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가 익어가는 계절 쨍한 여름날에 방문해 본 당진 심훈의 필경
글과 농사를 짓는 것과 공통점은 어떤 것일까. 365일 중에 하루만 쉬어도 결과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루를 그냥 쉴 수는 있지만 그 하루가 누적되어 나온 것에 영향을 미친다. 매일매일을 돌아봐야 하고 수고스러워야 한다. 그것이 글이며 농사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노동이며 자신 생각의 밭을 고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집을 "붓으로 밭 가는 집"이라 이름 붙이고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위를 갈며 나아가고, 한 자루의 붓이 곧 쟁기이자 유일한 연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갔던 사람이 있다.
당진 부곡리의 하루는 소나무 그늘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을 지나 붉은 벽돌길로 들어서면 오래된 솔숲이 먼저 사람을 맞이해준다. 키 큰 소나무 아래로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옆에 두 사람의 조형물이 보인다. 남자는 검게 그을린 몸으로 십자가 곁에 서 있고 여자는 종을 든 채 어딘가를 바라본다. 소설 『상록수』의 동혁과 영신이다. 이른 빛이 인물의 어깨를 넘어 잔디밭으로 길게 떨어지는 그 시간에 나는 이곳이 한 작가의 마지막 자리이자 그의 문학이 태어난 자리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
심훈에게 당진은 태어난 곳은 아니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당진은 어머니가 머물던 곳이었다. 일제의 감시가 조여 오던 1932년, 그는 부곡리로 내려왔다. 도시를 등지고 농촌으로 들어온 이 선택이 그의 문학을 바꾸어 놓았다. 이곳에서 그는 붓을 쟁기 삼아 종이 위에 농사를 지었고, 그 밭에서 『상록수』가 자라났다. 당진이 심훈에게 갖는 의미는 그래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어떤 시대를 어떻게 견디기로 결정했는가를 보여 주는 자리다.
솔숲을 지나면 나지막한 기념관 건물이 나온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는 동안 왼쪽 벽돌 벽과 오른쪽 난간 사이로 하늘이 좁게 열리고, 그 끝에서 전시실 입구가 나타난다. 벽에는 심훈의 얼굴이 선 몇 개로 그려져 있다. 안경 너머의 눈매가 담담하다. 그 아래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저항의식과 예언자적 지성, 민중적 생명력을 문학으로 표현하다.
전시는 「심훈의 예술세계로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 관람 동선은 그의 일생을 순서대로 따라가도록 짜여 있다.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옥에 갇힌 청년의 시간,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시간, 언론인이자 영화인이자 소설가로 여러 얼굴을 살아 낸 시간이 방마다 이어진다. 심훈은 한 자리에 머문 사람이 아니었다. 시를 쓰고 신문에 글을 싣고 영화를 만들려 했으며, 그 모든 길이 결국 하나의 마음으로 모였다.
동선의 한가운데에서 한 조형물 앞에 오래 머물렀다. 한옥 창호의 은은한 빛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트랙 위를 달리는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손기정이다.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남승룡이 동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조선중앙일보 호외로 전해졌다. 심훈은 그 호외를 길에서 주워 들고 그 자리에서 시를 썼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신문지 뒷면에 급히 써 내려간 이 시가 그의 마지막 글이 되었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고막을 울린 소식 앞에서, 그는 어둠에 짓눌렸던 하늘이 화닥닥 밝으려 한다고 적었다. 그 감격을 적은 손이 한 달 뒤 멈추리라는 것을 그때의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당진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구역에는 『상록수』의 뿌리가 놓여 있다. 심훈은 1934년 이곳에 손수 설계한 집을 짓고 필경사라 이름 붙였다. 종이에 농사를 짓는 집이라는 뜻이다. 소설 『직녀성』을 신문에 연재하고 받은 원고료가 그 집을 세웠다. 그리고 1935년 5월 4일부터 6월 26일까지, 쉰 나흘 동안 그는 이 집에서 『상록수』를 써 내려갔다.
소설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공모에 당선되어 세상에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이 실존의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장조카 심재영을 박동혁으로, 최용신을 채영신으로 옮겨 왔다. 마을의 공동경작회는 소설 속 농우회가 되었다. 당선금 오백 원 가운데 백 원을 마을 야학당인 상록학원 짓는 데 내놓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소설과 삶이 이토록 가깝게 맞물린 작가는 드물다.
