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피랑과 잔치국수

통영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골목탐방과 먹거리

통영을 여행하다 보면 바다만큼이나 오래 머물게 되는 곳이 동피랑과 서피랑과 같은 골목이다. 항구를 조금만 벗어나도 낮은 집과 오래된 담장,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관광지를 찾아가는 길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집 앞을 지나고, 오래된 동네의 시간을 따라가는 느낌에 가깝다고 할까. 그렇게 가을에 찾아간 곳이 서피랑의 오래된 골목이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색을 입힌 조형물과 작은 벽화가 여행자를 맞이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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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게 정비된 신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좁은 길이 이리저리 이어지고, 길이 끝나는 듯하다가 다시 계단 하나가 나타나는 것이 통영골목여행의 특징이다. 서피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99 계단’이다. 통영 출신의 소설가 박경리와 그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문학의 흔적이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계단 옆 벽에는 ‘통영 서피랑 99 계단’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고, 박경리의 얼굴과 이름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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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이라는 도시와 박경리를 함께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바다와 섬, 시장과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래전부터 문학의 배경이 되어왔다. 실제로 이곳을 걸어보면 소설 속 공간을 찾아간다기보다, 소설을 만들어냈을 법한 생활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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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 맞춰서 걸어서 올라가다보면 삶의 리듬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99개의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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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다 보면 오래된 주택의 담과 대문이 가까이 보인다. 화려한 벽화가 있는 곳도 있지만, 조금만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을 만난다. 햇빛이 골목 안쪽까지 길게 들어오고, 담벼락 아래에는 작은 화분이 놓여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서피랑의 골목은 관광지이면서도 여전히 생활의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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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오래 살아온 주민들의 얼굴과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누군가는 가족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지나간 시절을 떠올린다. 골목이라는 공간이 특별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건물은 오래되지만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골목을 내려오다 보면 ‘서피랑 국수’라는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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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골목을 한참 걸었으니 거창한 음식보다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잘 어울린다. 가게 안에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가 놓여 있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등장하는 ‘로마의 휴일’ 포스터를 비롯해 옛 영화의 흔적이 작은 공간을 채우고 있어서 그런지 영화광에게는 조금 더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마치 골목 밖에서 보았던 오래된 시간이 가게 안까지 이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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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잔치국수가 나온다. 멸치 육수를 기본으로 한 맑은 국물 위에 잘게 썬 계란지단과 김, 가다랑어포 같은 고명이 올라가 있다. 화려한 음식은 아니다. 그렇지만 잔치국수는 그런 음식이기에 더 반갑다. 따뜻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을 함께 먹다 보면 오랜 시간 걷느라 조금 지쳤던 몸이 금세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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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라는 이름에는 우리 삶의 오래된 풍경도 들어 있다. 예전에는 결혼식이나 잔치가 열리면 많은 사람에게 국수를 대접했다. 만들기 어렵지 않고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기에 국수는 자연스럽게 잔칫날의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골목에서 먹는 잔치국수 한 그릇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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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골목도 그렇다. 특별한 것이 있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다. 좁은 계단과 오래된 담장, 주민이 내놓은 의자 하나, 색이 바랜 벽과 작은 가게가 하나씩 이어지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여행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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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유명한 장소만 찾아가는 것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이름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 보고, 계단을 천천히 오르고, 다시 내려와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먹는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가을에 방문해 본 통영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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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데 꼭 바다만 필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오래된 골목을 천천히 걷고 그 끝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가 살아온 시간을 조금은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이런 평범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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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남아 있는 통영의 기억은 무엇일까. 가을에 통영을 찾는다면 유명한 풍경만 좇기보다 오래된 골목을 천천히 걷고, 그 끝에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맛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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