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영남알프스에서 만나는 영화와 자연, 그리고 도전하는 인간의 이야기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든 간에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산을 평생을 등반한다. 등산과 다른 점이 있다면 꾸준하게 올라가고 꾸준하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6년 올해는 모든 것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에 이정표와 같은 것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확정되지는 않은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면 도전하는 인간과 과정으로서의 산을 만나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리는 울산의 울주로 떠나보면 어떨까.
보통 우리는 산을 오를 때 정상부터 생각한다.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걸리는지, 정상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보여주는 산에는 정상보다 산을 오르는 한 사람이 먼저 보인다. 어디까지 왔는지도,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이 등장한다. 2026년 가을 영남알프스에서 열리는 제11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울주에 가면 이곳에서 가장 많이 머물렀다. 숙소도 근처에다가 잡고 아침에 이곳으로 오는 여정길은 항상 루틴처럼 반복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산과 그 고요한 풍경 속에 전달되는 메시지는 삶의 통찰이라고 할까. 기분이 편안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 공식 포스터를 잘 보면 정상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 산맥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영화제가 말하는 도전은 결국 이런 것이지 않을까. 도전은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어디쯤 왔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걸어가는 과정이다. 사이트의 공식 설명에서도 올해의 키워드 ‘Challenge’를 결과보다 과정, 선택과 경험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울주에 자리한 산처럼 아름다운 산으로 올해의 산은 ‘율리안 알프스-슬로베니아’가 선정되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율리안 알프스-슬로베니아’를 중심으로 슬로베니아의 산악영화와 산악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울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가지산(1,241m)이다. 영남알프스 최고봉이고 울주와 경남 밀양, 경북 청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그다음이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9m)인데 두 산 사이 신불평원의 억새밭이 가을마다 유명하다. 영축산(1,081m)은 통도사를 품은 산으로 양산과 경계를 이룬다. 고헌산(1,034m)과 문복산(1,015m)도 울주 쪽에 걸쳐 있다.
올해의 개막작은 올해의 주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알피니스트 뱅자맹 베드린은 2022년 브로드피크를 무산소로 7시간 28분 만에 등정하고 패러글라이더로 내려왔지만, 불과 9일 뒤 K2에 도전하다 8,400m에서 의식을 잃고 구조됐다. 그리고 2년 동안 준비해 다시 K2로 돌아가게 된다. 고산의 스펙터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트라우마, 다시 도전하는 인간의 내면까지 따라가는 작품이라서 올해 영화제가 강조하는 ‘도전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작품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잠시 울주의 산악문화관에서 머물면서 울주의 산악문화에 대해서 접해본다. 올해 산악영화제에서는 슬로베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보우레인(Bowrain)의 공연으로 개막식도 시작된다. 재즈·앰비언트·일렉트로닉 음악과 영화 장면을 결합해 올해의 산을 소개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영화제에서는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다. 영화제 프로그램은 네 방향으로 나뉘는데 ‘자연에서 이야기하다’는 게스트와 토크, ‘자연에서 펼치다’는 전시, ‘자연에서 채우다’는 체험과 산악스포츠, ‘자연에서 노래하다’는 음악과 공연이다.
“스크린 속 산을 보고, 스크린 밖 영남알프스를 걷는다.”
홍보문구처럼 특히 체험 프로그램을 보면 청소년 볼더링, 밤빛 러닝과 요가, 싱잉볼 치유명상, 슬랙라인, 영남알프스 따라 숲여행, 밀랍 체험, 영화의 감정을 향기와 꽃으로 표현하는 프로그램, 슬로베니아 쿠키 체험 등 상당히 폭이 넓다. 유료 클래스는 대부분 3,000원으로 어떤 경험을 해보더라도 부담이 없다는 것이 매력이다.
이곳에서는 공연도 보우레인뿐 아니라 송소희, 카더가든, 이찬원 등이 참여하는 영화+공연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다. 2026 울산울주세계산악문화상 수상자는 캐나다의 산악 작가이자 연구자인 버나데트 맥도날드(Bernadette McDonald)으로 40여 년 동안 산악인의 삶을 기록해 왔고, 밴프산악영화제를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국제산악영화협회 설립에도 참여한 인물이라고 한다.
AI와 자주 만나는 나 역시 산악영화제에서 등장하는 AI의 이야기가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첫 문장의 용기: 산악전기작가가 말하는 AI시대 글쓰기의 시작과 완성」은 9월 19일 오전 10시 알프스 시네마 2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산악영화제에서 AI 시대 글쓰기를 이야기한다는 점도 올해 영화제를 단순한 레저·등산 축제로 보지 않게 만드는 요소 된다.
이곳을 제대로 체험하고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움프 패스를 이용하면 좋다. 일반 영화나 페스티벌 프로그램 티켓은 3,000원이고, 영화제 기간 영화·페스티벌 프로그램을 하루 최대 5개까지 예약할 수 있는 움프 패스는 15,000원이다. 야외에서 밤을 보내며 영화를 보는 비박 상영과 차량을 이용하는 차박 상영도 각각 10,000원에 마련돼 있다. 교통 역시 KTX 울산역에서 행사장까지 차량으로 약 15분 거리이며, 영화제 기간인 9월 18~22일에는 울산역·구 언양시외버스터미널·작천정 등을 연결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산이라는 것은 결국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기도 하며, 다시 내려와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계획대로 올라가는 순간보다 예상하지 못한 길을 만나는 순간이 훨씬 많고, 그때마다 우리는 선택하고 다시 걸을 수가 있다. 올해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보여주는 산 역시 그런 산이다. 누군가는 K2에서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누군가는 강물 위에서 다시 노를 젓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 산을 기록하며 인간이 왜 산을 오르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 스크린 속 산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된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바라보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산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각자의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으니까. 올해 가을,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전을 바라보며 나의 다음 걸음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