언론인 심훈을 다룬 방에서는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바카라상 앞에 앉은 밀랍 인형이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었다. 포토존이라는 팻말이 놓여 있어 잠시 웃음이 났지만, 펜을 쥔 그 손의 각도에는 어쩐지 진지함이 배어 있었다. 전시의 끝에는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 정신을 잇다」가 있고, 심훈의 생애를 담은 영상실이 관람을 마무리해 본다.
2026년은 심훈에게 특별한 해다. 그가 필명을 쓰기 시작한 지 백 년, 세상을 떠난 지 아흔 해가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기념관 벽에 걸린 현수막에는 올 한 해 동안 이어지는 박물관 체험 프로그램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국가유산청 고택종갓집 활용사업의 하나로 새로운 계몽의 시대, 필경사라는 주제 아래 열한 달간 진행된다는 안내였다.
올해 상설로 운영되는 상록수 체험교실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문을 연다. 봄에서 초여름으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심훈의 붓을 따라가는 상록수 계몽 클래스가 열려 나만의 필경사를 만들어 보는 체험과 상록수의 세계로 들어가는 활동이 마련된다.
소박하고 토속적인 당진의 맛을 나누는 상록수 그날의 식탁도 이 시기에 함께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 인문학 토크 콘서트와 영상으로 이야기를 구현해 보는 프로그램이 더해지고, 가을이 깊어지는 시월과 십일월에는 상록수 소셜 다이닝과 희망 찾기 RPG 그날이 오면이 이어진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문학 작품 『상록수』를 바탕으로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경험해 보는 복합 문화 게임이라고 한다.
문학관이 유물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심훈이 상록학원을 세워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듯이 오늘의 필경사도 배움과 나눔의 자리로 남기를 택한 셈이다. 자세한 일정과 신청은 기념관 학예연구 체험교육실이나 기념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을 나와 다시 솔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침 빛이 한결 높아져 소나무 둥치마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잔디밭 곳곳에는 상록수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안내판이 놓여 있고, 그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대나무 숲을 등지고 선 흙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필경사다. 황토를 짓이겨 바른 벽과 초가지붕, 나지막한 처마가 아침 공기 속에 고요했다. 앞마당에는 심훈선생고택이라 새긴 작은 비석이 서 있었다.
심훈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이 집을 그의 생가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의 문학이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대지에 비하면 건평이 아담한 집이지만 안에는 화장실과 욕실을 두고 발코니 격의 툇마루를 낸 그 시절로서는 드물게 실용을 고민한 설계였다. 스스로 도면을 그린 사람의 살림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구조 하나만으로도 짐작이 된다. 종이에 농사를 짓겠다고 이름 붙인 집에서 그는 정말로 한 편의 소설을 수확했다.
심훈의 문학은 흔히 농촌 계몽으로 요약되지만 그 안에는 더 오래 남는 것이 있다. 그는 브나로드의 구호를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아는 것이 힘이니 배워야 산다는 문장을, 동혁과 영신이라는 사람의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 계몽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아니라 곁에서 함께 흙을 만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소설로 보여 주려 했다. 『상록수』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사철 푸른 나무는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다. 시대가 아무리 추워도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그는 늘 푸른 나무에 심어두었다.
그 마음은 시에서 더 분명해진다. 「그날이 오면」에서 그는 해방의 날이 온다면 자기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앞장서겠다고 노래했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의 절규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그날을 보지 못하고 서른여섯에 눈을 감게 된다. 상록수를 바카라으로 펴내려 상경했다가 과로 끝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36년 9월이었다. 세월이 흘러 2007년, 그의 묘는 이 필경사 경내로 옮겨져 왔다.
한자로 필경사는 筆耕舍이다. 글자 그대로 풀면 "붓으로 밭을 가는 집", 즉 종이 위에 붓으로 농사를 짓는 집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남의 원고나 문서를 대신 써 주고 삯을 받던 사람을 필경사(筆耕士)라 부르기도 했다. 농사를 짓는 것이나 글을 써서 먹고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곧 농사이자 노동으로 생각한 심훈처럼 정직함이 담겨 있다.
필경사 마당을 나서며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초가지붕 위로 솔숲이 흔들리고 그 너머로 하늘이 열려 있었다. 종이에 농사를 짓겠다던 사람은 떠났지만 그가 심은 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한 사람이 시대를 어떻게 견딜지 고민하며 지은 집 한 채가 아흔 해가 지난 지금도 사람을 이끌고 있다. 어떤 자리는 그 안에 살았던 이의 선택을 오래 기억한다. 부곡리의 이 마당이 꼭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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