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쉬는 공간으로

비가 오는 날 방문해 본 제천옛날학교캠핑장에서 보낸 하루

비가 내리는 날이 야외로 나가기에는 조금 불편한 느낌은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어서 좋다. 내리는 비가 우산을 때리면서 내리는 운율이라던가 더 짙어져서 색감이 좋은 자연풍경을 보고 있으면 감성에 젖기도 한다. 제천의 산이 젖은 안개를 뒤집어쓴 채 능선을 지우고 있을 때 도로변 낮은 자리에 '수산 1리'라 새긴 둥근돌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그 옆 나무 표지판은 무심한 듯 일러 주고 있었다. 여기는 청풍호가 있는 제천이라는 것을 말이다.

0R5A8868_новый размер.JPG
0R5A8871_новый размер.JPG

청풍호가 이곳에 생기기 전에 마을과 학교가 있었다. 청풍호가 생기면서 사람이 이전하고 학교도 옮겨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곳에 있던 학교가 이곳으로 옮겨 왔다. 1954년 4월 1일 북평국민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1958년 4월 1일 세 학급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 1984년 11월 16일 충주댐으로 수몰학교가 되어 지금의 자리,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로 이전했다. 폐교한 날은 1995년 3월 1일이다.

0R5A8874_новый размер.JPG

지금은 캠핑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학교에서 서른 번의 졸업식을 치르는 동안 783명이 이 학교를 거쳐 세상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0R5A8876_новый размер.JPG
0R5A8879_новый размер.JPG

물을 가두면 마을이 잠기게 된다. 댐이 차오르며 논과 길과 집이 물아래로 가라앉던 그때 학교도 함께 잠길 뻔했다. 그래서 학교는 짐을 꾸려 산 쪽으로 올라왔다. 옛 교실로 이어지는 복도에 들어서면 옛 시간이 묻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0R5A8881_новый размер.JPG

지금은 보기 힘든 붉게 윤이 나는 나무 마루가 발밑에서 낮게 삐걱이고 손때가 앉은 창틀 너머로 빗줄기가 흐르고 벽을 가로지른 줄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아직 매달려 있다. 크레용으로 눌러 그린 나무와 성과 얼굴들. 이 그림을 그린 손은 지금 어디서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0R5A8882_новый размер.JPG

복도 한쪽에는 낡은 물건들이 작은 박물관처럼 놓였다. 손잡이를 돌려세우던 지구본과 스미스코로나 타자기, 알이 굵은 주판, 숯불을 넣어 달구던 무쇠 다리미. 벼루와 놋촛대와 향로도 만나볼 수가 있다. 하나같이 학교가 문을 닫기 전 세상을 살던 물건이다. 자판을 누르면 활자가 종이를 때리고 주판알이 딸깍이던 시절 셈과 글씨가 오롯이 손끝의 일이던 시절이 이 좁은 복도에 놓여 있다.

0R5A8884_новый размер.JPG

지금 이 학교의 마당에는 아이들 대신 글램핑장이 자리하고 있다. 나무 데크 위에 하얀 글램핑 텐트가 나란히 서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분홍빛 냉장고와 전기포트, 아담한 싱크대가 불편함을 대신해주고 있다. 운동장이었을 잔디밭은 빗물을 머금어 초록이 짙다.

0R5A8888_новый размер.JPG

운동장의 한편에는 지붕을 얹은 물놀이장이 있고 튜브와 공이 물 위로 둥둥 떠다니면서 한 여름의 휴가시즌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물을 피해 산으로 올라온 학교에서 이제 다른 가족들이 방문해서 휴식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0R5A8892_новый размер.JPG

마당 가장자리의 느티나무는 이 모든 변화보다 훨씬 오래 그 자리를 지켜 오지 않았을까. 학교가 오기 전에도 서 있었고 학교가 떠난 뒤에도 남아 굵은 가지 사이로 빗소리를 흘려보낸다. 그 아래 걸린 해먹과 젖은 벤치가 누군가의 느긋한 오후를 기다린다. 울타리 옆에는 무궁화가 분홍 꽃잎을 비에 적신 채 피어 곱기만 하다.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의 꽃이 폐교가 된 뜰에서 여태 철마다 핀다.

0R5A8895_новый размер.JPG

물은 한 마을을 잠기게 했지만 학교를 산으로 자리하게 하였다. 세월은 그 학교의 문마저 닫고 빈 교실에 새로운 활용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걸어 둔 그림 위에도 손잡이 굳은 지구본 위에도 오늘 밤 천막에서 잠들 누군가의 지붕 위에도 그리고 저 무궁화 위에도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지 중요하지 않지만 겹겹이 쌓인 시간 위에 있었던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기만 하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자연 80%, 쉼 20%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