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산의 용담폭포

힘들게 올라간 곳에서 만난 자연 속의 숨겨진 신비를 만나다.

무더운 여름날 산을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추운 날에도 산을 올라가는 것은 조심해야 하지만 무더운 날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사람이 쉽게 지치고 비가 온 다음날이나 그날에는 쉽게 미끄러질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상천리의 산행은 흙길에서 시작된다.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드는 길에는 포장이 없다. 붉은 흙과 잔돌이 발밑으로 이어지고 여름 풀이 제 키만큼 자라 길의 가장자리를 채우고 있어서 전신을 감싸는 의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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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표지가 걸음을 세운다. 비단 같은 절경이 있는 상천산수유마을이라고 한다. 금수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왼쪽은 상천리주차장, 오른쪽은 담폭포. 기둥에는 '산수유마실길'이라는 이름이 세로로 적혀 있다. 봄이면 이 일대가 산수유 노란 꽃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지금은 잎만 무성하지만 마을 이름에 꽃 한 철의 기억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셈이다. 나는 오른쪽, 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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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힘든 산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조금 오르면 안내판이 나온다. 금수산을 설명하는 판이다. 읽다 보면 산 하나에 이름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하다 하여 금수산(錦繡山)이라 불렀고 정상은 상악산(上岳山)이라 했다. 그 밖에도 금수산(金水山), 금수산(錦秀山), 적성산(赤城山), 무암산(茂巖山)으로 불렸다고 적혀 있다. 『증보문헌 비고』는 이 산을 두고 뭇 봉우리가 수려함을 다투고 그 속에 약초가 많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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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많다는 건 그 산을 바라본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단풍을 보고 비단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물을 또 누군가는 붉은 성벽 같은 바위를 먼저 보았다. 산은 하나인데 이름은 그 산을 오른 사람 수만큼 갈라지게 다. 같은 공간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간이 각자의 이름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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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오르자 또 다른 갈림길 표지가 나타난다. 왼쪽 망덕봉 2.2km, 오른쪽 금수산 2.9km. 봉우리로 곧장 오를 수도 계곡을 따라 폭포로 내려설 수도 있다. 금수산은 정상까지 철계단과 급경사가 이어지는 만만찮은 바위산이다. 오늘 내가 읽으려는 건 정상의 조망이 아니라 물이 새겨 놓은 시간이다. 폭포 쪽으로 몸을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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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하나가 더 있다. '금수산 및 용담폭포 안내'라고 쓰인 판에는 이 폭포에 얽힌 이야기가 빼곡하다. 여기서부터 산은 풍경이기를 그만두고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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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용담(龍潭)에서 목욕하고 올라갔다고 하고, 금수산을 수호하던 신룡(神龍)이 승천할 때 남긴 발자국 세 개가 상탕·중탕·하탕 세 개의 못이 되었다고 한다. 용담폭포의 본래 이름은 용추(龍湫)였다. 1689년 청풍부사 오도일이 남긴 기문에는 옛날 백운암의 노승이 주문을 외워 용을 시켜 바위를 뚫어 못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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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전설이다. 그런데 판의 뒷부분에는 사실에 가까운 기록이 이어진다. 1661년 청풍부사 이단상이 '청풍금수산기우문'을 남겼고, 1970년대까지도 인근 마을 사람들과 수산면장이 이 용추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것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 물가에 모였다. 용이 승천했다는 자리에서 다시 비를 빌었다.


한 대목이 오래 눈에 남는다. 1970년대 화전민 철거 정바카라으로 이 골짜기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는 문장이다. 6·25 이전에는 폭포 위쪽 시매골에 사람이 꽤 많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풀에 파묻혀 표지판조차 절반쯤 가려진 이 길을 한때는 매일 오르내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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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접고 다시 걷는다. 흙길이 어느새 돌길로 바뀐다. 물을 머금은 이끼가 초록으로 번진 바위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나무 아치교 하나가 계곡을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 공기가 서늘해진다. 물소리가 아직 보이지 않는 폭포를 먼저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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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앞의 바위는 거대하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표면에는 이끼와 지의류가 초록과 잿빛으로 지도를 그려 놓았다. 이끼가 자라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이 정도의 초록이 되려면 여러 해의 비와 그늘이 필요하다. 바위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시간을 재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면은 볕에 말라 헐벗었고 어떤 면은 물길 쪽으로 두껍게 초록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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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넓은 암반을 타고 물이 미끄러져 내린다. 안내판에 따르면 30미터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다. 2001년 충청북도 자연환경명소로 지정되었다. 위쪽으로는 선녀가 목욕했다는 선녀탕이 있다고 전한다. 장마 뒤라 물이 제법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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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하게 닳은 검은 암반은 물이 수천 년 같은 자리를 흐르며 깎아 낸 결과다. 용이 발톱으로 바위를 뚫었다는 전설은 어쩌면 이 오랜 침식을 사람의 언어로 옮긴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다만 같은 자리를 오래 흐를 뿐이다. 그 오랜 반복이 단단한 화강암에 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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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으로 물이 떨어지는 어둑한 곳을 들여다본다. 볕이 닿지 않는 그 안쪽에서도 물은 흐르고 있다. 승천한 용도, 비를 빌던 사람들도, 산을 떠난 화전민도 모두 이 물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바뀌고 이름은 갈라지고 마을은 비었는데 물만은 같은 소리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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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흙길을 다시 밟는다. 올라갈 때 아무 일도 없어 보이던 그 길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 길은 비를 빌러 오르던 길이었고 산을 떠나며 내려가던 길이었다. 용담폭포는 물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물이 지나온 시간을 보러 가는 곳에 가깝다. 나는 그 시간의 한 자락을 잠시 밟았다가 돌아선다. 물은 여전히, 내가 떠난 뒤에도 그 자리를 흐를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그곳을 오르느라 온몸에 알이 배겨서 욱신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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