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나주박물관 특별전 「모던시대, 일상과 예술의 균형」
8월의 무더운 날이 지속되던 시기에 나주로 향해 보았다. 국립나주박물관의 건물 디자인을 보면 곡면 지붕은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데 시간이 지나며 산화된 금속의 표면이 결을 따라 흐르듯 마무리가 되어 있다.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간 기록처럼 보였다.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이 나란히 놓인 입구 앞에서 잠시 멈췄다. 어디로 들어가 어디로 나올지 관람의 동선은 늘 하나의 흐름으로 시작이 된다.
올해 여름 이곳에서는 특별한 전시 하나가 열리고 있다. 「선비의 안목이 머문 자리 — 모던시대, 일상과 예술의 균형」. 남도문화라운지의 자동문 너머로 은은한 조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개막을 축하하는 화환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전시의 영문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Seonbi's Eye Lingered. 선비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자리라는 뜻이다.
전시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서문이 기다린다. '모던시대 예술과 일상의 균형'. 흰 벽에 검은 활자로 새겨진 문장들을 천천히 따라 읽었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한 선비의 안목이 있다. 이 전시가 조명하는 것은 그 미묘한 균형의 감각이다. 무대는 나주의 남파고택이다. 전통과 근대가 정면으로 마주하던 격변의 모던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이 집은 선비의 정신과 예술적 향유를 함께 지켜왔다. 서문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았다. 고택의 유구한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균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있다.
첫 번째 방은 선비의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모던 선비의 일상'. 벽면의 설명은 이렇게 묻는다. 모던시대의 선비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선비라면 바카라만 읽고 글만 썼을 것 같지만 이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보냈다. 때론 아픔을 나누고 행복을 함께하며 공동체라는 연대감 속에서 하루를 공유했다.
크고 검은 갓 하나가 액자 속에 담겨 있었다. 그 옆으로 크기가 다른 작은 진열장들이 리듬을 이루며 벽을 타고 이어진다. 칠기 그릇, 가죽 가방, 붉은 목기, 그리고 노끈을 감아 만든 둥근 실뭉치와 손때 묻은 주머니 하나. 화려하지 않은 물건들이다. 오히려 그래서 눈길이 갔다. 대단한 유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하루를 이루던 사물들이 거기 놓여 있었다.
두 번째 방으로 들어서면 '모던 선비의 공간'이 펼쳐진다. 모던시대 지역슬롯에서 선비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 학문과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 했고,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고민하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드러내어 중재자의 역할을 맡았다.
천장에는 낡은 남포등 하나가 쇠사슬에 매달려 있다. 켜지지 않은 등불 아래에서 옛 시간의 밀도를 가늠해 본다. 이 물건들을 매일 쥐고 놓았을 손의 온기 같은 것이 남아 있다.
붉게 옻칠된 자개장이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짝에는 한자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愚敗多怒, 慍俗生於輕悔. 어리석음은 잦은 분노에서 패하고 세속의 노여움은 가벼운 뉘우침에서 생긴다. 매일 이 문장을 마주하며 하루를 다스렸을 사람을 떠올렸다. 이단소반이 층을 이루며 놓여 있고, 그 옆으로 문방구를 담은 나전 상자와 놋쇠 등경이 자리한다. 벽에 걸린 거울에는 이 방을 들여다보는 관람객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벽면을 채운 미디어아트였다. '남파고택, 창 너머의 시간'. 14분 51초짜리 영상 작품이다. 낙엽이 붉게 물든 고택의 정원이 창틀 안에 담겨 흘러간다. 그 앞에는 화살과 화살통, 놋그릇과 담뱃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마셜(Marshall) 스피커 하나가 서 있다. 김영동의 '산행'(1999)과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1954)이 번갈아 흐른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전통 목물과 현대 스피커, 한국 국악과 러시아 왈츠. 이 어긋난 조합이 오히려 이 전시가 말하려는 균형의 감각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는 박제되지 않는다. 창 너머의 시간처럼 계속 흐르며 지금과 만난다.
마지막 방은 '모던 선비의 후원'이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고유의 전통이 급격히 설 자리를 잃어가던 시기였다. 각 지역을 대표하던 전통 공예품들은 산업화에 따라 공산품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이때 박장흥댁 선비들은 사라져 가는 전통 장인들을 후원했다. 직접 주문을 넣어 제작을 장려하고, 완성품을 부지런히 수집하며 전통의 맥을 지키고자 했다.
여기서 나는 이 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안목이란 단지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이 아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꺼이 지갑을 열어 그것을 살려둘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발(簾)이 커다란 액자 속에 걸려 있었다. 씨실과 날실이 만들어낸 기하학 문양이 정교하다. 그 옆 유리장 안에는 다양한 부채들이 별처럼 배치되어 있다. 검은 옻칠 단선, 붉은 칠 부채, 공작 깃털을 닮은 부채, 꽃을 수놓은 비단부채까지. 하나하나가 그 시절 장인의 손끝이 머문 자리다.
대나무 발아래에는 각진 유리 거울과 은주전자, 잔과 잔받침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서양에서 건너온 사물과 우리 전통의 그릇이 한 공간에서 나란히 숨 쉬고 있다.
상설전시실로 이어지는 로비의 매끈한 바닥에 조명이 길게 반사되고 있었다. 들어갈 때와 같은 자리에서, 이번엔 나오는 곳을 향해 걸어 보았다. 균형이라는 말을 오래 곱씹었다. 이 전시가 보여준 선비의 균형은 어느 한쪽을 버리는 데 있지 않았다. 전통을 지키면서 근대를 받아들이고 바카라상 앞에 앉으면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라지는 것을 붙들면서 새로운 것을 들이는 일. 그 모든 어긋남을 한 사람의 하루 안에 품어내는 안목. 그것이 균형이었다.
전시 개요
장소: 국립나주박물관 남도문화라운지
전시명: 「선비의 안목이 머문 자리 — 모던시대, 일상과 예술의 균형」 (Seonbi's Eye Lingered: The Unity of Art & Daily Life in an Early Modern Seonbi's World)
기간: 2026.6.23부터 (기획특별전)
소재: 나주 남파고택(南坡古宅) 소장 근대 생활 자료
전시 섹션 구성
모던시대 예술과 일상의 균형 (The Balance Between Art and Daily Life) — 서문
모던 선비의 일상 (The Daily Life of an Early Modern Seonbi) — 흑립, 실공, 나침반, 칠기 등
모던 선비의 공간 (The Space of an Early Modern Seonbi) — 자개장, 소반, 문갑, 미디어아트 '남파고택, 창 너머의 시간'
모던 선비의 후원 (The Artistic Patronage of an Early Modern Seonbi) — 발(대나무 발), 부채(단선), 거울, 주전자·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