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품은 숲

영동의 아름다운 관광지 송호관광지에서 시간을 읽어보다.

영동 양산면으로 들어서면 산 많은 고장을 한참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공기가 낮아지고 습해지는데 그 감각이 금강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포도밭 낮은 담장을 지나고 관리사무소와 불 꺼진 와인체험관을 돌아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고도 없이 커다란 소나무숲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영동을 대표하는 송호관광지의 소나무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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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웅장하면서 아늑하고, 하늘을 잊게 할 만큼 그늘이 깊어서 좋다. 처음 이 숲에 든 사람은 대개 감탄부터 하고 본다. 그런데 이 숲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조용히 마음을 붙들게 된다. 이 울창한 솔밭은 저절로 생겨난 자연이 아니다. 한 사람이 손으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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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정 아래 세워진 안내판은 이 숲의 내력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이요당 박흥거의 후손인 만취당 박응종은 문과에 급제해 연안부사를 지낸 사람이었다. 벼슬길이 순탄했던 이가 어느 날 관직을 사직하고 이 강가로 낙향한다. 그리고 강변 언덕 위에 전원을 마련해 여러 되의 해송 종자를 손수 뿌렸다. 그렇게 가꾼 솔밭을 그는 송전(松田), 소나무의 밭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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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은퇴가 사백 년 가까운 숲으로 남았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아득하다. 씨앗을 뿌리던 그는 자신이 심은 나무가 이렇게까지 자라 오래 사람들을 불러 모을 줄 알았을까. 나무를 심는 일은 본래 자기 세대의 그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숲에 텐트를 치고 그늘에 눕는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옛사람의 선택 위에 잠시 쉼을 선택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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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이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벼슬을 심는 대신 소나무를 심기로 한 사람의 선택이 그 한 글자에 들어 있다. 논밭에 곡식을 심듯 그는 강가에 나무를 심었고 정자를 지어 스스로 만취당이라 이름을 붙였다. 늦도록 푸르다는 뜻이다. 그곳에서 그는 예의와 풍속을 정치와 역사를 후학에게 이야기하며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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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한가운데로 가면 바위 언덕 위에 단청 고운 정자 한 채가 앉아 있다. 여의정(如意亭)이다. 만취당이 풍류를 즐기고 후학을 가르쳤다는 자리에, 후손들이 조상의 덕행을 기리려 다시 세운 건물이다. 안내판은 그 시점을 분명히 적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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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가을, 박 씨 문중이 모여 정자를 짓기로 하고 콘크리트 기와집 한 채를 올렸다고 말이다. 1935년이라는 연도 앞에서 잠시 걸음이 멈춘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 굳이 문중이 돈과 정성을 모아 조상을 기리는 정자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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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움직였는지 안내판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뿌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어떤 시절에는 더 절실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조상이 심은 것은 소나무였고 후손이 심은 것은 그 소나무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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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정은 지금 영동군 향토유적 제23호로 양산팔경의 여섯 번째 경(景)으로 남아 있다. 정자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바위를 껴안듯 정자 곁에 서 있고, 그 너머로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자연과 사람의 손길이 몇 겹으로 포개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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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의 시간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신라와 백제가 맞부딪치던 시절에 닿는다. 이 일대는 우리 국문학에서 신라가요로 헤아리는 양산가(陽山歌)의 고장으로 전한다. 신라 김흠운 장군이 백제와의 싸움에서 스러진 자리 그 애환에서 노래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몸을 나라에 바친 뒤에는 남이 알아주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겠느냐던 그의 말이 오래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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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대에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가 용암에는 승천하려던 용이 그 선녀에게 반해 끝내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전설과 역사와 노래가 한 물길을 따라 나란히 흐른다. 송호는 그러니까 하나의 시대가 아니라 여러 시대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신라의 전장이 있었고, 조선 선비의 낙향이 있었고, 식민지 시대 후손의 다짐이 있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 위를 무심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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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이 늘 평온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20년 여름, 상류 용담댐이 홍수 조절을 위해 방류량을 늘리면서 송호관광지 일대가 물에 잠긴 적이 있다. 야영장도 물놀이장도, 강변에 애써 마련한 카누장 계류시설도 흙탕물에 파묻혔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허리까지 물에 잠긴 사진 앞에서, 그해 이곳을 아끼던 사람들은 옛 모습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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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지금 송호는 이십팔만 제곱미터가 넘는 터에 산바카라로와 야영장을 품고, 전국에서 모여든 캠핑객들을 조용히 맞이한다. 강가에는 텐트가 늘어서고 소나무 사이로 그늘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자갈길을 뛰어다닌다. 사백 년 전 한 사람이 뿌린 씨앗의 그늘 아래에서, 오늘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쉬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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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를 걷다 보면 결국 심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벼슬을 버리고 나무를 택한 사람 그 나무를 기려 정자를 세운 후손들도 있다. 물에 잠긴 자리를 다시 일으킨 손길들이 합쳐져 이 공간에 새겨진 시간은 하나같이 누군가의 선택이 오래 남은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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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심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아래 쉬어 가는 모두의 것이 되었다. 만취당이 뿌린 것은 소나무 씨앗이었지만, 그가 실제로 남긴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 자라는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그늘에 앉아 강물 소리를 듣는 일이 사백 년 전의 한 선택과 닿아 있다는 사실과 그 조용한 이어짐 앞에서 나는 오래 서서 바라본다.


https://youtube.com/shorts/qWfMZPX8z3Q?si=pZU_PwmatZD6dR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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