은 거리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칠백의총을 돌아 나오는 길, 금산은 풍경을 둘러보는 여행지이면서 한 시대의 선택을 오래 생각하게 하는 장소로 남았다.


기념관을 나온 뒤에는 길을 따라 묘역으로 걸어가 보았다. 가지런한 나무와 길 끝의 문, 낮게 자리한 봉분 앞에서는 걸음이 자연히 느려졌다. 기념관 안에서 알게 된 이름과 사건이 바깥의 실제 장소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칠백의총은 전투의 승패만을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다. 끝까지 싸운 이들을 후대가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희생을 어떤 마음으로 마주해야 하는지 묻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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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시간을 쌓아 두는 그릇이다. 봉분 앞의 고요는 사백여 년 전의 함성이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그 함성을 오래 눌러 담아 둔 자리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그림이 그 시간을 다시 꺼내어 색을 입히고 있었듯 우리도 이곳을 걸으며 조금씩 그 의미를 나누어 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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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의 길 위에는 오늘도 서로 다른 시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었다. 다음에 이 길을 다시 걷게 된다면 나는 어떤 질문을 품고 오게 될까. 그 답은 아직 묘역 앞 가을바람 속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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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펜던트도 어깨 아래도 여백으로 남아 있다. 다 채우지 못한 자리를 그대로 두고 연필을 내려놓았다. 기억이라는 것도 어쩌면 완성되지 않은 채 다음 사람의 손을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기념관에 걸린 아이들의 그림이 그랬듯 그날 내 연필도 그 긴 시간 위에 선 하나를 보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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