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의 장미정원

삼척 오십천의 정원은 자연이 아니라 결정이다

요즘 같은 무더위가 극심할 때 천변공간은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되는 곳이다. 삼척의 오십천은 삼척을 세로로 가르는 천이다. 두타산 자락에서 시작해 도심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이 물길은 도시의 등뼈 같은 것이어서 삼척 사람들의 하루는 어느 방향으로든 이 강을 한 번쯤 건너게 되어 있다. 강은 오래된 시간의 은유다. 같은 자리를 흐르지만 어제의 물은 이미 바다로 갔고 지금 발밑을 지나는 물은 처음 보는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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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을 흘러가는 오십천의 천변에 조성되어 있는 장미공원에 서서 강 건너를 보면 조금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회색 굴뚝과 육중한 설비,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이다. 한쪽 기슭에는 20세기가 이 도시에 남긴 산업의 얼굴이 있고 맞은편 기슭에는 218종 13만 그루에서 피어난 천만 송이의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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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와 장미가 같은 공간에 놓여 있다. 이 공원은 저절로 생긴 풍경이 아니다. 8만 5천 제곱미터의 강변에 182억이 넘는 돈이 들어갔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다섯 해에 걸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단일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미가 이곳에 모였다고 한다. 독일 장거하우젠의 유서 깊은 유로파 장미정원보다도 세 배 가까이 많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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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을 앞두고 이름은 공모로 정해졌다. 주민들은 화려한 수식 대신 부르기 쉬운 이름을 골랐고 그렇게 '삼척장미공원'이 되었다. 숫자를 늘어놓는 이유는 규모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정원은 자연의 선물이 아니다. 정원은 사람이 자연을 향해 내린 결정이고 그 결정을 여러 해 동안 반복한 노동의 결과물이다. 강물이 흘러간 시간이라면 이 꽃밭은 붙잡아 쌓아 올린 시간이다. 봄마다 다시 붉어지는 이 언덕은 누군가 오랫동안 돌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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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보면 그 문화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드러난다. 서양 정원의 극단을 보려면 베르사유로 가면 된다. 루이 14세의 정원을 설계한 앙드레 르 노트르는 땅을 거대한 도면처럼 다루었다. 좌우는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화단은 자수처럼 기하학으로 재단되며 시선은 왕이 선 자리에서 대운하 끝까지 단숨에 뻗어 나가도록 조성을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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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옛 정원은 정반대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담양 소쇄원을 걷다 보면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부터가 사람의 손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계곡물은 원래 흐르던 대로 흐르고 정자는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앉는다. 담장 너머 먼 산을 정원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경은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한국인들의 고유한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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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정원이 자연을 정복해 전시한다면 한국의 정원은 자연에게 슬쩍 사양하며 곁을 내주는 형태로 조성이 된다. 그렇다면 오십천의 이 장미밭은 어느 쪽인가. 구획된 꽃밭과 곧게 뻗은 장미터널은 분명 서양식 정형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이 공원은 강의 곡선을 따라 길게 눕고 등 뒤의 산과 앞의 물을 배경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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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장미였다는 점도 오래 생각하게 만들게 한다. 장미는 들에서 저 혼자 피는 꽃이 아니다. 인류가 가장 오래 개량하고 접붙이고 이름 붙여 온 꽃이며 사람의 손이 떠나는 순간 야생으로 돌아가려는 꽃이다. 그래서 잘 가꾼 장미밭은 곧 누군가의 성실함의 증거다. 그리고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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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꽃에 사랑을 겹쳐 보았다. 아름다움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라고 보았다. 손을 뻗는 사람은 찔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장미만큼 정직하게 말해 주는 꽃도 드물다. 비밀을 뜻하던 '장미 아래에서'라는 옛말처럼 이 꽃은 화려함 뒤에 늘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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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온 붉은 장미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화강암은 수억 년의 시간을 한 덩어리로 굳혔고 그 무표정한 돌 사이에서 몇 달을 사는 꽃이 피어 있었다. 정원을 조성해 온 시간과 꽃이 피어나기 위한 짧은 시간이 한 풍경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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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하는 오월이 지나고 8월이 지나면 이 백만 송이도 결국 진다. 오십천은 그 사이에도 쉬지 않고 어제의 물을 바다로 흘려보낼 것이다. 다음 봄이면 같은 자리에서 다시 붉어질 이 언덕을 두고 흘러가는 시간과 붙잡아 쌓은 시간 가운데 무엇이 더 오래 남는가를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강가에 서서 두 기슭을 번갈아 바라보는 동안 정원이란 결국 사람이 시간에게 건네는 대답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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