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모자랐던 용

함양 용추폭포에서 여름을 식혀보고 물에 풍덩 빠지기에 좋다.

여름의 계곡은 눈보다 귀로 먼저 들려온다. 함양 안의면의 좁은 길로 접어들어 창을 내리자, 아직 보이지도 않던 물이 먼저 소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미 소리 사이로 낮게 깔린 물소리의 그 소리를 따라 조금 더 오르니 갈색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용추폭포 350미터. 폭포가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매미를 밀어내고 골짜기를 통째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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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이 이 물소리를 두고 용이 지축을 흔들며 하늘로 오르는 소리 같다고 한 이유를 알겠다. 용추폭포가 있는 이 계곡의 옛 이름은 심진동이다. 참 진(眞) 자를 찾아 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옛 안의현에는 경치가 빼어나기로 이름난 세 골짜기가 있었는데 심진동과 원학동, 화림동을 묶어 안의삼동이라 불렀다.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꼽히던 곳이다. 그중에서도 심진동 상류의 용추폭포를 보고 나면 안의삼동의 명승 유람이 비로소 끝난다는 말이 전한다. 말하자면 이 폭포는 세 골짜기가 품은 아름다움의 마지막 장이자 매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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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곱씹을수록 마음에 남는 건 '찾아 든다'는 동사였다. 이 골짜기는 우연히 지나다 마주치는 곳이 아니라, 참된 풍경을 보겠다고 작정하고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 만나는 곳이었다. 계곡 초입의 심원정만 봐도 그렇다.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머물며 글을 읽던 자리에 후손이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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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물러나 참됨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굳이 이 깊은 물가를 골라 들어왔던 것이다. 피서라는 가벼운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어떤 선택의 무게가 이 초록 골짜기 입구에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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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나무 사이로 물줄기가 열리는데 바로 용추폭포다. 널찍한 화강암 반석을 타고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던 물이, 마지막에 곧게 떨어지며 아래의 깊은 못으로 꽂힌다. 그 못이 용소다. 지름이 스물다섯 미터쯤 되고 깊이가 열 미터에 이른다는 이 못은, 고인 물이 초록빛을 띨 만큼 맑고 깊다. 안내판에는 폭포 높이를 삼십 미터로 적어 두었는데 국가유산 명승 자료에는 약 십오 미터로 기록되어 있으니, 눈으로 본 위엄과 자로 잰 수치 사이의 간극은 각자 확인해 볼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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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분명한 건, 폭포 앞에 서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던 여름 더위가 한 겹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물보라가 실어 나르는 찬 기운과 골짜기를 울리는 물소리만으로도, 몸의 온도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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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포에는 이무기 이야기가 전한다. 백여덟 날을 굶으며 기도하면 용이 된다는 믿음을 품고, 한 이무기가 이 물에서 고행을 견뎠다. 그런데 백여덟 날을 꼭 하루 앞둔 날 이제 곧 용이 된다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하늘로 몸을 솟구치고 말았다. 하루가 모자란 채 날아오른 이무기는 벼락을 맞고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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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앞 반석에 앉아 이 이야기를 오래 생각했다. 백여덟 날 가운데 백일곱 날을 견딘 짐승이다. 부족했던 건 인내의 총량이 아니라, 마지막 하루를 마저 기다리는 일이었다. 다 왔다는 확신이 오히려 발을 헛디디게 했다. 참됨을 찾아 든다는 이 골짜기에 참됨의 문턱에서 조급함 하나로 무너진 짐승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온다는 게 우연 같지 않았다. 시간을 견디는 일과 시간을 제 것으로 삼는 일은 다르다. 이무기는 백일곱 날의 시간을 견뎠지만, 마지막 하루의 시간을 자기 것으로 붙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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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그런 사정에 아랑곳없이 지금도 떨어진다. 용이 되었든 되지 못했든, 골짜기의 물은 기백산에서 흘러내려 지우천을 이루고 이 반석을 깎으며 여전히 소리를 낸다. 어쩌면 이 물소리가 용이 승천하는 소리로 들렸던 건, 정말 용이 올라서가 아니라 오르지 못한 것들의 몫까지 물이 대신 울어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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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담글 만한 얕은 물가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고, 폭포 소리를 오래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계곡 끝자락에는 용추자연휴양림이 있어, 하루를 더 머물며 이 물소리 속에서 잠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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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는 분명히 짚어 두고 싶다. 물이 맑고 소가 깊어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곳은 곳곳이 물놀이 금지구역이다. 깊이가 십 미터에 이르는 소와 급류가 곳곳에 숨어 있으니, 이 계곡의 시원함은 몸을 담그는 것이 아니라 눈과 귀와 살갗으로 받는 시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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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는 계곡 물길의 한 지점일 뿐이다. 폭포 아래로는 용소를 시작으로 꺽지소, 요강소, 매산나소 같은 크고 작은 못이 이어지고, 매바위와 상사바위 같은 바위들이 물과 어우러진다. 폭포에서 아래쪽 안의면 방향으로 물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한나절이 넉넉하다. 물가 곳곳에는 누군가 정성으로 쌓아 올린 돌탑이 서 있었다. 이무기가 하루를 못 참아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흐르는 계곡에서, 사람들은 돌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얹어 무언가를 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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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등지고 내려오는 길 젖은 반석 위로 여름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백일곱 날을 견디고 하루를 못 견딘 짐승의 자리에서 서두르지 않아도 물은 떨어지고 여름은 지나갈 것이다. 용이 되는 일은 못 하더라도, 물가에 앉아 그 소리를 끝까지 듣는 일 정도는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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