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자연휴양림의 우중산바카라과 1964년에 열렸던 광산동
1년을 12달로 나눈다면 반절이 넘어가는 달은 7월이지만 사실 전환의 달이라고 할 수 있는 달은 9월이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것처럼, 세계사에서도 전쟁의 시작과 종결, 체제의 변화, 새로운 질서가 시작된 사건들이 유난히 많이 겹쳐있다. 그렇지만 여름의 끝자락은 계절이라기보다 상태에 가까운 느낌이다. 아직 덥지만 더위가 예전만 못하고 초록은 짙지만 어딘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이렇게 바뀌어가는 때에 지인과 함께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어서 옥천의 장령산자연휴양림을 방문했다. 이 시기에 비까지 내리면 사람이 빠진 자리가 유난히 넓어 보인다. 옥천 군서면 장령산 자락으로 들어섰을 때가 그랬다. 대도시의 소음이 사라지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히 힐링이 되어주었다.
장령산자연휴양림의 금천계곡은 물이 불어 있었다. 바위는 오래 씻겨 둥글어졌고 그 사이로 물이 갈 길을 알아서 찾아 흘렀다. 장령산은 해발 656미터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계곡을 품기에는 넉넉한 높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는 파란 기둥에 초록 바닥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단순해서 좋다. 관리하기 쉽고 미끄러지지 않고 눈에 잘 띄는 색이다. 이 다리를 건너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길이 끝나는 지점이 나온다.
휴양림 안쪽 야영 데크에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지만 파라솔은 펴져 있고 평상은 젖어 있고 은행나무줄기에 묶인 주황색 밧줄만 바람에 흔들렸다. 성수기의 이곳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풍경이 낯설 것이다. 자리를 잡으려고 새벽부터 올라오는 계절이 지나면 같은 공간이 이렇게 조용해진다.
사람이 많을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기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평상이 어떤 간격으로 놓였는지 물길이 어디로 흐르게 설계됐는지 사람이 많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는 늘 이런 시기의 관광지를 좋아했다. 붐빌 때의 그곳이 목적을 보여준다면 비었을 때의 그곳은 의도를 보여준다.
안쪽으로 들어오면 차량 진입 금지 표지판 옆으로 바위를 본뜬 조형물이 서 있고 그 위에 '장령산 숲 속동굴'이라고 적혀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 이 동굴은 원래 관광지가 아니었다. 구 동국광산으로 1964년에 철광석을 캐기 위해 개발됐고 1985년에 문을 닫게 된다. 21년 동안 이 산에서 광석이 나왔고 그 후로 사십 년 가까이 이곳은 폐쇄가 된 공간이었다. 숫자만 적어놓으면 간단하지만 그 사이에 사람이 있었다.
1964년이면 광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던 시절이다. 이 산으로 출근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광산 주변으로 형성된 생활이 있었을 것이다. 1985년의 폐광은 어느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산업 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온도가 먼저 달라진다. 연중 12~14도. 밖이 삼십 도를 넘든 영하로 떨어지든 이 안은 늘 그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사진이 여기 걸려 있다는 사실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대개의 관광지는 완성된 모습만 보여준다. 만드는 과정은 무대 뒤로 치워두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 동굴은 폐광이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그 폐광을 다시 여는 데도 사람의 노동이 들었다는 사실까지 보여주고 있다.
바닥에는 벽돌이 깔렸고 벽에는 인조 덩굴이 걸렸다. 랜턴 모양 조명이 노랑과 초록으로 번갈아 불을 밝히고 있었다. 통로 중간에 걸린 사진 한 장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겨울 산비탈에 비계를 세우고 흰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일하는 장면이다. 갱도 입구는 아직 콘크리트가 마르지 않은 상태고 주변에는 시멘트 포대와 파란 방수포가 쌓여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매끈한 통로가 만들어지던 시간이다.
동굴 안쪽에는 소원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중봉 조헌이 승리를 기원했다는 이야기에서 가져온 소재다. 유리 기둥 안에 바위가 놓였고 인조 덩굴이 감겨 있고 조명이 위에서 비추고 있다. 그 옆으로는 소원폭포가 흐른다. 암벽에 물을 흘리고 파랑과 초록 조명을 얹었다. 벽면이 실제로 반짝인다. 철광석을 캐던 자리에서 이제는 빛이 나온다는 말은 아무래도 비유가 지나치지만 눈앞의 광경은 실제로 그렇다.
가장 오래 본 것은 소원 걸이대였다. 수천 개의 패가 유리 안에 걸려 있다. 합격 취업 건강 화해. 손글씨의 크기와 힘으로 그 사람의 절박함이 대충 짐작된다. 누군가는 정성껏 썼고 누군가는 대충 썼고 누군가는 이름까지 적었다.
캘 것이 없어진 자리에 사람들은 각자의 바람을 걸어두고 간다. 이 산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철광석이었다면 지금 이 산에 쌓이는 것은 소원이다. 무엇을 채굴하느냐가 달라졌을 뿐 사람이 산에 무언가를 기대는 방식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옥천군은 이 폐광을 오래 숙제로 안고 있었다. 위험하니 막아두는 것이 가장 간단한 답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십 년 가까이 그 답이 유지됐다. 2019년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국비 20억과 군비 31억을 합쳐 51억이 투입됐고 그렇게 100미터 길이의 통로가 여덟 개 구간으로 다시 열리게 된다.
밖으로 나오니 다시 9월의 공기가 느껴진다. 12도에서 30도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초다. 계절도 그렇게 바뀔 것이다. 여름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지 않고 이렇게 며칠씩 흐린 날을 거쳐 저너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동굴 안에 걸린 수천 개의 소원 중에 이루어진 것이 몇 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 산은 한 번 자기 안의 것을 다 내어준 뒤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간만에 소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 날이다.
다녀오기 전에
위치: 충북 옥천군 군서면 장령산로 519 (숲 속동굴은 군서면 금산리 산 17)
숲 속동굴 관람: 무료, 예약 없이 입장, 오전 10시~오후 5시
주차: 경차 1,000원 / 소형 3,000원 / 대형 10,000원, 옥천군민·국가유공자·장애인 면제
동굴 길이 약 100m, 내부 연중 12~14도, 여름에도 얇은 겉옷 하나 챙기면 좋다
구성: 스토리보드 – 그래픽보드 – 갱도 모형 – 소원바위 – 소원폭포 – 소원 걸이대 – 광차 모형 – 거미 모형
계곡과 야영 데크는 성수기가 지난 뒤가 오히려 걷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