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이어지는 제천 용하야영장
이제는 제천의 월악산은 마치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바로 앞에 있는 산이라고 생각될 만큼 친숙한 산이 되었다. 지역마다 유명한 산들이 있지만 월악산의 포근한 느낌과는 비교가 안된다. 월악산 아래로 들어서면 길이 먼저 조용해지는데 비가 지나간 뒤라 아스팔트에는 아직 웅덩이가 남아 있고 산은 물기를 머금어 색이 한층 짙어진다.
올해 방문해 본 용하야영장의 첫 얼굴은 뜻밖에도 비움이었다. 넓게 펼쳐진 주차장 저편으로 관리사무소와 샤워장이 낮게 앉아 있고 카트 몇 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은 느낌이 든다.
이 넓은 공터가 나는 좋았다. 도시에서 실려 온 속도를 여기서 한 번 내려놓게 되니까 말이다. 차 문을 열고 짐을 꺼내는 사람들의 도착은 늘 어수선한 일이지만 이 야영장은 그 어수선함을 받아줄 만큼 넉넉하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 앞에서 잠시 멈춘다. 용하야영장 그리고 작게 덧붙은 Eco-Healing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쉼이라는 말이 브랜드가 되어버린 시대에도 이 이름은 어쩐지 밉지 않았다.
관리동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질감이 바뀐다. 하늘을 가리던 것이 구름에서 소나무로 바뀌는 것이다. 붉은 기둥을 곧게 세운 적송들이 높이 자라 있고 그 아래로 데크와 마사토 사이트가 흩어져 있다. 젖은 흙길은 색이 진해졌고 발밑에서는 솔잎 냄새가 올라온다.
텐트마다 모두 느낌이 다르다. 어느 자리에는 노란 지붕의 텐트가 활짝 열려 아침을 준비하는 온기가 새어 나오고, 어느 자리는 아직 비워진 채 다음 사람을 기다린다. 스테인리스 전기함과 소화기가 나무 사이에 서 있는 풍경은 조금 실용적이지만 그마저도 이 숲에서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야영이란 결국 자연 속에 잠깐 살림을 들이는 일이고 살림에는 이런 물건들이 필요한 법이니까.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이곳의 나무는 관상용으로 심어둔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굵기도 키도 제각각인 소나무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 서로 기대고 벌어지며 지붕을 이룬다. 사람이 만든 야영장이지만 그 뼈대는 오래된 숲이 만들어준 것이다. 우리는 그 숲이 비워둔 틈에 잠시 세 들어 사는 셈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무 사이가 넓어지며 벤치와 취사장이 흩어진 마당이 나온다. 비에 젖은 나무 탁자들이 반짝이고 낙엽이 자갈 위에 붉게 깔려 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의 야영장에는 특유의 정적이 있다. 텅 빈 벤치가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좋은 순간. 누구를 위해 비워둔 자리가 아니라 그냥 비어 있는 자리가 주는 여백이 있다.
여기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도시의 시간이 약속과 알림으로 여유가 없는 시간이라면 숲의 시간은 뭉툭하다. 물 끓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아이 웃음도 들리고 바람이 솔가지를 스치는 소리도 있다. 그런 것들이 시계를 대신하는 하루가 여기 있다. 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른 시간에 몸을 맞춰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야영장의 한가운데를 실개천이 가른다. 이 물길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다. 조약돌을 촘촘히 깔고 돌로 둑을 쌓아 물을 얕게 흘려보낸 인공 개울이다. 비 온 뒤라 물이 제법 불어 작은 턱을 넘으며 하얗게 부서진다. 수면에는 빗방울이 남긴 동그란 파문이 번지고 바닥의 자갈 하나하나가 훤히 비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물길은 정성스럽다. 돌의 크기를 맞추고 물의 깊이를 조절하고 아이들이 발을 담글 만한 완만함까지 고려해 두었다.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과 자연을 흉내 내어 곁에 두는 것 사이에서 누군가는 후자를 택했다. 나는 그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물놀이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흐르는 물소리를 곁에 두고 싶은 어른을 위해, 이 개울은 계곡을 가장 안전한 형태로 마당까지 끌어온 것이다. 작은 나무다리가 그 위에 놓여 있고 다리 건너에는 또 다른 사이트가 이어진다. 물을 사이에 두고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는 구조로 조성이 되어 있다.
밧줄 난간을 따라 숲길을 조금 내려가면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다듬어진 마당의 끝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잔돌이 깔린 길이 점점 큰 돌로 바뀌고 이끼가 낀 바위가 발밑에 놓인다.
그리고 마침내 계곡으로 들어갈 수 입구가 나온다. 사람이 깐 조약돌 대신 오래 굴러온 너럭바위가 물길을 가득 메운 자리에는 희고 둥근 바위들 사이로 맑은 물이 얕게 흐르고 그 위로 초록의 나무가 짙게 드리운다. 조금 전의 실개천이 사람이 자연에게 건넨 인사였다면 이 계곡은 자연이 처음부터 거기 있던 대답이다.
여기서 야영장의 산바카라이 끝이 난다. 아스팔트에서 시작해 숲을 지나 사람이 만든 물을 건너고 마침내 아무도 만들지 않은 물 앞에 서는 것 그 자체가 좋다. 걸음마다 쉼의 밀도가 조금씩 짙어지는 길이었다. 다듬어진 것이 나쁜 것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가 늘 옳은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야영장은 그 둘 사이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이어놓았다. 그래서 여기 하루를 묵는 일은 휴가이면서 동시에 야영이 된다. 편하게 쉬러 왔다가 어느새 계곡 돌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젖은 솔잎을 밟으며 생각해 본다. 좋은 쉼터는 무엇을 채워주는 곳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게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