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탄광마을, 도계

검은 탄가루의 마을이 제 담벼락을 하늘색으로 칠하기까지

삼척이라는 도시를 언제 처음 방문해 보았을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삼척의 도계에 닿은 날은 하늘이 낮게 느껴졌다.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 능선을 반쯤 지웠고 그 아래 초록은 오히려 더 짙었다. 큰 길가에 붉은 화살표 하나가 비스듬히 서 있다. 도계유리마을 150m 화살표를 받친 시멘트는 갈라져 그 틈으로 풀이 자랐고 화살표는 조금 기울어 있었다. 나는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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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의 오래된 탄광마을의 이름은 두 개였다. 하나는 유리마을이고 하나는 삭도마을이다. 삭도. 케이블에 매달린 통이 산을 넘어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길 위에 있었다. 그 길은 사라졌지만 이름은 남아 마을 초입의 둥근 조형물 위에 올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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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반원과 흰 반원이 맞물린 그 원 안에는 곡괭이를 든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다. 밤과 낮이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갱도의 입구 같기도 하다. 도계가 무엇으로 살았는지를 마을은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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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으로 들어서면 노랗게 칠한 배터리 기관차와 석탄을 담던 광차가 선로 위에 그대로 서 있다. 화단을 두른 나무 벽에는 수레바퀴가 그려져 있고 광차 손잡이에는 아이가 매달렸다 간 흔적이 있다. 무겁게 산을 오르내리던 것들이 이제는 광장의 놀이기구처럼 가벼워졌다. 그 낙차가 나는 좋았다. 힘들었던 시간을 지우지 않고 웃음이 나는 자리에 옮겨 둔 마을의 마음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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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가운데로는 철길이 지난다. 도계는 작은 마을이지만 그 작은 몸을 가로질러 선로가 곧게 뻗어 있다. 승강장은 아담하고 난간은 흰 꽃무늬로 곱게 뚫려 있었다. 선로 옆 담벼락은 하늘색으로 칠했고 그 위에 붉은 하트가 겹쳐진 글자가 붙어 있다. 삭도마을 I♥YOU. 검은 탄가루의 마을이 제 담벼락을 가장 맑은 하늘색으로 칠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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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 옆으로는 붉은 꽃이 줄지어 피어 흐린 날의 회색조차 배경색으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기차는 오지 않았다. 두 줄의 레일은 구름 낮은 산자락 쪽으로 사라지고 나는 그 끝을 한참 바라보았다. 철길이 지나가는 마을에는 늘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이어진다는 감각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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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있다는 감각이 이곳에 남아 있다. 실은 그 감각이 남는 사람들을 견디게 했을지도 모른다. 승강장에 서면 도착보다 배웅의 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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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광장으로 나오면 마을은 방문자를 색다른 공간으로 연출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은빛 항아리에서 민들레 홀씨가 크게 피어오르는 조형물이 있고 마주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두 사람의 흰 실루엣이 길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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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는 컨테이너를 개조한 커피집과 국숫집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전 냄새와 떡볶이 냄새가 빈 광장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리마을을 알리는 삼각 유리탑은 조각조각 색이 달라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저 혼자 화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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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색 컨테이너 건물 하나가 작은 미술관이었다. 만복. 마을을 그린 전시가 여름 한철 열리고 있었다. 폐광의 마을이 유리를 굽고 그림을 걸고 이름에 하트를 붙이는 일. 그것은 사라진 것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남은 것으로 새 공간을 만들어냈다. 마을은 제 과거를 박제하지 않고 어제의 삶을 오늘의 재료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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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그 붉은 화살표를 지났다. 처음엔 지친 듯 보였던 기울기가 이번엔 다르게 읽혔다. 오래 서서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낸 것 같은 느낌이 좋다. 도계는 화려한 것을 보여 주는 마을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감성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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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구름과 짙은 초록 사이로 철길 하나가 지나고 그 곁에서 사람들이 제 시간을 곱게 칠하며 산다. 그런 마을을 천천히 걷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환해진다. 무거웠던 것을 가볍게 옮겨 놓을 줄 아는 자리에서는 방문자도 잠깐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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